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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지난 십여년 동안 200조원이 넘는 예산을 투입했음에도 출산율은 세계 최저 수준으로 추락했다. 많은 사회 구성원 사이에서는 “이제는 저출산 문제에 대한 접근방식 변경과 동시에 해결책을 바꿔야 할 때다”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기존에 시도되지 않았던 새로운 방안으로 이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줄어드는 양질의 일자리, 곤두박질치는 출산율 주범 지목
저출산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 중 하나로 양질의 일자리 감소가 꼽힌다. 양질의 일자리가 줄어들면서 자녀를 부양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공포감이 커지고 나아가 자녀세대 또한 경제적 위기를 겪을 수 있다는 불안감에 결국 출산을 포기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통계청이 10일 발표한 ‘10월 고용동향’에 안정적인 일자리와 근로 여건을 나타내는 근로시간에서 1주간 36시간 이상 취업자는 1652만6000명으로 작년 10월보다 444만명(-21.2%) 감소했다. 반면 36시간 미만 취업자는 1084만명으로 1년 전보다 521만4000천명(92.7%) 급증했다. 같은 기간 주당 평균 취업시간은 37.4시간으로 2.4시간 감소했다.
주당 36시간은 보통 전일제(풀타임)와 시간제 근무를 가르는 기준이 된다. 주 5일 근무를 기준으로 하루 평균 7~8시간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직장이냐 아니냐를 판단하는 척도다. 이는 상당수의 취업자들이 근로시간이 짧은 임시직 근로를 하고 있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즉 구직시장에 진입하지 못하고 아르바이트(알바) 자리를 전전하는 취업자가 늘어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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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크게 보기=이미지 클릭 / [그래픽=이호연 기자] ⓒ스카이데일리 |
괜찮은 풀타임 일자리가 사라지고 알바 등 시간제 일자리로 대체되는 현상은 연간 지표상으로도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주당 평균 근로시간은 통계 집계 이래 사상 처음으로 40시간대 미만을 기록했다. 통계청장을 지낸 유경준 국민의힘 의원실이 통계청 고용동향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전연령의 주당 평균 근로시간이 39시간으로 지난 1983년 통계 집계 이래 처음으로 40시간대 미만으로 떨어졌다. 2019년만 해도 40.7시간을 기록했지만 불과 1년 사이에 주당 평균 근로시간이 1.7시간 줄어든 것이다.
전문가들은 주 52시간 근무제 등 근로시간 단축 효과보다는 단기 근로자 비중 증가로 인해 주당 평균 근로시간이 줄어들었다고 분석한다. 실제로 지난해 풀타임 환산 고용률(FTE 고용률)은 사상 처음으로 50%대로 추락했다. 근로시간 단축은 근로 소득 감소로도 직결될 수 있다는 점에서 결국 국민 소득이 감소한 것으로 봐도 무방한 것으로 분석된다.
한 기업에서 중간관리자로 근무하는 40대 정성훈(가명·남)씨는 아직 결혼을 하지 못했다. 정 씨는 “저출산의 핵심은 일자리 문제다. 불안정한 일자리로 인해 미래에 키울 자식을 제대로 부양할 수 없다는 공포뿐 아니라 자녀들도 먹고 살기 어려우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이 출산을 가로 막는 장벽이라고 생각한다”면서 “그동안 정부가 예산을 많이 퍼부었을 뿐 실제로 결혼을 원하는 당사자의 입장은 고려하지 않은 셈이다”고 지적했다.
“가업승계공제제도 개선, 일자리 안정 통한 새로운 저출산 해결책”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가업상속공제제도 개선이 시급한 과제로 지목된다. 기업 경영권을 상속할 때 세 부담을 줄여주는 이 제도는 우리나라의 경우 매출 3000억원 이하 중소·중견기업에 대해 최대 500억원 한도에서 상속세 과세가액을 공제해주고 있다.
하지만 직원 수를 줄일 수 없도록 사후 규정을 두는 등 요건이 까다로워 공제 혜택을 보기가 쉽지 않다. 요건이 지나치게 까다로워 사실상 실효성이 없다는 평가다. 실제로 상속세 부담 때문에 가업승계를 포기하고 회사를 매각한 경우도 상당수 있다. 2014년 국내 1위 종자 기업 ‘농우바이오’, 2017년 세계 1위의 콘돔 제조사 ‘유니더스’와 생활용품 기업 ‘락앤락’ 등이다.
한 대기업에서 부장급으로 근무하던 40대 최혁재(가명·남) 씨는 부친의 뒤를 잇기 위해 몇 년 전 퇴직하고 가업승계에 나섰다. 부친이 경영하는 회사는 매출 수백억원대의 중소기업이지만 해당 업계에서는 탄탄한 기술력으로 인정받은 곳이다. 처음에 의욕적으로 경영에 나섰던 최 씨는 최근 고민에 빠졌다. 회사를 키우고 싶어도 가업승계 공제제도가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최 씨는 “가업승계 공제제도의 가장 큰 문제는 상속이 발생할 시점까지 회사를 성장시킬 수 없다는 점이다”면서 “매출이나 실적이 최대일 때 회사를 물려받을 경우 (가업승계 공제제도의) 조건을 맞출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결국 2세 경영인 입장에서는 이 요건을 맞추려면 보수적·안정적 경영을 할 수밖에 없다. 좋은 말로는 내실을 다지는 것이지만 실제로는 회사를 키우는데 손발이 묶인 셈이다”고 토로했다.
2019년 기준 국내 기업의 99.9%가 중소기업이고 전체 기업 근로자의 82.7%가 중소기업에서 일을 한다. 이러한 중소기업이 상속세로 인해 물려받을 사람이 없어 폐업할 경우 근로자들 또한 길거리 신세를 면하기 어렵게 된다. 가업상속공제 대상인 중견·중소기업의 지속가능성과 경영안정을 확보하면 자연스레 양질의 일자리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게 돼 출산율 상승으로 이어진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일본과 독일 등 해외에선 이미 가업승계 장려로 효과를 봤다. 일본의 경우 중소기업의 가업 승계를 장려하기 위해 지난 2018년 ‘특례사업승계제도’를 도입했다. 이는 비상장 중소기업의 소유주가 친족인 후계자에게 자신의 주식을 상속·증여할 경우 상속세의 100%를 2027년까지 10년간 납부유예해 주는 제도다. 2019년에는 개인사업자까지 특례를 확대했다. 이후 제도 도입 2년 만에 신청 건수가 10배 이상 급증했다.
가업승계 전통이 강한 독일에는 세계 시장 점유율 1위 기업 이른바 ‘히든 챔피언’이 500여개나 있다. 산업 경쟁력 강화와 고용 유지라는 사회적인 측면에서 가업승계를 접근하고 있기 때문에 숱한 강소기업들이 생겨난 것이다.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도 2014년 “기업상속공제는 단순한 부의 이전이 아니라 기업 존속과 일자리 유지라는 사회적 이익의 실현을 목적으로 한다”라고 판결한 바 있다.
전문가들은 출산율 제고를 위해 신혼부부에게 좀 더 안정적인 주거 및 일자리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고 말한다. 오정근 자유시민연구원장은 “한국 상속세 최고세율은 50%지만 중소기업이 아닌 기업은 최대주주 주식 할증평가까지 더해져 60%로 높아진다”면서 “이 경우 가업승계를 하지 않고 회사를 팔아버린다. 가업을 승계하면 자연스럽게 일자리도 확보가 되고 이러한 문제가 해결되면 출산율이 올라갈 것이다”고 말했다.
최은영 충북대 아동복지학과 교수는 “저출산 정책에 접근할 때 현재 부모 세대가 아닌 미래 부모 세대의 시각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면서 “미래 부모 세대는 기존 세대와 달리 임신, 출산을 포기하고 유급 일자리를 선택할 가능성이 높은 세대여서 막연한 서술이나 규범적 기대보다 안정적인 일자리, 양육에 소요되는 비용과 시간을 제공하는 환경이 필수적이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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