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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수의 전지적 시점]
제2의 노무현은 안 된다
스카이데일리 기자페이지 + 입력 2022-08-11 09:10:45
▲ 박혜수 시인·번역작가
“13대 총선 이래 선거만 하면 여소야대 국회가 됩니다이유야 어떻든 문제는 여소야대 구도로는 국정이 원활히 돌아가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대통령에게는 국회해산권이 없습니다. 정부가 일방적으로 몰리니 국정이 제대로 되기 어렵습니다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에게 법도 고치고 정부를 통솔하여 경제도 살리고 부동산도 잡고 교육과 노사문제도 해결하라고 합니다. 이 모두가 정상적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이 말은 누가 한 걸까? 내용으로 보아 윤석열 대통령이 한 말인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200575일 청와대 홈페이지에 게시된 노무현 대통령의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글에서 발췌한 것이다. 그때와 여·야만 바뀌었을 뿐 국회의 다수당은 수의 힘으로 정부를 힘들게 해야 제 할 일을 하는 걸로 아는 게 아마도 우리 정치권의 체질인 듯싶다.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16대 대선이 있던 2002년 늦가을이었다, 지인 하나가 뜻밖의 부탁을 해 왔다. 한 시민단체에서 내는 잡지의 편집위원을 맡아 달라는 것이었다. 무보수였고 매달 한 번 회의 참석과 칼럼을 쓰는 게 할 일이었다. 집안 일로 갑자기 해외로 나가게 된 전임자의 사정 때문에 하는 수 없이 대신하기로 한 편집위원 자리는 막상 가 보니 낯설고 불편했다.
 
그 단체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인권을 지켜 주는 일을 하는 곳이었다. 첫 기획회의가 있던 날 편집위원들의 면면을 보니 성공회대 교수, 한신대 교수, 신문사 기자, 아름다운 가게 설립자 등등 하나같이 진보 성향의 노사모쪽 사람들이었다. 어떻게 합류하게 되었는지 자기소개를 하라고 해서 저는 외국인 노동자보다 더 힘없고 불쌍한 존재들의 생존권을 지키는 일에 도움이 될까 해서 왔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모두 뜨악한 표정으로 대꾸를 하지 않는 가운데 한 사람이 물었다. “그게 누군데요?”
 
기획회의가 끝날무렵 편집장이라는 사람이 나타났다. 눈이 크고 왜소한, 속사포처럼 빠른 속도로 말을 쏟아내는 남자였다. 유시민 씨였다. 그는 노무현 후보가 대선을 포기하겠다고 해서 설득하느라고 늦었다고 했다. “우리 노 후보가 자꾸만 대선을 포기하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거예요.” “대통령이 돼도 아무 것도 바꿀 수 없을 것 같다고 해서 국무회의를 원탁에서 하십시오, 그거 하나만 바꾸셔도 됩니다라고 설득했어요.” 등등의 말을 쏟아내는 그를 보며 머리가 좋구나, 그런데 좀 경박하네라고 느꼈던 기억도 있다.
 
얼마 후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가 당선되어 이듬해인 2003년 제16대 참여정부가 시작되었다. 그 해에 해외에선 이라크 전쟁이 일어났다. 미국으로부터 파병 요청이 있자 대다수 정치인과 국민이 명분 없는 전쟁에 우리 군을 보내는 걸 반대했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은 파병을 결정했다. 국회에서도 파병 안이 가결되어 20042월 공병부대와 의료지원단을 주축으로 하는 자이툰 부대가 이라크 북부 쿠르드족 거주 지역에 파병되었다.
 
▲ 2004년 12월8일 이라크 북부 아르빌에 주둔한 자이툰부대를 전격 방문한 노무현(왼쪽) 대통령.
 
이라크 파병이 결정되고 2003년이 저물어 가던 12월 어느 날, 잡지 편집팀에서 신년 특집호 기획회의 겸 송년회를 열었다. 그 자리에서 누군가 이라크 파병 문제를 거론하며 신년호 주제를 노무현의 배신 때리기로 하자는 말을 꺼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너도나도 노 대통령을 성토하기 시작했다. 노사모 사람들이었다.
 
비슷한 상황이 2022년에도 벌어지고 있다. 일각에서 주장하듯 여론조사가 조작된 게 아니라면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자들 중 절반가량이 정부의 국정운영에 대해 부정평가를 내리고 있다. 부정평가의 이유 중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한 것은 인사 문제와 무능함이다. 인사는 절반쯤 실패내지 실수인 게 맞다. 하지만 무능이라는 이유에 대해서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먹고사는 문제다. 그리고 윤 정부는 그 일에 집중하고 있다. 주의주장에 함몰되어 스스로 무능의 길로 나아갔던 지난 정부와는 딴판이다. 취임하자마자 탈원전 정책을 되돌려 원전 강국으로 가는 길을 만들어 가고 있고 반도체산업의 성장·발전을 위한 정책을 펼치고 있다. 반도체 산업은 경제면에서뿐 아니라 국가 경쟁력과 안보차원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 점을 간파해서 주요 정책으로 끌고 나가는 정부를 무능하다 하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지금 우리 앞에는 험하고 캄캄한 밤길이 놓여 있다. 그리고 그 길을 가기 위해 가만 있는 사람을 데려다가 길잡이로 세웠다. 그가 우직하고 반듯하며 따뜻한 심성을 지닌 인물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지금 걷고 있는 길이 험하고 캄캄한 것은 길잡이의 탓이 아니다. 길잡이를 탓한다면 그건 야당에서 만든 프레임에 스스로의 판단을 끼워넣는 것과 다름없는 일이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길잡이와 힘을 합해 캄캄하고 험한 길을 헤쳐 가는 것이다. 길잡이에게 힘을 실어 주고 기다려 주어야 한다. 우리의 길잡이가 대통령 못 해 먹겠다고 했던 노무현 대통령과 같은 심정이 된다면 그건 우리 모두에게 불행한 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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