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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에도 인공지능(AI)이 폭넓게 적용되는 미래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얼마 전 다녀온 핀테크 업계 세미나에서 그 변화를 생생히 봤다.
한 업체는 AI로 복잡한 보험약관을 자동 해석하고 장기보험 보상청구를 끝까지 안내·처리하며 진단서·영수증 등 서류를 업로드하면 위·변조 여부까지 빠르게 가려낸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업체는 날짜·영수증 번호·의료기관 코드 등을 교차검증해 위조 서류와 수상한 패턴을 찾아 보험사기를 잡는 시스템을 선보였다.
이 설명을 들으며 문득 예전 생각이 났다. 보험영수증 금액과 항목만 전산에 입력하는 단순 아르바이트는 한때 꽤 인기였지만, 지금은 거의 사라졌거나 곧 사라질 일이다. 사람이 눈으로 하나하나 확인하던 업무가 AI와 자동화 시스템으로 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변화로 소비자는 약관을 잘 모르더라도 정확한 보험금을 지급받을 수 있고 보험서는 서류 진위여부와 이상청구를 신속히 가려낼 수 있다. 더 편리하고 투명한 보험시스템으로 가는 과정인 것이다. 다만 소비자 입장에서는 AI에 개인정보, 병력 등 민감한 데이터를 제공하는 것에 부담을 느낄 수 있다. 또 아무리 시대가 발전해도 AI가 보험의 모든 영역을 담당할 수는 없다.
재보험사 스위스리가 올해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이런 흐름이 확인됐다. 응답자들은 보험료 할인, 맞춤 보장, 건강관리 리워드 등 눈에 보이는 혜택이 있을 때는 개인 데이터 제공과 AI 활용에 우호적이었다. 반면 같은 설문조사에서 사고접수·보장축소·분쟁조정 같은 민감한 영역에서는 여전히 사람과 직접 대화하길 원했다.
여기서 중요한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보험은 숫자와 통계의 산업인 동시에 누군가의 병·사고·가족사를 다루는 감정의 산업이다. 어디까지 보상할지, 어떤 기준을 적용할지가 같은 조항이라도 해석이 갈리고, 이 과정에서 보험사는 기준과 리스크를 설명해야 한다.
AI는 방대한 데이터를 읽고 평균적으로 타당한 결론을 내리는 것에는 강하지만, 그 결과가 항상 개별 소비자에게 공정한 결론이 되지는 않는다.
기자도 과거 보험사에서 클레임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보험은 민원 소지가 많고 각자의 사정이 다르기 때문에 건강 상태, 가족 상황, 경제 여건까지 함께 살피는 접근이 필요하는 걸 느꼈다. 이런 맥락 없이 AI가 정한 답만 통보되면, 남는 건 효율이 아니라 불신이 될 것이다.
더구나 소비자는 왜 이만큼만 인정됐는지, 다른 사례와 비교해 형평해 맞는지를 알고 싶어할 것이다. 이때 필요한 것은 수치나 알고리즘이 아니라 눈높이에 맞춘 설명과 피드백이다. 아무리 정교한 알고리즘이라도 이걸 책임지고 해석해 줄 주체는 결국 사람일 수밖에 없다.
보험사 입장에서도 AI만 앞세운 ‘무인 민원 처리’는 위험한 유혹이다. 인건비와 처리 시간은 줄겠지만 사고를 겪은 사람을 끝까지 설득하고 납득 가능한 결론에 이르도록 돕는 일은 여전히 인간의 몫이다.
앞으로 보험과 AI의 결합은 더욱 빨라질 것이다. 언더라이팅, 상품 설계, 리스크 관리, 사기 탐지는 AI 없이는 상상하기 어려운 영역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민원 처리와 클레임, 분쟁 조정만큼은 인간의 영역으로 남을 수밖에 없고, 그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이 든다. 보험과 AI가 결합된 미래는 더 편리하고, 더 투명한 사회가 될 것이다.
다만 그 미래가 진짜 사람을 위한 기술이 되려면 어디까지를 AI에 맡기고, 어디서부터는 사람이 담당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계속될 것이다. 그 구조가 제대로 갖춰질 때 비로소 AI는 보험에서 ‘신뢰의 도구’로 자리잡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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