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글로벌 시장에서 흥행 돌풍을 일으키며 K콘텐츠의 위상을 다시 한번 입증한 듯 보이지만 화려한 성과 뒤의 실상은 냉혹하다.
무엇보다 이 작품은 한국이 아닌 미국 소니 픽처스 애니메이션이 기획·제작한 작품이다. 한국의 K팝과 문화적 이미지를 적극 차용했지만 핵심 권리와 수익 구조는 모두 해외 기업이 쥐고 있다. 이름에 K팝을 내세웠으나 한국은 제작 주체도 아니고 ‘IP(지식재산권)’ 소유권도 없다.
표면적으로는 한류 콘텐츠처럼 보이지만 본질적으로는 한국이 빠진 콘텐츠, 즉 껍데기만 K콘텐츠인 셈이다.
물론 이 작품의 성공 자체는 환영받을 일이다. 전 세계 팬들이 열광하고 SNS에서는 밈과 2차 창작물이 쏟아지며 K콘텐츠의 영향력이 확인됐다. 그러나 이 열광의 이면에는 씁쓸한 현실이 자리한다. 콘텐츠를 만들어낸 한국 창작자와 산업이 손에 쥔 몫은 턱없이 초라하다.
이처럼 구조적 불균형이 심화하면서 국회에서도 IP 주권 논의가 본격화됐다. 세계가 한국 문화에 열광하고 글로벌 시장에서 성과를 거둬도 원천 IP를 확보하지 못한다면 산업 경쟁력은 외부 자본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는 현실 인식 때문이다.
지난 15일 열린 국회 정책토론회에서도 전문가들은 “성공이 창작자와 산업으로 환류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하며 제도적 대응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현실은 이미 여러 차례 확인됐다. 전 세계를 휩쓴 ‘오징어게임’조차 제작사의 수익은 미미했고 머천다이징·2차 저작물·판권 사업 등 IP 기반 부가가치는 대부분 해외로 흘러갔다. 이런 구조 속에서 국회와 정부, 업계가 “IP 주권 확보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고 강조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말만 반복될 뿐 현실은 변하지 않는다.
국내 제작사의 자생력도 갈수록 약화하고 있다. 토종 OTT와 협력해 독립적 제작 생태계를 구축하려 해도 국내 플랫폼은 자본력이 부족하고 투자 조건이 까다롭다. 반면 넷플릭스·디즈니 등 해외 플랫폼은 막대한 자금을 유연하게 제공한다.
결국 제작사는 해외 자본을 택할 수밖에 없고 그 대가로 IP 소유권과 수익 주도권을 내주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는 한 한국 콘텐츠 산업은 을의 위치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정부는 제도적 지원을 약속하고 업계는 표준계약서 강화와 추가 보상 청구권 도입을 요구하지만 협상력이 없는 구조에서는 모두 선언에 그칠 공산이 크다. 더구나 원천 IP 확보 없이 활용 전략을 논하는 것 자체가 공허하다. 기획 초기부터 IP가 해외로 귀속되는 현실을 방치한다면 산업 생태계의 지속 가능성도 위태로워진다.
결국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한국 콘텐츠 산업의 구조적 취약성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한국은 세계를 뒤흔드는 창작력과 아이디어를 제공하지만 정작 수익과 권리는 해외 플랫폼의 주머니로 들어간다.
국회로 번진 IP 주권 논의가 실질적 변화를 끌어내지 못한다면 아무 의미가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구호가 아닌 구조 개혁이다. 창작자가 정당한 대가를 받고 산업 성과가 국내로 환류되는 시스템을 마련하지 못한다면 K콘텐츠는 앞으로도 이름만 한국 것인 타인의 사업 모델로 남을 것이다.
후원하기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추천해요
좋아요
감동이에요
화나요
슬퍼요
추천해요0
좋아요0
감동이에요0
화나요0
슬퍼요0
기사제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