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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언의 문화방담(放談)

‘살아 있음’의 몸짓과 서사

매체시대 이단아 ‘이안 리’ 매개를 최소화해 몸을 붓으로 사역

내면의 절실한 언어를 솔직하게 드러내는 방법으로 몸을 선택

‘살아 있음’을 매 순간 감사하게 여기며 생명의 서사를 펼치다

스카이데일리(skyedaily@skyedaily.com)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21-06-11 12:35:23

 
▲이재언 미술평론가
 인류가 원시적인 예술적 표현을 처음 시작할 때 사역된 매개는 몸이었을 것이다. 초자연적 영매인 샤먼의 주술과 신탁에 의해 몸을 움직이는 제의가 최초의 예술적 표현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물론 노래나 동굴벽화가 뒤에 나타났을 것이라는 선후관계 역시 추측일 뿐이다. 분명한 것은 제의로든, 혹은 예술적 표현으로든 몸의 직접성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으로 보인다. 아무튼 예술은 몸 외에도 다양한 매개를 발전시켜 수많은 장르들로 분화되어 왔다. 그러다 보니 춤과 미술은 서로 별 연관성이나 상호작용 없이 고립적으로 진화를 이루어 왔다. 미술, 특히 회화에서 몸의 역할은 상당히 제한적이다. 도상의 결과를 중시할 뿐 몸이 수반되는 과정은 큰 의미가 없었다.
 
19세기 인상주의 이후부터 자기성찰이 시작되면서 몸과 내면의 감정이 반영되는 움직임, 특히 필치 같은 것들을 화면의 생명처럼 대하기 시작한다. 그러다 20세기 초 다다이스트들의 몸을 통한 실험이나 장르 간 인터액션 시도를 기점으로, 액션페인팅이나 이브 클랭의 인체측정이라는 누드 퍼포먼스에서 정점을 이룬다. 마르셀 뒤샹의 바톤을 이어받아 프랑스 아방가르드의 한 획을 그은 이브 클랭은 다다이스트들의 산만한 유산들을 강렬한 임팩트로 정리, 아방가르드의 새 지평을 열었다. 영화 <몬도카네>에까지 소개된 누드 퍼포먼스, 벌거벗은 채 몸에 페인트를 뒤집어쓴 여성 퍼포머들의 신체들을 천에다 바디 프로타주를 한 도큐멘트까지 남긴 쇼킹한 이벤트로 회자되고 있다.
 
직접적 신체성에 역점을 둔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우리가 대화나 소통을 하는 과정에서 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때 몸짓이 앞서거나 제스츄어가 커진다. 따라서 작가 입장에서는 의식 저 밑바닥의 원초적이고 본능적인 것들을 절실하고 긴박하게 끄집어냄을 의미하는 것이다. 아울러 관객의 입장에서라면 결과 이전의 과정들, 특히 몰입 상태에서 오는 자연성과 욕구의 발산 등을 진지하게 공유하는 데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절박성, 솔직함과 진지함, 직접성, 자연성 등을 가치로 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 화단에서 몸을 붓으로 사용하는 독특한 사례를 ‘이안 리’에게서 볼 수 있다.
 
몸을 썼다는 점에서는 이브 클랭을 떠올릴 수도 있다. 하지만 이안 리는 그러한 원시 제의적 혹은 어떤 담론을 의식한 선언적 차원의 퍼포먼스와는 거리를 두고 있는 듯하다. 동기로 치자면 오히려 어린 시절 안료가 섞인 풀을 손에 묻혀 그림을 그렸던 소박한 기억들이 더 직접적일지도 모른다. 안료를 손으로 만졌을 때 미끌미끌한 촉감과 그것이 화폭(매끈한 아트지나 밑칠이 잘 된 캔버스) 위에서 매끄럽게 슬라이딩하면서 느껴지는 쾌감을 기본적으로 중시한다. 작가의 신체적 사역은 비교적 제한적이다. 팔뚝, 손바닥, 손가락, 손톱으로 이어지며 필요에 따라 부위가 선택된다. 행위의 과정에서 율동적인 미끄럼을 수반하는데, 이러한 원초적인 쾌는 지속성과 중독성을 지니고 있다. 심리학에서 촉각적 경험은 시각이나 청각, 후각에 비해 저등하고 원시적인 것으로 분류된다. 어떤 대상에 대한 원근과 같은 정보의 인지와 식별이 다른 기관의 기능에 비해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촉각 경험은 오래 지속되고, 그 경험의 저장이 의식보다는 무의식 깊은 곳에 이루어진다.
 
▲화가 ‘이안 리’  [사진제공=필자]
 
작가가 신체 피부를 통한 직접성을 고집하는 데는 그만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작가에게는 내면으로부터 분출되는 생명 에너지와 호흡들이 중요한 모티브이다. 심리적인 충격과 좌절을 겪어본 작가는 대상을 외부에서 찾기보다 자기 내면에서 포착된 갖가지 감정의 실재들을 표현하고자 한다. 한 예로 작가가 심근경색을 겪을 때 닥쳐온 극심한 통증,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경험한 공포감 역시 동기들 중의 하나인데, 그 경험들이 바탕이 되어 <통증일기>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이쯤 되면 그의 화면을 무의식 차원에서만 설명하기가 난감해진다. 조금 다른 정신성으로서 ‘혼’이라 부를만한 절실함과 진지함으로 기술할 수도 있겠다.
 
작가의 그리기는 다다이스트들이나 초현실주의자들이 즐겨 구사했던 오토마티즘과 통한다. 우연적이고 즉흥적인 행위의 흔적들도 무의식 저 밑에서 길어 올린 결과물이다. 작가는 최대한의 무위적 몰입이나 무아지경을 전단계로 존중한다. 최저의 생리적인 호흡만을 남겨둔 채 갖은 생각들을 지우고 비워내면 도래하는 무관심적 무아지경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작가에게 있어 무의식과의 조우를 위한 가장 두드러지는 방법은 ‘즉흥성’이며, 그의 논리가 나름 설득력을 갖는다.
 
작가의 그림 양식을 많은 사람들이 ‘서법적’이라 기술하고 있다. 실제로 그의 그림 대부분이 신체로 그린 것임에도 불구하고 모필로 글씨를 쓴 것 같다. 그의 그림에서는 안료와 화폭의 물성적 상호작용이 더 강조되고 있다. 대체로 무의식에 기반한 추상표현적 양식에서 흔히 나타나는 감정의 과잉이 그에게는 오히려 아카데믹하고 절제된 양상을 보인다. 리드믹한 속도감이 감정의 과잉과 혼동될 수는 없다. 그의 서법추상은 상당히 감각적이다. 선들의 움직임이 생명의 약동을 표출, 그 양상은 유려하고 서정적이다. 특히 굵은 선들의 움직임이 단조롭지만 그 안에 미묘한 아우라가 살아 있다. 요컨대 작가는 그림이 그림다워지는 회화적 완성도에 집중한다고 할 수 있다. 궁극적으로 작가가 추구하는 미학의 요체는 이제 명확하다. ‘살아 있음’은 ‘죽은 것’과 어떻게 다른가를 그림으로 말하는 것이다. 그의 그림에서 심장의 박동이 유난히 크게 들리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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