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로 보는 상권|빌딩|재건축 뉴스

뒤로 리스트 인쇄
news only email오류보내기 트위터페이스북밴드카카오톡

이재언의 문화방담(放談)

한국 수채화는 ‘정우범’ 전·후로 나뉜다

스카이데일리(skyedaily@skyedaily.com)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21-05-28 09:20:23

 
▲이재언 미술평론가
/미답의 소재들을 그려 수채화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
/순수한 국내파 화가로서 미국에서 먼저 인정을 받아
/기교 없는 듯하나 작가만의 다양한 독창적 기법 창안
/‘판타지아’ 연작, 코로나 블루로 신음하는 이들에 위안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직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떤 잡지사 대표로부터 작가 포트폴리오 하나를 건네받았다. 수채화를 하는 광주 작가라는데 서울 전시를 주선해주면 좋겠다는 것이다. 작가의 이름은 생소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재야의 고수들이 워낙 많아 약간의 기대를 갖고 펼쳐 보았다. 단순한 호기심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웬걸, 보기 드문 신선함과 깊이에 놀랐다. 수채화라는 게 믿어지지 않았을 정도로 처음 보는 새로운 경지의 수채화였다. 게다가 그 작가는 약력 상으로 이미 미국 워싱턴 미셀(Michel)갤러리 전속작가로서 여러 차례 초대전을 가진 바 있었다는 것이다. 작품의 수준으로 보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지만 여러 가지 확인을 할 필요가 있었다.
 
마침 광주비엔날레 관람 차 광주에 내려갔을 때 작가의 작업실을 방문하였다. 실제로 본 작품들은 수채화로서는 일찍이 본 적이 없는 대작들이었으며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눈부셨다. 작가 정우범과의 첫 만남이 그렇게 이루어졌다.
 
▲ 맨드라미, 100x100cm, 2019
 
작업실에서 가장 인상적으로 본 작품들은 다름 아닌 ‘겨울 목화밭’ 연작이었다. 상상해 보라. 목화를 수확하고 난 후 앙상하게 마른 가지만 남은, 희끗희끗하니 그야말로 볼품없는 겨울 목화밭이 어떻겠는가. 감상적으로 바라보든 심미적으로 바라보든, 그것을 화폭에 옮겼다 한들 작품으로 승화가 될까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하고, 또한 묘사하는 일도 그리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니 말이다. 아무리 작가의 기량이 뛰어나다 해도 누구나 할 수 있는 게 있고, 또 못하는 게 있는 법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은 그저 그런 대상을 주시하여 기가 막힌 표현의 역량을 펼치며, 수채화에 대한 편견을 불식시키고도 남을 쾌거를 이루었다. 아울러 미국에서의 성과들이 빈말이 아니었던 것을 충분히 입증했다.
 
▲ Fantasia, 125x85cm Aqua acril indiaink arches canvas 2020
  
얼마 후 작가의 전시가 서울 인사동 선화랑에서 열렸다. 출품작들 모두가 솔드아웃되었을 뿐 아니라, 유료로 판매하는 팜플렛까지도 품절되어 재판을 찍어야 했다. 도록까지 재판을 찍는 경우는 블록버스터 전시에서나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관람자들이 하나같이 하는 말이 ‘이게 수채화 맞냐’는 것이었다. 그냥 한 마디로 흥행 대박이었다. 좀 과장일지 모르지만, 우리나라 수채화는 ‘정우범 전’과 ‘정우범 후’로 나뉜다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 Fantasia 125x85cm Aqua acril indiaink arches canvas 2020
  
사실 수채화는 화단이나 미술시장에서 불리한 점들이 많다. 수채화가 보통 유화에 비해 표현의 제약이 많을 뿐 아니라, 다들 어린 시절 다뤄본 경험들로 인해 다소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수채화에서 출중한 작가가 잘 나오지 않았다는 점도 한몫한다. 미국의 거장 앤드류 와이어스는 미국민들에게 시적인 감동을 준 걸작들을 많이 남겼는데 대부분 수채화 종류다. 정우범의 등장으로 우리 수채화의 수준은 크게 높아졌다. 이러한 작가의 성취에는 작가의 재능이 큰 몫을 하며, 화면에는 작가만의 개성적 비결을 탑재하고 있다. 그의 비결이 무엇인지 살펴보자.
 
▲ 판타지아, 95x55cm 아쿠아 아크릴, 2014
  
첫째, 그는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수채화로서 금단의 소재라 할 수 있는 것들을 오히려 더 즐겨 도전한다. 겨울목화밭, 성벽, 돌탑, 석불, 늪…, 유화든 수채화든 도저히 그림이 될 것 같지 않은 소재들이 많다. 특히 수채화에서는 표현하기 어려운 것이 더 많다. 작가의 기질은 그런 것들을 과감하게 화면으로 도입, 수채화의 깊이와 품격을 몇 단계 높이게 했다. 또한 상투적이고 진부한 소재들도 그의 화면에서는 다르다. 똑같은 정물들도 그의 화면에서는 품격이 달라진다.
 
▲ 337985_336055_2239
 
둘째, 그의 수채화에는 물맛이 살아 있다. 흐르고 번지는 특성을 과잉이 아닌가 싶을 정도, 분방하다 싶을 정도로 살리면서 물맛을 낸다. 물론 이러한 작가의 방법에는 목면으로 제조된 아르쉬 같은 수채화 용지가 있기에 가능한데, 작가는 용지의 물리적 한계 끝까지 다다를 정도로 흥건히 적시기도 하고 물기를 다시 빨아내기도 하는 조절을 마술을 펼치듯 수행한다. 오랜 세월 먹을 사용해온 역사 때문인지, 우리 정서는 기름 종류보다는 물에 더 가깝다. 수채화가 우리 대중들에게 사랑 받을 조건은 충분함을 작가는 오래 전부터 간파하고 있었다.
 
▲ 1471256564203
  
셋째, 작가 그림의 비결은 ‘무기교의 기교’ 혹은 ‘미완의 여운’이다. 작가의 그림은 무슨 파격을 보이거나, 대단히 세련되고 화려한 필치를 자랑하고 있지도 않다.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그리다 만 것 같은 경우도 흔하고, 묘사 자체도 마치 오래된 돌부처를 보는 듯한 투박함이 있음에도 그의 화면은 감성적으로 흡입하는 힘이 있다. 어떤 경우도 화면에서 정밀한 묘사가 없다. 하지만 화면은 언제나 살아 있다. 자세히 보면 분방하게 그린 것 같지만, 그 밑에는 작가만의 장치들이 용의주도하게 탑재되어 있다. 꼬챙이를 꺾어서 그린다거나 핀으로 종이를 긁는다거나, 글자를 스트로크 속에 은밀히 내장시킨다거나 하는 것들이다. 하나의 제스쳐처럼 보일 수도 있으나 실제 화면이 힘을 갖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그림의 작가 사인도 긁어서 하고 있다. 기교가 없는 듯하나 알고 보면 그것들이 적절히 숨어 있을 뿐이다.
 
▲ 작가 정우범
 
작가는 최근부터 아크릴 안료를 함께 사용한다. 같은 수성이지만 좀더 명료하거나 강렬한 색상을 얻고자 하거나 할 때 사용한다. 그러한 안료 병행을 통해 ‘판타지아’ 연작을 쏟아내고 있다. 형형색색의 꽃이 소재가 되고 있는데 어딘지 모르게 꿈결에서 마주하는 유토피아와도 같은 화면들이다. 어디선가 청아한 목소리의 ‘넬라 판타지아’가 들려오는 것 같은 환상이 보는 눈을 행복하게 한다. 고달픈 삶을 살아가는 대중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주고 싶어 그려온 것인데, 코로나 팬데믹으로 고통당하는 동시대인들에게 위로와 안식의 특효를 발휘한다.
 
작가의 그림은 특이하게도 액자도 작품이다. 보통은 액자라는 것이 그림과 바깥 공간을 구분시켜주는 장치인데, 작가는 액자에도 그림을 그린다. 경계를 허물고 그마저도 판타지아를 무한하게 펼치고 싶은 욕구의 상징일 것이다. 자신의 그림이 관객들과 온전한 소통과 교감을 성취하는 그림이도록 하는 배려로 그의 그림은 보다 큰 그림으로 기여하는 것이다.
 

  • 좋아요
    3

  • 감동이예요
    0

  • 후속기사원해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

<저작권자 ⓒ스카이데일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하림을 국내 최대의 닭고기 회사로 키운 '김홍국' 회장이 사는 동네의 명사들
구한서
동양생명보험
김홍국
하림그룹
오치균
뒤로 리스트 인쇄
email오류보내기 트위터 페이스북 밴드 카카오톡
독자의견 총 0건의 댓글이 있습니다.
등록하기

스카이 사람들

more
“느리더라도 사람들과 같이 가는 도시를 만들고 싶어요”
재미있고 안전한 도시 목표… 초등학생·자전거 ...

미세먼지 (2021-06-24 19:00 기준)

  • 서울
  •  
(최고 : )
  • 부산
  •  
(최고 : )
  • 대구
  •  
(최고 : )
  • 인천
  •  
(최고 : )
  • 광주
  •  
(최고 : )
  • 대전
  •  
(최고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