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10일 윤석열정부가 새롭게 출범하는 가운데, 그의 강대국 중심의 외교정치와 다자외교 기조에 국내외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새 정부 출범 전 미국과 일본에 각각 한·미 관계 및 한·일 관계의 현안을 논의하고, 경제협력과 대북정책 등을 논의하기 위해 ‘한·미정책협의대표단’과 ‘한·일정책협의대표단’을 파견했다. 이들은 미국과 일본이 전통적 우방국임을 재확인하며 ‘정상회담 일정 조율’ 및 ‘양국 간 현안 확인 및 협력 도모’ 방향을 모색했다.
최근 국제사회는 무역전쟁 등이 심화하며 미·중 패권경쟁의 심화를 중심으로 한 정치·군사·문화·기술을 중심으로 반중(反中)글로벌 연합전선과 함께 자유주의·민주주의 vs 공산진영·사회주의 대립이 표면화하고 있다.
올해 현실화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북한의 모라토리엄 파기에 이은 ICBM 시험발사 등은 앞서 문재인정부 5년 동안 제기돼 왔던 ‘북·중·러 vs. 한·미·일’ 간 전통적 자유주의진영과 공산주의진영 간의 대결이 동북아시아를 재편한다는 이른바 ‘신냉전’론이 수면으로 떠올랐다.
이 같은 상황에 북한 ‘선제타격론’과 ‘한·미동맹강화’, ‘대일본관계 회복’ 등을 외교기조로 내건 보수정당의 윤석열정부의 탄생은 민주정부의 문재인정부와는 그 결이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조 바이든 미국 정부와 기시다 후미오 일본 내각이 각각 대중 반도체글로벌 동맹인 ‘칩4(Chip 4) 동맹 결성’과 ‘미국 중심의 인도-태평양 지역 핵심동맹국’ 진영인 4개국 안보회담 ‘쿼드(Quad·Quadrilateral Security Dialogue)를 추진중인 만큼 윤석열정부의 ‘한·미·일강화기조’에 쏠리는 시선은 남다를 수밖에 없다. ‘한반도평화프로세스’를 추진하며 북한과의 ‘종전선언’과 대화 및 협력을 중시한 문재인정부와 매우 다른 결의 강대국 중심의 외교정치를 할 것이라는 예상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과거사 문제’아닌 ‘한일관계 복원’ 강조한 尹
문재인정부 5년간 과거사배상문제 및 일본불매운동 등으로 ‘해방 이래 사상 최악’이라는 평가를 받은 한·일관계 개선의 물꼬를 트기 위해 윤 당선인이 직접 나섰다. 그가 일본에 파견한 ‘한·일정책협의대표단’이 지난달 28일 4박5일의 일정을 마치고 귀국한 것이다.
이들은 기시다 후미오 총리와 아베 신조 전 총리 등 일본 내각 핵심인사를 두루 만나며 한·일 과거사 문제 해결 및 한·일 협력분야 최대 현안인 북중관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한 급변하는 글로벌 안보환경과 문제 해결 방안 등에 대한 현안을 논의했다.
윤 당선인도 한일관계 문제 해결에 강한 의지를 내비쳤다. 그는 3월28일 고이치 주한 일본대사를 만나 “한일관계는 미래지향적으로 반드시 개선되고 과거처럼 좋은 관계가 시급히 복원돼야 한다고 생각하고 양쪽 다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미·일 공조를 거듭 강조한 윤 당선자는 “한일 양국은 안보와 경제번영 등 여러 협력 과제를 공유한 동반자로, 최근 한일관계의 경색국면을 극복하기 위해선 올바른 역사인식을 바탕으로 미래 지향적인 협력관계를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윤 당선인의 모습은 취임 초에 아베 당시 총리 내각에 각을 세우며 과거사 문제 해결을 강조한 문 대통령과 상반된다는 평가를 받았다.
4박5일 방일일정을 마친 후 4월28일 귀국한 한일정책협의대표단장인 정진석 국회부의장은 취재진에게 “일본은 한·일 간 갈등 현안으로 자리 잡은 현금화(일본 기업의 한국 내 자산 강제매각) 문제, 위안부 문제, 수출규제 문제에 대해 기존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며 “한·일 간 미래지향적인 인내와 지혜를 모아 바람직한 결론에 도달하자는 부분에 이의를 달지 않았다”고 보고했다. 대일본관계의 회복을 다짐한 정 부의장은 “이번 방일 활동을 통해 도출된 여러 문제에 대해 앞으로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는 즉시 후속 조치를 위한 공식 외교채널 간 대화, 조치 마련을 위한 우리의 노력이 뒤따를 것”이라고 다짐했다.
이들은 4월26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를 접견한 후 윤 당선인의 친서를 전했다. 대표단은 “기시다 총리 면담 후 새로운 출발선에 선 두 나라가 미래지향적 관계 발전을 위해서, 서로 공동의 이익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고 밝혔다.
일본 외무성도 “기시다 총리가 한국 대표단에 원칙에 근거한 국제 질서가 위협받는 현 상황에서 지금이 한·일 관계를 증진하고 주요 사안들을 해결할 적기라고 강조했다”고 화답하는 성명을 냈다. 다만 ‘과거사문제’에 대해선 원칙적 모습을 보였다. 아베 전 총리는 4월27일 대표단면담에서 2018년 한국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을 언급하며 “일본 기업의 자산을 압류해 매각하는 현금화는 피해야 한다”라며 “2015 한·일 위안부합의가 파기된 것은 깊은 유감”이라며 기존의 입장을 거듭 확인했다.
주목할만한 것은 일본신문들의 논조다. 일본언론은 문재인정부 5년 내내 ‘과거사 배상 문제’, ‘종전선언과 평화체제’, ‘친중·친북 스탠스’ 등에 이른바 일본 내 ‘혐한기류’와 ‘코리안패싱론’ 담론을 주도적으로 이끌어왔다. 문재인정부에 적대적이던 일본여론은 보수정권인 윤석열 정부에 대해 변화한 논조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도쿄신문은 4월28일 해설기사에서 기시다 후미오 총리와 ‘한·일정책협의 대표단’간 면담 내용을 정하며 이들의 활약이 한·일관계 개선의 물꼬를 텄다고 평가했다. 신문은 총리관저의 한 간부를 인용해 “(기시다 총리가 대표단의 면담에 응한 것은) 관계를 개선하려는 나름의 생각을 가지고 온 상대(한국)를 헤아린 것”이라며 “동아시아에서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한·일 협력 강화는 중대한 과제”라고 하며 윤석열 새정부에 대한 기대를 나타냈다.
일본언론의 변화한 논조에 대해 이영채 일본 게이센여학원대 교수는 최근 언론인터뷰에서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높은 적개심을 가지고 있으며, 문재인 대통령이 한국전쟁 종전선언을 내세웠는데, 일본 전후 보수들은 한국의 분단체제를 전략적으로 이용해 온 측면에 있기 때문에 문재인 정부에 각을 세우는 게 필요했다”고 분석했다. 이 교수는 “한국에 윤석열 정권이 등장한 데 따른 군사동맹에 대한 기대와 우크라이나 사태를 헌법 개정의 동력으로 생각하는 일본 정부로서는 지금이 최적의 기회”라고 설명했다.
‘한·미정상회담’으로 시작한 새정부 ‘동맹강화’ 본격화
윤 당선인이 대선 당시부터 강조해왔던 ‘한·미동맹 강화’도 본격 궤도에 올랐다. 한·미 관계 및 대북 정책을 논의하기 위해 파견한 ‘한·미정책협의대표단’은 7박8일간의 방미 일정을 마치고 지난달 11일 귀국했다.
단장인 박진 국민의힘 의원은 “한·미 양쪽은 향후 북한의 추가 도발에 대비하기 위해서 억지력을 강화하고 물샐틈없는 공조를 다져나가기로 했다”며 “특히 미국 쪽은 우리에 대한 확고한 방위 공약, 그리고 확장 억제 제공의 의지를 재확인했다”고 밝혔다. 박 의원은 “이번 방미 결과를 당선자께 충실히 보고하고 새 정부가 임기 첫날부터 국익과 국민의 안전을 중심에 두면서 한·미 포괄적 전략동맹을 강화해나갈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라며 한·미동맹 강화를 재차 강조했다.
대표단은 △한·미 연합훈련 정상화 △한·미 확장억제전략협의체(EDSCG) 재가동 △연내 외교·국방 2+2 장관회의 개최 등에 대한 의견을 교환했다. 정책협의단은 ‘올바른 역사인식’을 바탕으로 한 한·일 관계를 구축해나가겠다는 윤 당선자의 의지도 전달했다고 한다. ‘한·미·일’ 공조 및 포괄전 전략동맹 강화를 재차 확인한 것이다.
지난해 출범한 바이든 행정부는 취임 당시부터 전통적 동맹국들과 동맹강화를 선언했다. 실제 취임 후 약 두 달 만에 미 국무·국방장관이 첫 순방지로 한국과 일본을 택했다. 취임 이후 두 달여가 지난해 5월21일, 문재인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첫 회담을 하고 공동회견에 나섰다.
문 대통령은 스가 요시히데 당시 일본 총리에 이어 바이든 행정부 출범 후 백악관을 찾은 두 번째 정상이었다. 당시 한·미 정상회담에서는 공동성명에 “한·미관계의 중요성은 한반도를 훨씬 넘어선다”라는 표현이 들어가며 포괄적 동맹으로의 변화를 예고했다.
윤 당선인은 취임 후 불과 1주일여만인 오는 21일 방한하는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첫 정상회담을 할 예정이다. 한국 대통령 취임 후 첫 방미보다 미국 대통령의 방한이 먼저 성사된 것은 1993년 7월 빌 클린턴 당시 미국 대통령이 한국을 찾아 김영삼 대통령과 만난 이후 29년 만의 일이다.
배현진 당선인은 “한·미 동맹 발전 및 대북 정책 공조와 함께 경제안보, 주요 지역적·국제적 현안 등 폭넓은 사안에 관해 깊이 있는 협의를 할 예정”이라며 “아울러 이를 통해 양국 간 포괄적 전략동맹이 더욱 발전할 수 있는 역사적 전기가 마련될 것”이라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바이든 대통령은 한국을 먼저 방문한 뒤 미국, 일본, 호주, 인도의 대중국 견제 협의체인 쿼드 정상회의 참석차 일본으로 건너갈 예정이다. 첫 동아시아 순방에서 일본 방문으로 일정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바이든 대통령은 첫 아시아 순방 일정을 한국에서 윤 당선인과의 회담으로 시작한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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