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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찬식의 청담유감(有感)

정몽주와 문재인

스카이데일리(skyedaily@skyedaily.com)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20-12-09 09:36:55

 
▲홍찬식 칼럼니스트(전 동아일보 수석논설위원)
이재명 원희룡 發 ‘조선 의금부 논쟁’의 진실
현 상황은 고려 말 조선 초와 흡사한 점 있어
정몽주, 실리·세력균형론으로 후세에 높은 평가
문재인, ‘퇴임 후 안전’ 집착으로 난맥상 자초
민심 떠나면 공수처 등 보호막 아무 소용없다 
 
이재명 원희룡 두 대권 주자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문제를 두고 충돌했다. 여당 쪽 이재명 경기지사가 공수처의 필요성을 주장하면서 공수처를 조선시대 의금부에 비유하자 야당 쪽 원희룡 제주지사가 반박에 나선 것이다. 이 지사는 ‘조선 태종이 친인척 비리를 막기 위해 의금부(지금의 공수처)에 지시해 외척 발호를 방임한 사헌부 대사헌(지금의 검찰총장)과 관료들을 문책했다’고 페이스북에 썼다. 그리고 ‘태종이 부패 기득권에 단호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면 세종의 태평성대는 요원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600년 전인 1414년에 설치된 조선의 의금부와 문재인 정권의 공수처는 엄밀히 말해 비교 대상이 될 수 없다. 해당 제도를 탄생시킨 사회적 정치적 배경과 맥락이 너무도 다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지사의 의도가 과거 역사에서 오늘의 시사점을 찾아보자는 뜻이라면 굳이 경청을 마다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그의 말이 공감을 얻으려면 어느 정도 상호 연관성을 지니면서 역사적 교훈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 이 지사의 비유는 이 점에서 부적절하고 엉뚱하다.
 
조선시대 의금부는 고려 말기에 설치된 ‘순군만호부(巡軍萬戶府)’에 뿌리를 두고 있다. 고려 말 극심했던 혼란기에 치안 유지를 위한 군사(軍事)기구이면서도 한편으로 왕권을 수호하기 위한 사법기구의 기능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다 조선시대로 넘어오면서 군사적 기능은 배제되고 ‘정치재판소’와 ‘양반재판소’로 역할이 바뀌게 된다. 왕권에 반대하는 세력들이 형식적인 재판 과정을 거쳐 제거됐다. 관련 연구(이상식 ‘의금부고(考)’ ‘법사학연구’ 1977)에 따르면 ‘의금부는 왕권에 밀착하여 전제 군주들에게 신권(관료들의 권한) 탄압의 도구로 활용되어 무한한 권한을 행사하는 비대한 기구’라고 정의한다.
 
이처럼 의금부의 ‘실상’은 이 지사가 거듭 주장한대로 ‘권력의 상호 견제’가 아니라 ‘최고 권력의 관료 장악’이 목적이었다. 게다가 공포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무소불위의 초법적 기구였다. 청와대와 여당이 내세우는 ‘착한 공수처’ 개념과는 오히려 정반대 방향이라고 할 수 있다. 원희룡 지사는 ‘의금부를 공수처에 비교한 것은 교묘하게 청와대와 공수처를 ‘디스’한 것 아니냐’고 비꼬았는데 원희룡 지사의 시각이 역사적 사실에 더 근접한다.
 
기왕에 공수처 문제가 역사 논쟁으로까지 비화된 마당에 의금부와도 관련이 있는 고려 말기의 역사를 다루고 싶다. 현 국내 상황은 당시와도 흡사한 측면이 있다. 요즘의 미중(美中) 구도처럼 중국 대륙에서 세력 교체가 막 진행되던 때였고, 고려 내부에서는 친원(親元)파와 친명(親明)파로 갈라져 갈등을 벌였으며,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탄핵과 숙청이 난무했던 점이 그렇다.
 
그 시기에 뚜렷한 자취를 남긴 인물로 정몽주가 있다. 강직한 충신의 상징처럼 우리 이미지에 남아 있지만 사실은 실리적이고 현실 감각이 뛰어난 사람이었다. 그는 당시 양대 진영이었던 최영과 이성계 사이에 세력 균형이 유지되는 한 고려는 안태(安泰)하다고 여겼다. 이를 위해 자기 위치에서 어느 한 쪽이 밀리지 않도록 이쪽저쪽을 번갈아가며 지원했다.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으로 최영 세력이 몰락하고 나서도 그가 끝까지 조정을 떠나지 않은 것은 조금이라도 타협과 협상의 역할을 맡아 억울한 죽음을 줄이려는 안간힘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어긋나기 십상이어서 끔찍한 살육전 가득한 암흑의 시대로 귀결됐다.
 
요즘 한국 정치의 난맥상이 계속되는 이유는 세력 균형이 깨어진 탓이다. 최근에도 간첩 수사를 무력화하는 국가정보원법, 헌법 상 표현의 자유를 훼손하는 대북전단금지법, 야당의 비토권을 삭제한 공수처법 개정안 등이 여당 멋대로 국회를 통과하거나 통과를 앞두고 있다. 유신 시절을 빼고 이런 폭주는 없었다.
 
또 다른 원인은 문 대통령의 ‘청와대 무사 탈출’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다. 그에게 단기적인 목표는 남은 임기인 1년 5개월 뒤에 불법과 비리가 드러나지 않은 채 청와대를 무사히 빠져나가는 것이고, 그 이후는 자신의 안전 보장이다. 그리고는 올해 초 언급한대로 경남 양산의 사저에서 조용히 잊혀지고 싶다.
 
하지만 이 시나리오의 치명적 결함은 잘못된 목표 설정이다. 문 대통령의 ‘잊혀질 자유’나 ‘퇴임 후 안전 보장’은 정권의 목표가 될 수 없고, 또 되어서도 안 된다. 모든 정권의 지향점은 두 말할 필요 없이 국가와 국민을 위해 성과를 올리는 것 아닌가. 퇴임 이후는 결과로서 따라오는 것이다. ‘과정’과 ‘결과’가 뒤바뀌고 첫 단추부터 잘못되었으니 무리수가 계속된다.
 
정권 초기에 국민 전체를 아우르는 통합에 나섰으면 좋았을 텐데 겉으로는 ‘적폐 청산’, 속으로는 ‘권력 독점’을 하려고 나라를 반쪽으로 갈라놓고 증오의 씨앗들을 뿌려놓았으니 퇴임 후 공포는 어쩌면 인과응보다. 오랜 친구의 숙원을 풀겠다며 청와대 전체가 동원된 울산시장 선거 공작에서 문 대통령은 ‘몸통’이었다. 월성 원전 경제성 조작 사건은 대통령의 “원전을 언제 닫을 거냐”는 채근에서 비롯됐다. 가려진 실체가 확인되면 자신의 ‘잊혀질 자유’는 날아가 버린다.
 
‘살아 있는 권력’도 공정하게 수사한다는 윤석열을 몰아내는 게 급선무다. 다음으로 내년 4월 서울시장 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 승리해 기선 제압을 해야 한다. 2022년 대선에서 민주당의 재집권도 기필코 이뤄내야 한다. 내 편이 후임 대통령이어야 안심이 된다. 아울러 당장 자신이 기소되는 일이 없도록 ‘심판’인 검사 판사들을 휘어잡아야 한다. 공수처 타령은 ‘퇴임 포비아’의 다른 얼굴이다.
 
정몽주의 상소문이 전해온다. ‘신(信)은 임금의 큰 보배입니다. 국가는 백성에 의해 보전되고 백성은 신의에 의해 보전되는 것입니다.’ 최고 지도자의 리더십은 백성의 믿음으로부터 나온다는 명언이다. 실용주의자이자 세력균형론자로서 그는 정치의 본질을 꿰뚫고 있었다. 그를 선죽교에서 살해한 조선 태종도 결국 민심에 밀려 정몽주를 복권시킨다. 문 대통령은 이 이치를 알고 있었을까. 문 대통령이 자기 주위에 온갖 성벽을 둘러쌓아도 민심이 떠나면 모래 위의 성에 불과하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새롭게 죄업을 쌓는 일을 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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