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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호의 ‘맛있는 동네 산책’
백년명가를 위한 대물림 시작한 ‘백면옥’
신·구 도심 조화로운 인천 연수구에 울려 퍼지는
평양냉면 맛집 일군 백 씨 부자의 아름다운 하모니
유성호 필진페이지 + 입력 2021-08-20 10:15:05
▲ 유성호 맛칼럼니스트
인천 연수구에는 우리나라 평양냉면의 새로운 계열을 일구고 있는 ‘백면옥’이 있다. 10대 후반부터 뛰어들어 40년 외식업 내공의 백익남(55) 오너 셰프가 3년 전 연수역 인근 B급 상권에 야심차게 문을 연 곳이다. ‘백면옥’은 백익남 이름 석 자를 건 승부수였다. 3년이 지난 지금 ‘백면옥’은 후발주자이지만 수도권 평양냉면 맹주로 맹위를 떨치고 있다. 그간 그만큼의 노력이 있었다는 방증이다.
 
코로나19가 4단계 거리두기라는 최악의 국면을 치닫던 8월 광복절에 찾은 ‘백면옥’은 웨이팅이 살짝살짝 걸릴 정도로 손님이 끊임없이 들어오고 있었다. 적지 않은 매장을 널찍하게 쓰고 있는 터에 만석이지만 쾌적한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주방의 빠른 음식 준비와 물 흐르는 듯 무리 없는 서빙도 편안한 식사를 뒷받침했다.
 
‘백면옥’이 자리 잡고 있는 연수구는 어떤 땅의 역사를 가지고 있을까. 식당의 역사를 알면 그러하듯 땅의 역사적 배경을 알고 음식을 접하면 맛이 배가 된다. 연수구는 뜻밖에 재미있는 현대사를 가지고 있었다. 연수구 역사를 거슬러 가보자.
 
인천 연수구는 1995년 3월 남구에서 나뉘어 신설된 지역이다. 연수라는 지명은 연년익수(延年益壽)에서 유래했다. 나이를 많이 먹고 장수한다는 의미다. 그 땅에 사는 사람들의 장수의 기복을 담은 듯하다. 현대에 작명된 구명(區名) 치고는 매우 세속적이거나 한편으론 고답적이다.
 
송도국제도시 품은 인천 연수구
 
▲ 왼쪽 위부터 시계 반대방향으로 1964년 송도해수욕장 유원지와 연수동 함박마을, 송도국제도시. 연수구는 3개의 블럭으로 확연히 구분된다. [사진 제공=국가기록원]
 
연수구는 송도국제도시를 품고 있는 자치구로 유명하다. 송도국제도시 조성은 중산층 인구의 꾸준한 유입과 이에 따른 교육 환경 조성 등이 선순환하면서 ‘인천의 강남’이란 별칭으로 불릴 정도로 발전했다. 이런 송도의 발전을 예상해서 이곳을 차지하기 위한 인접한 남구, 중구, 남동구 등 자치구 간 싸움이 치열했다.
 
2009년 1월 인천경제자유구역청은 매립 중이던 송도국제도시에 대한 행정관할권을 연수구에 몰아주는 결정을 내렸다. 당연히 남구, 중구, 남동구가 발끈하고 들고 일어났다. 이들은 그동안 해상 경계선을 따라 송도국제도시 관할권을 다퉈왔기 때문이다. 인천경제청은 당시 매립공사를 끝내고 연세대 캠퍼스 등이 조성 중인 송도국제도시 5·7공구(653만4000㎡)와 아암물류단지를 조성하는 9공구(468만6000㎡)를 연수구에 편입시켰다.
 
주민 생활 편의와 경제자유구역의 개발·운영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이와 함께 매립 계획이 선 10·11공구도 연수구에 편입시키기로 했다. 송도국제도시 매립지역 5316만㎡를 모두 연수구에 편입시킨다는 방침을 내놓았던 것이다. 그러니 주변 자치구의 발끈함은 예견된 일이었다.
 
인천시가 오래전 해상 경계선을 따라 송도국제도시를 중구 등 4개구로 분할하는 조정안을 제시했는데 어떤 협의도 없이 6개월 만에 인천경제청이 이를 뒤집었다는 것이다. 이들은 인천경제청 결정에 대해 효력정지가처분 신청과 권한쟁의심판 청구, 헌법소원 등 법적 대응을 이어나갔다. 이 문제는 2011년 9월에서야 헌법재판소가 인천시의 결정에 문제가 없다는 최종 판결을 내림으로써 일단락됐다. 이후에는 송도 신항을 놓고도 옥신각신하는 등 명분은 행정 효율성을 내세우지만 속내는 ‘세수 증대’라는 이권(?)을 두고 치열하게 땅과 공유수면 따먹기를 계속해 왔다.
 
연수구는 구도심과 첨단의 신도시가 공존하는 재미난 공간이다. 구 송도유원지를 품은 바닷가 동네 옥련동과 문학산 서쪽 자락 청학동 일대는 예로부터 마을이 조성된 오리지널 구도심 지역이다. 이들 이외 지역은 1990년대 이후 조성된 신도시다. 1990년대 수도권 분당·산본·평촌·중동·일산이 1기 신도시로 개발될 때 인천 연수지구는 대전 둔산지구 등과 함께 택지지구로 개발된 곳이다.
 
연수동·동춘동이 중심인 연수지구는 ‘백면옥’과는 청능대로를 사이에 두고 있다. 아직까지는 이 지역에 연수구청이 자리 잡고 있으면서 중심 역할을 하고 있지만 송도국제도시로 무게 중심이 차츰 옮겨가는 분위기다. 그러나 연수구 중심축은 매립도시 송도보다는 내륙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1기 신도시를 개발한 지 30년이 넘어서면서 이 지역 개발이 가속화되면 송도에 버금가는 상권이 형성될 것이란 전망도 이를 뒷받침한다.
 
외식 경력 40년…가업승계 시작한 ‘백면옥’
 
▲ 인천 연수구 평양냉면 전문점 ‘백면옥’이 가업승계를 시작했다. 왼쪽부터 부인 김정희 씨, 아들 백건준 씨, 백익남 ‘백면옥’ 오너셰프 가족. [사진=필자 제공]
 
종합하면 연수구는 오리지널 구도심과 1기 신도시로 개발된 구도심, 그리고 최첨단 신도시 송도국제도시라는 신·구(新舊) 주거 공간과 상권이 조화롭게 개발되면서 발전하고 있는 자치구다. 연수구 명물 ‘백면옥’ 역시 비슷한 공간이다. 백익남 셰프에 이어 그의 둘째 아들 백건준(25) 씨가 가업 승계를 위해 식당에 투신, 부자가 신구 조화를 맞춰가고 있다.
 
건준 씨에게 가업을 잇기로 결심한 결정적 계기에 대해 묻자 “처음엔 잘 몰랐으나 아버지 음식을 계속 접하다 보니 평양냉면의 매력에 빠지게 됐고, 호불호가 강한 음식이다 보니 대를 이어 음식을 널리 알리고 싶어 가업을 잇기로 결심했다”고 답했다. 중독성이 강한 평양냉면의 매력을 보다 많은 사람에게 전하고 싶단 의미로 해석된다. 특히 남들에게 자신 있게 선보일 수 있는 아버지 음식에 대한 자부심이 읽힌다.
 
건준 씨에게 아버지 백 셰프는 음식에만큼은 엄격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있다. 건준 씨는 “아버지는 어린 시절부터 외식업에 종사하면서 고생을 많이 하셨다”며 “그러다 보니 요리에 엄청나게 진심을 가지고 임하신다”고 말했다.
 
아울러 요리는 진정성을 가지고 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주셨다고 덧붙였다. 건준 씨는 “아버지는 손님에게는 한없이 유하시고 음식 앞에서는 매우 엄격하신 분인 것 같다”며 “이 때문에 처음에는 많이 힘들었지만 음식에 아버지가 노력한 흔적이 많이 남아 있어서 더 존경하게 됐다”고 말했다.
 
건준 씨는 앞으로의 각오에 대해 “독립을 목표로 노력해서 아버지의 맛을 널리 알리고 유지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에 대해 백 셰프는 “1~2년 정도 전수교육을 시켜 창업시킬 계획”이라며 “2호점은 연수구의 첨단 신도시 송도국제도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건준 씨는 ‘백면옥’ 입사 전 1년8개월 정도 아르바이트 하면서 기본적인 칼질과 음식 만드는 법을 배웠다. 이를 백 셰프는 상당히 고무적으로 평가했다. 백 셰프는 “아들의 준비 과정을 뒤늦게 전해 듣고 무척 기특한 생각이 들었다”며 “백면옥 이름을 걸고 ‘주니어 백셰프’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아들이 동작이 빠르고 눈썰미도 있다. 게다가 음식에 대한 해석도 남다른 게 장점이다. 단점이라면 창업 욕심이 좀 빠른 것이다”
 
세상 아버지들의 걱정은 매 한 가지다. 조급함에 대한 경계다. 백 셰프도 바쁠수록 돌아가란 옛사람들의 경구가 현대 사회에도 유효하다는 것을 건준 씨한테 알려주고 싶은 것이다. 백 셰프는 그러나 아들의 창업 욕심을 살짝 우려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견고하게 지지하고 있다. 이미 2호점의 입지를 정해놓은 것이 그 증거다. 아버지는 연수구 구도심, 아들은 신도시에서 ‘백면옥’이란 간판을 내걸고 서울 손님까지 불러들이는 평양냉면 명소가 될 날이 그리 멀지 않은 듯하다.
 
어려운 상황서도 선전하는 평양냉면 명가
 
‘백면옥’은 코로나19로 인한 거리두기 4단계에서도 선전하고 있는 외식업체다. 백면옥의 시그니처 메뉴인 어복쟁반과 평양냉면, 그리고 사이드 메뉴인 만두와 빈대떡 등. [사진=필자 제공]
 
‘백면옥’이 평양냉면의 한 일가를 이루었다는 것은 코로나19 시대를 무색하게 하는 손님들이 증명하고 있다. 주말이나 공휴일에는 가족 단위 손님들로 북적인다. 야간에는 가족관계증명서를 보여줘야 하는 번거로움 때문에 낮에 많이 몰린다. 그래서 12시부터 3시까지 쉼 없이 꾸준하게 좌석이 회전한다. 냉면이 음식 특성상 회전율이 빠른 메뉴라서 이 같은 현상은 요즘 같은 외식업 위기 시대에 대단한 선전(善戰)이다.
 
필자가 백면옥 창업 이전부터 백 셰프를 가까운 거리에서 봐온 바로는 ‘백면옥’의 성공은 진정성 있는 ‘맛’에 있다. 40년 외식업 전문가, 평양냉면 전수 창업 전문가로서의 음식에 대한 자존심을 맛으로 잘 녹여낸 것이 소비자 마음에 닿은 것이 아닐까 싶다. ‘백면옥’ 평양냉면 육수는 서울의 우래옥과 비견될 만큼 육향이 농후하고 기름진 맛을 자랑한다.
 
고명으로 올라간 수육이나 어복 쟁반용 고기를 보면 얼마나 좋은 고기로 육수를 우리는지 알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백면옥’ 냉면 육수는 대한민국에서 다섯 손가락에 꼽히는 ‘찐육수’다. 평양냉면 마니아들이 육수만큼이나 중요하게 여기는 게 면이다. 그런 면에서 면은 나름의 일가를 일궈냈다고 해도 될 만큼 변별력이 있다. ‘백면옥’은 메밀 100%의 순메밀면과 70% 정도 되는 두 종류 면을 취급한다. 순 메밀면도 쉽게 끊어지지 않고 어느 정도의 탄성이 있다. 제면 기법이 남다르기 때문이다.
 
어복 쟁반은 묵직한 전용 놋 쟁반에 목이·백목이·표고 등 버섯류와 대파·당근·깻잎·부추 등 채소류를 빽빽하게 담아 내온다. 이와 함께 같은 구성의 별도 채소 한 접시와 아롱사태 한 접시, 육수를 따로 제공한다. 채소는 리필용이고 사태살 한 접시는 육수가 끓고 채수와 섞이면 그때 적당히 적셔 먹으란 의미에서 따로 나오는 것이다.
 
근육이 점점이 박혀서 아롱아롱 빛나는 사태살을 뜨거운 육수에 푹 적셔 먹으면 권주가(勸酒歌)가 절로 나온다. 어복 쟁반에 따라 나오는 다시마와 대파 장아찌의 깊은 맛은 백 셰프의 음식 솜씨를 가늠케 하는 지표다. 계절마다 장아찌류가 달라지는데, 배우고 싶을 정도로 맛의 깊이가 있다. 뜨끈한 어복 쟁반 식후에는 ‘백면옥’의 모토 선주후면·선육후면을 실천하기 위해 시원한 평양냉면으로 입가심을 하면 세상을 다 가진 듯하다.
 
식당을 나오면서 건준 씨에게 물었다. 만약 결혼해서 낳은 아이가 가업을 잇는다고 하면 어쩌겠냐고. “저 또한 그랬듯이 아이가 커서 저와 같은 생각을 가진다면 제가 가진 기술을 적극적으로 가르치고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입니다.” 창업 백 년을 향한 백년명가 ‘백면옥’ 역사는 이렇게 써내려져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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