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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호의 ‘맛있는 동네 산책’
“부산 향토 음식 동래파전과 돼지국밥 드시러 오이소~”
찹쌀·맵쌀 반죽에 해산물 듬뿍 ‘동래할매파전’
부평깡통시장 명물 돼지국밥 ‘양산집’·‘남해집’
스카이데일리 기자페이지 + 입력 2022-08-11 11:30:21
▲ 유성호 맛 칼럼니스트
지난 호 삼다도(제주)에 이어 이번 호는 동래(부산의 옛 이름)의 맛을 찾아 나섰다. 제주에서 3박을 하고 서울로 향하려 했는데 부산에서 한 선배가 ‘벙개’를 쳤다. 선배는 대구에서 내려온단다. 객지에서 ‘벙개’라 너무도 반가워 3만원 대 서울행 비행기 표를 취소하고 8만원 대 부산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부산서 서울행 기차표까지 따지면 13만원으로 무려 10만원을 더 들인 셈이다. 그래도 반가움이 그보다 앞서니 마음이 느껍다.
 
부산, 반도의 끝자락서 끊임없이 왜구의 노략질과 침략을 가장 먼저 받아낸 곳이다. 특히 동래구 지역은 과거 동래부로 부산의 뿌리 같은 곳이다. 동래는 동래읍성에서 유래했다. 동래읍성은 1387년 김해 부사로 있던 박위가 왜구의 침략을 막기 위해 축성했다. 1447년 동래 현령 김시로가 개축했고 임진왜란 때 파괴됐다. 1979년부터 지금까지 북문과 동장대, 서장대, 북장대, 성벽 일부 등을 복원했다.
 
부산 옛 지명 동래는 동래파전이 유명
 
▲ 반죽 주재료로 찹쌀가루와 멥쌀가루를 쓰고 해물이 풍성하게 들어간다는 점에서 일반파전과 차별성을 지닌 부산 동래파전의 대명사 ‘동래할매파전’. [사진=필자제공]
 
동래는 파전이 유명하다. 기름을 두른 번철에 조선 쪽파를 올리고 갖가지 해물 재료를 밀가루와 반죽해서 얹은 다음 찹쌀가루, 멥쌀가루, 고춧가루 등을 섞은 반죽 물을 두르고 달걀을 터트려서 지진다.
 
반죽 주재료로 찹쌀가루와 멥쌀가루를 쓰고 해물이 풍성하게 들어간다는 점에서 일반 파전과 차별성을 지닌 부산 동래 지역 향토 음식이다. 채소류로는 쪽파와 미나리, 육류로는 쇠고기와 달걀, 해물로는 대합, 홍합, 조갯살, 굴, 새우 등을 사용해 해물파전이라고도 불린다.
 
파전을 굽다가 마지막에 달걀을 풀어 얹어 충분히 익을 때 파와 해물의 향기를 잡기 위해 냄비 뚜껑을 덮는 것이 동래파전 특색 있는 조리법이다. 또한 파전을 먹을 때는 간장이 아닌 초장에 찍어 먹는 것도 독특하다.
 
동래파전은 1930년대 일제강점기 말에 상품화되면서 명성을 확보했다. ‘동래할매파전’은 동래시장 동문 입구에서 상호도 없이 장사를 시작해 며느리들에게 대물림하면서 명맥을 이어 오고 있다. 1990년대 지방자치제 시행으로 시·군별 전통·향토 문화 발굴 과정에서 동래파전은 다시 한번 전성기를 맞는다. 1999년 ‘부산시 향토 음식 1호’로 동래파전이 지정됐고 2004년에는 ‘동래파전연구회’가 발족하면서 동래파전 전승이 가시화됐다.
 
근현대 부산 중심지 중구서 식탐
 
이번 여정에서는 동래를 가지 않았다. 대신 근현대 부산의 중심지 중구 지역에 머물면서 도보로 식탐(食探)을 했다. 1876년 2월 27일 강화도조약으로 개항과 더불어 전국 각처에서 모여든 상인들이 현재 중구 영주동 터널 위에 정착했다.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새로운 마을이 생겨났고 1889년 11월 12일 대청로에서 구 미화당백화점 간 도로가 뚫리면서 송현산(현 용두산)을 중심으로 도시 형태를 갖춘 시가지가 형성됐다.
 
1908년 4월 1일 경부선 기점이 초량역에서 부산역으로 이동했다. 1910년 10월 30일 부산역사(1953년 화재로 소실)를 준공해 제1 부두까지 철도를 부설하면서 명실상부한 무역항으로 발돋움했다.
 
습식과 건식 돼지 수육 맛 차이는 없어
 
▲ 부평깡통시장 명소로 자리 잡은 돼지국밥 전문점 ‘양산집’의 돼지수육. [사진=필자제공]
 
부산 중구는 역사가 깊은 지역인 만큼 국제시장, 부평깡통시장 등 전통시장이 많다. 부평깡통시장은 1890년대 사거리 시장이라는 이름으로 중구 부평동에 자리 잡았다. 당시만 해도 사거리 시장이라는 이름으로 전국에 꽤 알려진 시장이었다. 1910년 20인 이상 영업자 형태의 전국 최초 공설 1호 시장으로 지정됐다. 2013년 10월 29일에는 전국 최초로 상설 야시장이 개장돼 관광명소로 거듭났다.
 
시장 안에는 ‘양산집’과 ‘남해집’이란 두 돼지국밥 식당이 명소로 이름나 있다. 양산집은 1954년 문을 연 노포다. 현재 3대째 대물림하고 있는 곳이다. 할머니, 어머니에 이어 지금 사장인 아들 노치권 씨가 25살 때 가게를 물려받아 맛을 계승했다.
 
노 사장은 미국 교환학생을 포기하고 2012년 암 투병 중이던 어머니의 뒤를 이었다. 국밥 맛을 찾기 위해 부산, 경남지역 맛있다는 국밥집을 두루 다녔다고 한다. 많게는 하루에 국밥을 여덟 그릇까지 먹었다고 하니 그 정성이 놀랍다. 그렇게 수년간 시행착오 끝에 원래 맛을 복원하고 맨투맨 서비스로 젊은 고객층을 공략하는 데 성공했다. 살코기와 비계 국밥이 따로 있다.
 
부산에서는 ‘청년 사장집’으로 유명하다. 선대의 손맛을 살려 정통 시장통 국밥의 묵직한 맛과 청년의 감각을 입힌 깔끔한 인테리어가 공존하는 곳이다. 바로 옆에 붙어 있는 ‘남해집’도 똑같은 돼지국밥집이다. 양산집은 대기줄이 긴 반면 남해집은 다소 편하게 식사를 할 수 있는 곳이다.
 
두 곳을 이틀에 걸쳐 들러서 돼지 수육을 맛봤다. 양산집은 국물이 자박하게 해서 파라핀 화력을 지원한다. 그래서 한동안 따뜻한 수육 맛을 즐길 수 있다. 남해집은 건식 수육이 나오는 데 고기 질이 좋다. 습식과 건식 수육 맛 차이는 거의 없다.
 
고기 부위별로 보면 국밥에는 앞다리살과 목살 살코기, 수육에는 지방이 많은 삼겹살이나 항정살을 주로 쓴다. 대부분 국밥에도 항정살과 함께 토시살, 다리살을 쓴다. 질 좋은 돼지 수육을 비교적 저렴하게 먹을 수 있는 곳이어서 남녀노소 손님 층이 두텁다.
 
한국전쟁이 낳은 부산 향토 음식
 
▲ 양산집과 이웃한 ‘남해집’의 돼지수육. [사진=필자제공]
 
부산 돼지국밥 탄생 토양은 한국전쟁 이후 피란 시절이다. 돼지국밥은 한국전쟁 이전에도 있었다. 밀양에는 1940년대부터 영업 중인 돼지국밥 식당들이 있다. 부산 돼지국밥을 말하려면 전쟁과 이북 피란민들의 영향을 빼놓을 수 없다.
 
‘할매국밥’을 창업한 평양 출신 고 최순복 씨는 1956년 범일동 옛 삼화고무 공장 앞에서 장사를 시작했다. 서혜자 씨는 1969년 국제시장에서 순대국밥 하던 이북 할머니 어깨너머로 보고 배워 ‘신창국밥’을 열었다.
 
돼지국밥은 사람과 물자가 오가는 시장과 교통 요지를 거점으로 퍼져나갔다. 피란민이 생필품을 거래하던 부평깡통시장에는 양산집, 밀양집이 생겨났고 도매시장과 버스터미널이 있던 조방 앞은 마산식당, 합천식당 등 노포들이 1960년대 들어섰다. 서면시장 국밥 골목의 송정삼대국밥(1946년), 경주박가국밥(1954년)도 1960년대 시장 형성과 함께 자리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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