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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업계 큰 별’ 조양호 회장, 숙환으로 별세

치료위해 미국 체류했으나 병세 급격히 나빠져…사인은 폐질환·향년 70세

강주현기자(jhkang@skyedaily.com)

기사입력 2019-04-08 11:5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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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사진=한진그룹]
 
대한민국 항공업계의 대부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향년 70세로 별세했다. 치료를 위해 지난해부터 미국에 체류했지만 최근 병세가 악화된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항공은 조 회장이 8일 새벽(한국시간) 미국 현지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고 밝혔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조 회장이 폐질환이 있었는데 미국에서 치료를 받던 중 대한항공 주주총회 결과 이후 사내이사직 박탈에 대한 충격과 스트레스 등으로 병세가 급격히 나빠진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조 회장은 지난해 12월부터 요양 목적으로 LA에 머물렀다. 소식통에 따르면 원래 폐 건강이 나빴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우울증에 치매까지 겹치자 치료를 위해 미국에 지금까지 체류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아울러 폐 이식 수술을 받았지만 수술결과가 좋지 않아 며칠간 혼수상태였던 것으로도 알려졌다.
 
조 회장은 가족들이 지켜보는데서 새벽에 운명한 것으로 전해진다. 부인인 이명희 전 일우재단 이사장과 장남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 장녀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차녀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 등 가족이 조 회장의 임종을 지킨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항공은 운구 및 장례 일정·절차 등은 추후 결정 되는대로 알리겠다고 전했다.
 
조 회장의 운구는 최소 4일에서 1주일 가량 걸릴 것으로 알려진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현지에서 조 회장을 한국으로 모셔오기 위해 절차를 밟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조 회장은 한진그룹 창업주인 고 조중훈 회장의 장남으로 1949년 인천에서 태어났다. 서울에서 경복고등학교를 수학한데 이어 미국으로 유학해 美 메사추세츠 주 Cushing Academy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이어 인하대 공과대학 학사, 美 남가주대 경영대학원 석사, 인하대 경영학 박사 학위 등을 취득했다.
 
1974년엔 대한항공에 입사해 45년간 정비, 자재, 기획, IT, 영업 등 항공 업무에 필요한 실무 분야들을 두루 거쳤다. 1992년 대한항공 사장, 1999년 대한항공 회장, 2003년 한진그룹 회장 자리에 올랐다.
 
그 사이 여러번의 위기가 있었지만 조 회장은 위기의 순간을 기회의 순간으로 만들어온 것으로 평가받는다. 1997년 외환 위기 당시 자체 소유 항공기의 매각 후 재 임차를 통해 유동성 위기를 극복했으며 1998년 외환 위기가 정점일 당시에는 유리한 조건으로 주력 모델인 보잉737 항공기 27대를 구매했다.
 
또 이라크 전쟁, SARS 뿐만 아니라 9.11 테러의 영향이 아직까지 남아있어 세계 항공산업이 침체의 늪에 빠진 2003년 조 회장은 이 시기를 차세대 항공기 도입의 기회로 보고 A380 항공기 등의 구매계약을 맺었다. 결국 이 항공기들은 대한항공 성장의 기폭제로 작용했다.
 
조 회장은 다양한 부문에서 민간외교관으로서 활동을 하면서 국격을 높이는 데도 힘을 쏟았다. 세계 항공업계가 무한경쟁으로 치달을 때 항공동맹체인 스카이팀(Sky Team) 창설을 주도한 것도 조 회장이다. 조 회장은 ‘항공업계의 유엔’이라고 불리는 국제항공운송협회(IATA)에서도 핵심적인 역할을 맡으며 대한민국 항공산업의 발언권을 높여왔다.
 
1996년부터 IATA의 최고 정책 심의 및 의결기구인 집행위원회(BOG, Board of Governors) 위원, 2014년부터 31명의 집행위원 중 별도 선출된 11명으로 이뤄진 전략정책위원회(SPC, Strategy and Policy Committee) 위원을 맡았다.
 
스포츠에도 관심이 많아 2008년 대한탁구협회 회장, 2009년 아시아탁구연합(ATTU) 부회장에 선임됐다. 2009년에는 ‘2018 평창동계올림픽유치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대회를 유치하고 성공적으로 치를 수 있도록 주요한 역할을 했다.
 
아울러 조 회장은 전 세계 항공업계가 대형항공사와 저비용 항공사(LCC)간 경쟁의 패러다임으로 전환하는 시대의 변화를 내다보고 이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대한항공과 차별화된 별도의 저비용 항공사 설립이 필요하다고 확신했다. 이를 토대로 새로운 수요가 창출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이에 조 회장은 2008년 7월 진에어(Jin Air)를 창립했다. 진에어는 저비용 신규 수요를 창출 대한민국 항공시장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키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엔 한진해운의 심각한 경영난에 봉착했다. 조 회장은 한진해운의 경영정상화를 위해 2013년부터 구원투수로 나서서 1조원이 넘는 자금을 지원했고 2014년 한진해운 회장직에 오른 뒤에는 2016년 자율협약 신청 이후 사재를 출연하기도 했지만 결국 채권단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했다.
 
한진해운은 2016년 법정관리에 이어 2017년 청산됐다. 조 회장이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장에서 타의로 물러난 것도 여기서 파생된다.
 
당시 그는 정부로부터 ‘물러나 주셔야겠다’는 사퇴 압력을 받고 2016년 5월 조직위원장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 때 조 회장은 조직위에 파견된 한진그룹 직원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외부 환경에 한 치의 동요도 없이 당당하고 소신껏 행동하기 바란다”고 당부하기도 했다.
 
결정적 타격은 조 회장 일가의 '갑질' 행태가 알려진 것이다.
 
2014년에는 조 회장 일가의 ‘갑질’ 행태가 세상에 알려지기도 했다. 조 회장의 장녀 조현아 전 부사장이 ‘땅콩 회항’ 사건으로 물의를 일으킨 것도 이 때다. 지난해에는 차녀 조현민 전 전무가 ‘물컵 갑질’로 물의를 일으켰다. 부인인 이명희 전 일우재단 이사장도 직원 폭행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어 배임·횡령·탈세 의혹 등으로 총수 일가가 수사를 받으며 이른바 ‘오너리스크’가 회사 전체에 큰 타격을 주기도 했다.
 
여론이 악화되며 조 회장은 지난달 대한항공 정기주주총회에선 사내이사 연임에 실패했다.
 
오너리스크에 따른 파장으로 평가가 엇갈리나 항공업, 그리고 회사에 헌신한 그의 공로는 기억될 것으로 평가된다. 대한항공은 “조 회장의 모든 관심은 오로지 고객, 그리고 고객들을 위한 안전과 서비스였다”고 밝혔다. 이어 “본인을 챙길 겨를 없이 모든 것들을 회사를 위해 쏟아냈으며 조 회장의 이 같은 열정과 헌신은 대한항공이 지금껏 성취했던 것들과 궤를 같이 한다”고 전했다.
 
대한항공은 올해 창립 50주년을 맞았다. 대한항공은 1969년 출범 당시 8대뿐이던 항공기는 166대로 증가했으며, 일본 3개 도시 만을 취항하던 국제선 노선은 43개국 111개 도시로 확대됐다. 국제선 여객 운항 횟수는 154배 늘었으며, 연간 수송 여객 숫자 38배, 화물 수송량은 538배 성장했다. 매출액과 자산은 각각 3500배, 4280배 증가했다. 이와 같은 도전과 역경, 성취와 도약의 역사가 담긴 대한항공의 여정에는 조 회장의 발자취가 짙게 남아 있다.
 
[강주현 기자 / 행동이 빠른 신문 ⓒ스카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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