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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일의 문학푸드
송강호가 무명 감독이 내민 손을 잡은 이유
벽화 속 인물의 이야기에도 귀 기울이는 사람들
이정일 필진페이지 + 입력 2020-06-08 19:01:50
▲ 이정일 인문학 칼럼니스트
 늘 느끼는 것이지만 세상만사가 내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는 경우는 드물다. 살아남기 위해 분투하는 세상에서 우리는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애쓰지만 그 기회를 기가 막히게 찾아내는 사람들이 있다. 다들 자기 앞가림하기에도 바쁜 세상에서 이들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그 뭔가를 찾아내어 먹구름이 낀 세상에서 무지개 같은 행보를 보여준다. 그 행보를 몇몇 영화인들이 보여준다.
 
미국 배우 덴젤 워싱턴(Denzel Washington)이 있다. 우리가 잘 아는 배우인데 그가 2017년에 한 영화제에서 영화 「펜스」로 최우수 남우 주연상을 받았다. 그가 수상소감을 하면서 영화감독이자 프로듀서인 배리 젠킨스(Barry Jenkins)을 언급했다. 젠킨스 감독은 아카데미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한 「문라이트」를 만들었고 2017년 타임지가 선정한 ‘올해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들어간다.
 
그런 인물에게도 지난한 시간이 있었다. 「문라이트」를 만들 기회를 얻기까지 젠킨스는 20여 편의 단편영화를 만들며 세상이 자신의 재능을 알아줄 때를 기다려야 했다. 수상소감에서 말은 안했지만 덴젤 워싱턴도 젠킨스와 비슷한 과정을 밟으며 올라갔을 것이다. 이런 사람은 내가 알고 믿는 것에만 머무르지 않게 해준다. 워싱턴과 젠킨스가 겪은 것과 비슷한 경험을 겪은 영화인이 한국에도 있다.
 
가슴 설레며 기다린 끝에 첫 영화를 찍었지만 그만 실패한 감독이 있었다. 그가 두 번째 영화를 준비하며 캐스팅하고 싶은 남자 배우가 있었는데 선뜻 부를 자신이 없었다. 그 배우는 잘 나가고 있는 인기 배우였기 때문이다. 주저주저하다가 대본을 보낸 뒤 조심스럽게 의향을 물었는데 뜻밖에도 그 배우가 흔쾌히 출연하겠다고 답을 했다. 그러면서 자신은 이미 5년 전에 그런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이야기의 전후 맥락을 짚어보니 이들은 5년 전에 처음 만났다. 당시는 조감독과 오디션을 보러온 배우였다. 당시 그 배우는 무명이어서 아쉽게도 배역을 맡지 못했다. 하지만 그 배우의 잠재력을 꿰뚫어 본 조감독은 이번엔 아쉽게도 함께 하지 못하지만 기회가 오면 꼭 함께 하고 싶다는 메시지를 전화에 음성 메시지로 남겼다. 그 메시지를 배우가 들으며 남을 배려하는 그 마음을 마음에 담았다.
 
세상에는 놀라운 일이 가득하다. 나는 미처 생각하지 못하거나 간과한 것을 누군가는 짚어내는 것이다. 5년 후 다시 만난 두 사람이 만든 영화가 「살인의 추억」이고 이것은 공전의 히트를 쳤다. 5년 전의 송강호는 별 볼일 없는 배우였지만 봉준호는 그를 함부로 대하지 않았고, 배우 송강호는 그것을 잊지 않았다. 봉준호 감독은 『창작자들』에서 이렇게 회상했다.
 
당신이 언젠가 작은 이에게 손 건넨 적이 있다면 모두가 당신을 잊을지라도 그 사람만은 당신의 손을 잊지 않을 것이다.
 
새로운 영화를 만드는 힘은 언제나 작은 이야기로 시작한다. 이야기는 대중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 하지만 그런 놀라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사람은 사실 바로 자신의 옆에 있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이다. 그들은 바로 이웃 사람, 직장 동료, 지역사회의 이야기, 심지어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의 이야기나 벽화 속 인물들의 이야기도 귀 기울여 들을 수 있다.
 
지금 미국에선 시위로 몸살을 앓고 있다. 한 흑인이 경찰의 목눌림으로 목숨을 잃었고 다른 흑인 청년은 개 목줄을 해달라고 부탁을 했다가 곤욕을 치러야 했다. 21세기가 되었지만 여전히 미국 땅에서 차별하는 사람이 있다는 건 부끄러운 일이다. 사진과 동영상을 통해 보면서 여전히 사람이 사람으로 존중받지 못하는 것에 슬픔을 느낀다. 그래서일까 여행작가 김남희가 쓴 글이 생각난다.
 
발은 가장 낮은 자리에서 무거운 몸을 견딘다. 잘 보이지 않는 곳에서 힘든 일을 도맡은 발은 과묵하다. 발은 아프고 난 후에야 겨우 (존재를) 드러낸다.
 
발은 속수무책으로 우직하다. 때론 굳은살이 박히고 엄지발톱이 까맣게 죽어도 발은 고단한 인생길의 고통을 견딘다. 그 덕분에 우리는 아름다운 풍경을 구경하고 하루의 삶을 견디어낸다. 몸이 건강해지려면 발도 돌보아야 하듯이 사회도 건강해지려면 우리는 묵묵히 수고를 견디는 누군가를 타자가 아니라 살아 숨 쉬는 사람으로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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