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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희 장편소설]
초대받은 여자 <26회> 그날의 기억1
콜롬비아대학 법대 제이슨 리를 소개합니다
이경희 필진페이지 + 입력 2022-08-02 09:20:50
수빈은 조용히 눈을 뜨고 옆을 보았다. 중환자실은 간호사들이 일일이 환자를 돌보고 있어 눈에 띄지 않게 뭔가를 할 수는 없었다.
 
수빈은 조심히 해원의 침대로 시선을 옮겼다. 바로 옆자리긴 하지만 고개를 많이 움직이지 않고 그쪽을 보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해원은 잠자듯이 누워있었다. 머리엔 피에 흠뻑 젖은 붕대가 감겨 있었다.
 
수빈은 숨을 훅 내쉬었다. 저 여자가 해원이 아니라면 누굴까,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었다. 왜 해원 행세를 하는 건지도 몰랐다. 그런데 혹시 해원이 맞다면?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제이슨 리를 만나봐야 하는 걸까? 하지만 수빈은 그가 지금 미국에 있는지 아니면 한국에 있는지 알지 못했다. 수빈은 다시 눈을 감았다.
 
15년 전, 대학 2학년 때 제이슨을 처음 만났다. 아마도 농촌봉사를 가지 않았다면 그와 수빈이 만날 일은 평생 없었을지도 모른다. 농활 가는 버스 안에서 여학생들이 제이슨 제이슨 할 때도 수빈은 그가 그렇게 대단한 인물인 줄은 몰랐다.
 
농활이 막바지에 치닫던 어느 날, 농민회의실 청소를 하고 나와 해원과 막대 걸레를 빨고 있을 때였다. 불량해 보이는 동네 청년들 몇 명이 오더니 낄낄거리며 해원과 수빈 옆을 맴돌았다. 깡패 같았다.
 
 
얼굴 뽀얀 분, 걸레는 이렇게 빨면 안 돼요. 한 청년이 다가와 막대 걸레를 잡고 있는 수빈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포갰다. 깡패들이 와르르 웃고 수빈은 숨도 제대로 못 쉬고 벌벌 떠는데.
 
어이. 거기! 여학생들 놀리지 마.”
 
수돗가 건너편에서 누군가 소리치는 게 들렸다. 그쪽을 휙 보더니 무리 중 한 명이 야, 가자, 가자! 소리치고는 우르르 다른 곳으로 몰려 가버렸다.
 
벌벌 떨고 있던 수빈과 해원은 한참 후에야 소리가 난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건너편에 농활을 같이 온 남학생들 몇 명이 서 있었다. 그중 키가 큰, 귀족같이 생긴 남자가 살짝 손을 흔들며 웃어주었다. 수빈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살짝 숙였다. 그 사람이 깡패들을 쫓아준 것 같았다.
 
그 사람이 제이슨 리라는 걸 안 건 그날 밤 마을회관 식당에서였다. 농활 학생들이 모두 모여 저녁을 먹던 자리였다.
 
농활 날짜도 며칠 안 남았습니다. 오늘은 자기 소개를 하겠습니다.”
 
사회 보던 사람의 말대로 밥을 먹던 학생들이 차례로 한 사람씩 일어나 학교와 학과 등등 자기 소개를 했다. 누군가 제이슨 리를 호명하자 모두 키 큰 귀족 같은 남학생을 돌아보았다. 그는 싫다며 고개를 흔들었고 사회 보던 학생이 대신 그를 소개했다.
 
미국 콜롬비아대학 법대를 다니는 제이슨 리를 소개합니다. 집안 좋고 인물 좋은 에이플러스 친굽니다. 특별히 한국 농활을 체험해보려고 우리와 함께 자리했습니다.”
 
수빈이 눈에 빛을 반짝 내며 제이슨 쪽으로 쳐다보았다. 바로 제이슨 쪽에서 이쪽으로 시선이 건너왔다.
 
[: 이경희 / 그림: 도은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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