뉴스 > 전문가칼럼
[유동열의 스파이 세계]<25> 이스라엘 우라늄 확보 작전 ‘암호명 플럼뱃’
유동열 필진페이지 + 입력 2024-06-25 06:31:30
 
▲ 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 원장 
1968년 11월17일 새벽 서독 함부르크 항구를 출발해 이탈리아 제노바로 향하던 라이베리아 국적의 화물선 쉬어스베르크(Scheersberg) A호가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다. 유럽 항만 당국과 유럽원자력공동체(Euratom) 및 국제원자력기구(IAEA)에는 비상이 걸렸다. 이 배에는 원자폭탄 40여 기를 제조할 수 있는 우라늄 광석 200t이 560개의 드럼에 탑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15일 후 12월2일 쉬어스베르크 A호는 터키(튀르키예)의 이스켄데룬 항구에 나타났다. 그러나 이 배에 있던 우라늄 200t은 보이지 않았다.
 
전대미문의 핵물질 실종 사건은 9년 동안 국제 핵 관련기관과 일부 정보기관에만 국한된 세계 최고의 비밀 중 하나였다. 그러다가 1977년 4월 독일 잘츠부르크에서 열린 군축회의에서 미국 상원의 고문이었던 폴 레벤탈에 의해 이 사건이 처음 세상에 알려졌다. 하지만 누가 이런 짓을 자행했는지는 특정되지 않았다. 결국 언론의 추적과 핵심 관계자의 증언으로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Mossad)가 핵물질인 우라늄을 확보하기 위해 비밀리에 전개한 암호명 ‘플럼뱃’ 작전(The Plumbat Affair)의 일환임이 밝혀졌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모사드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 1978년 영국 런던에서 Elaine Davenport·Paul Eddy & Peter Gillman이 공동저술한 플럼뱃 작전에 관한 책자가 발간됐다. 필자 제공
  
1967년 제3차 아랍·이스라엘 전쟁 이후 프랑스는 이스라엘에 공급해 오던 원자로용 우라늄 연료의 수출을 중단했다. 이스라엘은 1950년대부터 핵무기를 개발하기 위해 프랑스의 기술지원으로 네게브 사막에 1958년 디모나 원자력연구소(시몬 페레스 네게브 원자력 연구센터) 건설에 돌입하여 1963년 중수로 원자로를 완성했다. 중수로 원자로는 우라늄을 재처리를 하여 핵물질인 플루토늄을 추출하기에 용이했는데 우라늄의 공급 중단으로 이스라엘에는 비상이 걸렸다. 아랍국가에 포위당해 있던 이스라엘로서는 국가 생존의 마지막 카드로 미국 등 국제사회의 반대에도 무릅쓰고 비밀리에 핵무기를 개발해 왔는데 우라늄의 공급 중단으로 핵개발 계획이 차질을 빚었기 때문이다.
 
모사드는 비밀리에 우라늄을 확보하는 작전에 돌입했다. 모사드는 서독의 중소 화학업체인 아시마라 케미라에 접근했다. 이 회사의 파트너인 술첸을 오랜 기간의 공작을 통해 포섭하여 우라늄 200t을 구입해 줄 것을 부탁했다. 술첸은 1968년 3월 벨기에 광산업체에 우라늄 광석을 주문했다. 용도는 석유화학 공정을 통해 비누를 생산하겠다는 것이었고 까다로운 유럽원자력공동체(Euratom)의 허가를 받아내는 데도 성공했다. 문제는 선적된 우라늄을 원자력당국의 엄격한 통제를 피해 어떻게 이스라엘까지 운반하느냐 였다.
 
모사드는 공작용 화물선을 구매하기 위해 1968년 8월 라이베리아에 비스케인이라는 유령 선박회사를 설립하고 그해 9월 서독 화물선 쉬어스베르크 A호(1790t)를 구입했다. 이 배는 그해 11월15일 스페인 선원들을 새로 고용하고 화물을 탑재하기 위해 벨기에 안트베르펜으로 갔다. 여기서 플럼뱃(안전한 납)이라고 찍힌 560개 드럼을 적재했다. 드럼 속에는 옐로우케이크(yellowcake·U3O8)라고 불리는 우라늄 산화물 200t이 적재되어 있었으나 선원들은 이 사실을 전혀 몰랐다. 다음 날 출항한 배는 제노바로 바로 가지 않고 돌연 서독 함부르크에 정박했다. 여기서 선주가 바뀌었다며 스페인 승무원을 전원 해고하고 모두 이스라엘 선원들로 대체했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신고된 이스라엘 선원들의 여권은 하나같이 위조된 것이었다. 1968년 11월17일 함부르크를 출발하며 항만 당국에는 이탈리아 제노바로 간다고 신고했으나 도착일이 훨씬 지났는데도 배는 어디로 갔는지 오리무중이었다.
 
실제 쉬어스베르크 A호는 항해 7일 후 키프로스 근처 공해상에 도착해 소형 선박으로 구성된 괴(怪)선단(이스라엘 선단)과 접선한다. 짙은 어둠 속에서 소형 선박에 화물을 옮겨 실은 다음 쉬어스베르크 A호는 터키 이스켄데룬 항구에 도착했다. 당연히 200t의 우라늄은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 우라늄 화물을 탑재한 소형 선박들은 약 110해리 떨어진 이스라엘의 하이파 항구에 도착했다. 이 화물은 이스라엘 네게브 사막에 위치한 드모나 원자력연구소로 옮겨졌다. 그리고 이 연구소 지하에 있는 비밀 핵연구소에서 플루토늄으로 가공되어 5년 뒤 핵폭탄으로 제조되었다.
 
유럽 당국과 핵물질의 국제운송을 통제·감시해야 할 국제원자력기구와 유럽원자력공동체는 즉각 조사에 착수했으나 사건은 점점 미궁에 빠졌다. 후에 핵물질 실종 사건에 대해 유럽원자력공동체(Euratom)는 비공개 조사보고서를 발간했다. 
 
이를 입수한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은 1977년 5월 미국의 한 핵 전문가의 말을 인용하여 “옐로우케이크는 폭탄 물질이 아니라 매우 낮은 수준의 광물이다. 복잡한 재처리 과정을 거쳐야 핵무기 제조에 사용될 수 있는데, 이스라엘이 재처리에 성공하여 제한된 수의 원자폭탄을 생산하는 데 사용한 것으로 여겨진다”고 평가했다. 이후 카터 행정부는 옐로우케이크를 포함한 모든 우라늄의 수출을 중단했다.
 
▲ 영원한 비밀로 남을 뻔했던 ‘플럼뱃 작전’의 전모는 모사드 요원 댄 에어벨의 폭로로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필자 제공
 
이스라엘의 핵물질 확보 작전인 ‘플럼뱃’의 전모가 드러난 것은 당시 작전을 주도했던 모사드 요원 댄 에어벨(Dan Arbel·위조여권 이름)의 증언에서 비롯됐다. 그는 1973년 7월 노르웨이 릴레함메르에서 모로코 국적의 식당 종업원을 암살한 모사드 공작조(6명)의 일원이었다. 이들은 1972년 뮌헨 올림픽에서 이스라엘 선수 11명을 살해한 ‘검은 9월단’을 추적하던 중 그를 검은 9월단의 한 명으로 오인하고 암살한 것이다. 노르웨이 경찰에 체포된 에어벨은 고민 끝에 노르웨이 당국에 ‘플럼뱃’ 비밀 작전 정보를 제공하고 형량 조정을 시도했다. 제공된 정보를 추적한 노르웨이 당국은 신뢰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에어벨이 쉬어스베르크 A호를 구입한 비스케인이라는 위장 회사의 대표였다는 사실도 확인되었다. 그 결과 살인사건 가담자인데도 7개월 동안 수감되었다가 풀려났다. 이 작전은 1978년 발간된 ‘플럼뱃 작전(The Plumbat Affair)’에 상세히 기술되어 있다. 스파이 세계에서 ‘영원한 비밀은 존재할 수 없다’는 격언을 다시 확인시켜 준 사례이다.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추천해요
0
좋아요
0
감동이에요
0
화나요
0
슬퍼요
0
오늘자 스카이데일리
주요 섹션 기사
주소 : 서울특별시 중구 새문안로 26 청양빌딩 7층 | 전화 : 02-522-6595~6 | 팩스 : 02-522-6597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시 아01703, 등록일 : 2011년 7월 18일, 발행·편집인: 조정진, 편집국장: 고동석
copyrightⓒ2011, All rights reserved. Contact : skyedaily@skyedaily.com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선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