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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의 리치하우스<121>]-안정환(방송인, 전 축구선수)

운동·방송 다잘하는 안정환 24억 청담빌라 ‘소유만’

월드컵4강 주역…소유 빌라 외에 거주지까지 합친 재력 ‘새삼 궁금’

정희조기자(hijo26@skyedaily.com)

기사입력 2017-10-28 01:4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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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축구대표팀에게 월드컵은 도전의 역사였다. 2002년 월드컵에서 사상 첫 1승과 4강 신화를 이루기도 했으나 통산 전적으로 보면 득점보단 실점이 많았으며 승리보단 패배가 많았던 팀이다. 월드컵 본선 무대에서 골 맛을 맛본 선수도 드물다. 가장 많은 골을 넣은 선수가 3골을 기록했을 뿐이다. 이 기록은 2002년부터 2010년까지 각 대회 1골씩 기록한 박지성 선수와 2002년 두 골, 2006년 한 골을 기록한 안정환이 갖고 있다. 선수시절 그라운드에 등장만으로 경기흐름이 바뀔 것이란 기대감을 갖게 해 ‘판타지스타’라 불리기도 했던 안정환은 현재 서울 강남구 청담동 소재 고급빌라 한 호실을 보유했다. 스카이데일리가 안정환의 부동산과 근황 등을 조명했다.

▲ 안정환은 지난 2004년 서울 강남구 청담동 청담대우멤버스카운티6차아파트(사진) 한 호실을 분양받았다. 해당 호실의 규모는 공급면적 213.86m²(약 65평), 전용면적 195.83m²(약 60평) 등이다. 이 호실의 현재시세는 약 24억원에 형성돼 있다. [사진=박미나기자] ⓒ스카이데일리
 
이달 피파랭킹 순위 집계 결과, 우리나라는 62위로 일본(44위)은 물론 중국(57위) 보다도 뒤쳐졌다. 한국축구 위상이 그 어느 때보다 밑바닥까지 떨어진 상태라는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 덕분에 4강 신화를 일군 2002년 대표팀에 대한 향수가 고조되면서 당시 뛰어난 활약을 했던 선수도 새삼 재조명 되고 있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2002년 월드컵 당시 2골을 넣은 전 대한민국 남자 축구국가대표 선수 안정환(42·남)이 꼽힌다. 안정환을 향한 높아진 대중적 관심은 그의 부동산 재력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는 분위기다.
 
청담동 부촌1번지 24억 고급빌라…실제 사는 곳은 따로 있고 ‘소유만’
 
부동산업계 등에 따르면 안정환은 서울 강남구 청담동 소재 청담대우멤버스카운티6차아파트 한 호실을 소유했다. 지난 2004년 준공된 아파트분양을 통해 취득했다. 안정환 소유 호실은 공급면적 213.86m²(약 65평) 전용면적 195.83m²(약 60평) 등의 규모다. 인근 부동산 관계자 등에 따르면 현재 시세는 24억원을 호가한다.
 
대우멤버스카운티6차는 대형 연예기획사들과 재벌·연예인들이 다수 거주하는 영동대교 남단 도산대로 이면에 자리했다. 총 2개동으로 이뤄졌다. 서로 마주보고 있는 두 건물 사이에는 중앙정원이 설치돼 있어 주민들의 쉼터로 활용된다는 후문이다. 고급 호화빌라가 밀집한 청담동 내에서도 손에 꼽히는 고급 주거공간으로 각광받는 곳이다.
 
인근 부동산 관계자는 “청담동의 가장 큰 특징은 들어오는 이들은 많아도 나가려는 이들이 드물다는 점이다”면서 “해당 빌라 역시 실거주 목적의 소유주들이 많아 매물이 잘 나오지 않는 편이다”고 언급했다. 이어 그는 “고급스럽고 조용한 주거 환경 탓에 높은 인기를 자랑하다보니 꾸준히 시세는 증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 가난한 유년기를 보낸 안정환은 성인무대 진출 후 국가대표로 발탁됐으며 2002년 한·일월드컵부터 2010년 남아공월드컵까지 국가대표로 활약했다. 사진은 국가대표로 축구경기에 나선 안정환의 경기 모습 [사진=뉴시스]
    
주목되는 사실은 안정환은 무려 24억원이나 되는 고급빌라 호실을 소유만 한 채 거주는 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었다. 실제 거주하는 곳 까지 합치면 실제 안정환의 재력은 24억원을 훨씬 웃돈다는 점을 파악할 수 있는 대목이라는 평가다.
 
K리그 전성시대 이끈 장본인…해외진출·4강신화 은퇴 후 방송인으로 자리매김
 
오늘날 대한민국 부촌1번지 청담동 내에서도 초고가 고급빌라가 밀집한 부촌에 살지도 않는 고급빌라 호실을 소유만 하고 있는 재력을 갖췄지만 안정환은 극심한 가난 속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또래보다 달리기를 잘했던 그는 훈련 뒤 빵과 우유를 먹을 수 있다는 이유로 축구부에 가입했다.
 
돈이 없어 할머니가 사줬던 800원짜리 비닐축구화를 신고 운동했던 일화는 유명하다. 비록 간식에 혹해 시작한 축구지만 그 누구보다 뛰어난 실력을 자랑했다. 대림초등학교·남서울중학교·서울공업고등학교·아주대학교를 거치며 연령대에서 가장 뛰어난 공격수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각 연령대별 국가대표팀에도 빠지지 않고 발탁됐다.
 
1997년 유니버시아드 대회를 마치고 이탈리아에서 귀국하자마자 곧바로 소속팀 아주대학교 경기에 출전한 일화는 익히 유명하다. 공항에서 급히 경기장에 도착했을 때 아주대학교는 1-2로 지고 있었으나 안정환은 곧바로 교체 투입돼 홀로 2골 1도움을 기록하며 팀의 5-2 승리를 이끌었다.
 
1998년 안정환은 아주대학교 재단을 소유한 대우그룹이 운영하는 프로축구단 부산대우로얄즈에 입단하며 프로축구선수로 데뷔하게 된다. ‘안정환’이라는 이름 석 자가 축구팬들의 뇌리에 각인시킨 것은 1999년이었다.
 
당시 그는 고종수·이동국 등과 함께 잘생긴 외모와 뛰어난 실력을 갖춘 3인방으로 불리며 국내 프로축구 흥행을 이끌었다. 그 해 안정환은 14골을 기록하며 팀의 준우승에 기여했고 리그 MVP에 선정됐다. 준우승팀에서 MVP가 나온 것은 K리그 사상 최초였다.
 
▲ 안정환(사진)은 지난 2012년 은퇴했다. 은퇴 후 지도자의 길을 걸을 것이란 세간의 예상과 달리 안정환은 유쾌한 입담을 자랑하는 방송인으로 거듭났다. 동시에 MBC 축구해설위원으로도 활약 중인 안정환은 특유의 촌철살인 멘트로 여전히 축구팬들의 높은 지지를 받고 있다 [사진=뉴시스]
 
‘최초’의 기록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2000년 안정환은 이탈리아 세리에A AC페루자칼초(이하·페루자)로 임대·이적하면서 국내선수 중 최초로 이탈리아 무대를 밟게 됐다. 당시 이탈리아리그는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잉글랜드 ‘프리미엄리그’ 등과 더불어 세계 3대 축구리그로 각광받던 무대였다.
 
안정환은 국가대표팀에서도 반드시 필요한 선수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2002년 한·일월드컵을 앞두고 선임된 거스 히딩크 감독 체제 하에서 그는 주전 공격수로 활약하며 인상 깊은 활약을 펼쳤다. 그는 특히 팀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여 있을 때 에이스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일례로 2002년 월드컵 조별예선 미국과의 경기에서 0-1로 뒤지던 상황에서 극적인 동점골을 넣어 우리나라의 사상 첫 16강을 이끌었다. 16강 이탈리아전에서는 경기초반 패널티킥을 실축했으나 연장후반 극적인 연장골을 터뜨리며 우리나라의 사상 첫 8강행을 이끌기도 했다.
 
2002년 월드컵 이후에도 다수의 리그를 경험하면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공격수로 군림해 온 안정환은 지난 2012년 1월 은퇴했다. 은퇴 후 지도자가 될 것이란 전망과 달리 그는 방송인으로 활약했다. 특히 2014년 MBC 예능프로그램 ‘아빠 어디가’를 통해 친숙한 이미지와 유쾌한 말솜씨를 뽐내며 방송인으로서의 자질을 보였다.
 
안정환은 축구과도 깊은 인연을 이어갔다. 예능프로그램에만 몰두한 것이 아니라 MBC 축구해설위원으로 활약하며 축구팬들과도 호흡했다. 특히 편안하면서도 재밌는 해설과 더불어 촌철살인의 날카로운 지적까지 더해지자 안정환의 해설에 열광하는 시청자들이 하나 둘 늘기 시작했다.
 
지난 10일 우리나라와 모로코의 평가전 해설을 맡기도 했던 안정환은 “적극성이 떨어진다”, “모로코의 패싱력이 뛰어난 것이 아니라 월드컵에 나서는 팀들은 기본적으로 하는 플레이다”, “대한민국보다 못하는 팀은 없다” 등의 거침없는 쓴 소리로 화제가 된 바 있다. 대다수 시청자들은 ‘속 시원한 해설’이라며 대체로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정희조 기자 / 시각이 다른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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