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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희 장편소설]
초대받은 여자 <28회> 임신. 수빈에게 희망이
수빈아 우리 자수하자
스카이데일리 기자페이지 + 입력 2022-08-04 09:10:21
15년 전 그날, 수빈이 눈을 뜬 곳은 1인 병실이었다. 한 번도 와보지 않았던 1인실이라 수빈은 눈을 휘둥그레 뜨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날 밤의 일은 장난으로 시작했던 일이었다. 하지만 일이 너무 커졌다. 해원을 덮쳤던 그놈이 죽은 것이다. 이제 어떡하지? 뭐가 뭔지 한참 머리가 복잡한 순간, 문이 열렸다. 제이슨이었다. 수빈은 다시 눈을 감았다.
 
깡패 한 놈이 다른 깡패 한 놈을 때려죽인 사건이에요, 엄마. 나 다음 주 미국 들어가야 해. 경찰에 불려 다니는 것도 귀찮고 시간도 없으니까 알아서 정리해주세요.”
 
전화를 끊은 제이슨이 수빈에게 다가왔다.
 
아직도 자네. 얼굴 하얀 친구.”
 
제이슨이 손을 뻗어 수빈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준비했던 예쁜 잠옷이 아니라 병원 옷을 입고 있었지만 수빈은 알았다. 자신이 원했던 일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수빈이 눈을 뜨자 긴 머리칼을 쓰다듬어 주던 제이슨은 셔츠를 벗고 수빈 옆에 나란히 누웠다.
 
수빈은 그 후 세 번 정도 제이슨을 더 만났다. 그리고 깡패 살인사건은 그렇게 묻혔다.
 
내일 출국해. 6개월은 있어야 다시 한국 올 거야. 그땐 연락 못할 수도 있어. 이해하지?”
 
수빈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당신은 반드시 내게 연락할 거야, 생각했다.
 
전화를 걸어오진 않았지만 수빈 예상대로 가끔 문자를 보내왔다. 집 주소를 보내줬더니 자신의 사진과 초콜릿 같은 과자류를 국제소포로 보내주었다. 그즈음이었다 자신의 몸이 전과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그리고 몇 개월 지나지 않아 제이슨이 귀국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병원에서 임신 진단을 받고 어떻게 알릴까 망설이던 터였다.
 
그즈음 해원을 다시 만났다. 그 사건 후 말도 없이 바로 캐나다로 떠났기 때문에 얼마간 휴학할 거라 짐작했었다. 그런데 갑자기 강의실에서 수업을 듣고 나오다 마주친 것이다.
 
수빈아 우리 자수하자. 해원은 경찰에 자수를 하러 가자고 했다. 사람이 죽었는데 안 그런 척 살아갈 수 없다고, 지은 죄에 대한 대가를 받겠다고 했다. 수빈은 해원의 생각과 달랐다. 하지만 생각해 보자고 했다. 이제야 제이슨을 찾아갈 빌미가 생긴 것이다. 그리고 제이슨을 만났다.
 
제이슨은 찻잔을 들지도 않고 할 말이 뭐냐는 식으로 물끄러미 수빈을 쳐다보았다.
 
그 친구가 자꾸 자수하자고 해요.”
 
제이슨이 고개를 갸웃했다.
 
하세요, 자수. 죄 지었으면 벌 받아야지.”
 
수빈은 잘못 들었나 싶어 네? 다시 물었다. 같은 말이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저는. 지금. 그때 이후로 몸이 좀 안 좋아요. 임신 같아요.”
 
임신 같아요, 라는 말은 짧고 낮게 말해주었다. 상대에 대한 예의였다. 제이슨이 턱을 쑥 내밀려 훅 웃었다.
 
임신? 괜찮겠어요? 아이가 나중에 살인자 자식이라는 걸 아이가 알아도 괜찮겠어요?”
 
[: 이경희 / 그림: 도은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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