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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답하면 내가 뛴다”… ‘소비자운동’ 새 시대 연 게이머들
운영자 태도 등에 불만 폭발… 마차시위·간담회 요구 등 적극적 나서
변호사 섭외·환불 소송·정치적 이슈 차단 등 진화하는 소비자 운동
변한 게이머에 게임사도 변화… 소통 나선 게임 이용자 수 상승 효과
양준규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22-09-19 16:33:00
▲ 게임사의 운영에 불만을 가진 게이머들이 적극적으로 자신들의 의사를 표시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최근 게임사의 운영에 불만을 가진 게임 이용자(게이머)들이 적극적으로 자신들의 의사를 표현하고 나서는 일이 잇따르고 있다. 그동안 게임에 불만을 표시하는 행동에 대해 부정적 태도를 보여 온 게이머들이 고객의 권리를 외치는 적극적인 소비자로 변모해가고 있다. 이들이 적극적으로 자신의 권리를 찾기 시작하며 그동안 게임사가 갖고 있었던 문제점들도 수면 위로 하나둘 드러나고 있다. 이에 고객과의 소통과 이를 통한 문제점 개선이 게임사의 주요 덕목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게이머는 게임사의 고객… 게임 모르고 게이머 무시하는 운영자 안돼”
 
앞서 8월29일 오전 경기도 판교에 때아닌 마차가 등장해 이목을 끌었다. 일본 사이게임즈에서 개발하고 카카오게임즈가 한국 서비스를 맡은 육성 시뮬레이션 게임 ‘우마무스메: 프리티 더비(우마무스메)’ 이용자들이 카카오게임즈의 운영에 항의하기 위해 보낸 시위용 마차였다.
 
이번 ‘마차 시위’는 게이머들이 게임사에 불만을 표현할 때 사용하는 대표적인 방법인 ‘트럭 시위’를 우마무스메의 모티브인 경마에 맞춰 마차 시위로 변형한 것이다. ‘트럭 시위’는 지난해 넷마블이 한국 서비스를 담당하는 ‘페이트 그랜드 오더’ 이용자들이 게임사 운영에 불만을 제기하며 처음 시작한 이후로 게이머들 사이에서 유행처럼 번졌다.
 
이들 게이머는 마차 시위에 그치지 않고 대표자를 선정하고 운영진과 간담회를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게임 자체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거나 이용자들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대목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하는 등 게임 운영자들의 역량 부족이 도마위에 오르기도 했다.
 
이번 우마무스메 시위도 2주에서 3주 정도의 준비 기간이 필요한 콘텐츠를 1주일 전에 공지하며 논란을 키웠다. 이에 우마무스메 이용자들은 카카오게임즈를 대상으로 간담회를 요구하면서 한편으로는 환불 소송도 추진했다. 
 
게다가 의견 전달을 원활히 하기 위해 자체적으로 언론에 보도자료까지 배포했다는 전언이다. 또한 이번 사태에 관심을 가진 정치인들과도 연락을 취하는 등 원군을 확보하려 애쓴 측면도 있다. 
 
이후 카카오게임즈와 ‘게임 이용자 자율 협의체’는 17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40분까지 성남시 판교에 위치한 카카오게임즈 사옥에서 간담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카카오게임즈는 △대표이사 직속 TF 운영 △업무 평가 프로세스 개선 △고객과의 안정적인 소통 창구 운영 등의 개선안을 제시했다. 큰 충돌 없이 진행되던 간담회는 이벤트 서버 조기 점검 문제와 관련해 카카오 측이 불편함을 겪게 한 점은 인정했지만 ‘운영진에 의한 피해가 아닌 개인의 선택’이라고 발언하면서 어긋나기 시작했다.
             
▲ 카카오게임즈의 '우마무스메 : 프리티 더비' 운영에 불만을 가진 이용자들이 단체 행동에 나섰다.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캡쳐]
 
결국 간담회 종료 후 게임 이용자 자율협의체는 카카오게임즈를 상대로 환불 소송을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간담회 이전 환불 소송 참여 의사를 밝힌 이용자의 환불 금액 총합은 약 86억원 규모였고, 이 가운데 실제로 영수증을 보내온 금액은 약 45억원으로 잠정 집계됐다.
 
이번 시위의 대표자는 “예를 들어 기름과 발사믹 식초를 파는 봄파스라는 매장이 있는데 이곳의 판매 직원은 어떤 기름이 어떤 맛이 나고 어떤 음식에 어울리고, 식초와 기름에 섞였을 때 어울리는지에 대해 전부 알고 있다”며 “이처럼 게임을 개발하고 판매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그 게임에 대한 이해도가 있어야 한다”고 꼬집었다. 그는 이어 “운영자가 이 게임의 구조가 어떻게 되고 비즈니스 모델이 어떻게 되고 이 캐릭터는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고 등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는 모습을 보여야 이용자들이 신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게임업계, 소비자 ‘을’로 보나 의구심… ‘마차 시위’ 거치며 진화하는 게이머들
 
한편 직장인 커뮤니티 ‘블라인드’에서 다른 게임사 직원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이번 시위에 대해 ‘을질’이라고 표현한 것이 화제가 됐다. 여기에 시위자를 테러리스트에 비유하거나 사회 경험이 적은 사람들이라고 하는 등의 댓글이 인터넷 곳곳으로 퍼졌다.
 
게임사 관계자로 추정되는 사람이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이러한 발언을 한 것은 사실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에도 트럭 시위를 진행하는 사람을 ‘할일 없는 사람들’이라고 지칭하는 등 지속적으로 문제가 불거진 바 있다. 게다가 지난해 한 게임사 직원이 ‘결제 태도가 좋지 않다’고 지적하는 등 그동안의 발언이 다시 거론되며 게임 업계가 소비자를 무시한다는 비판 여론이 덩달아 커지고 있다.
 
비록 같은 게임업계 종사자로 추정되는 일부 네티즌이 소수 의견일 뿐이라고 해명에 나섰지만, 잊을만하면 나오는 비슷한 발언에 과도한 현금 결제를 유도하는 게임 업계의 운영에 대한 불만이 겹쳐지면서 게임 업계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소비자를 ‘을’로 보고 있다는 의구심이 확산되는 모양새다. 
 
우마무스메 이용자 대표는 “게임사 직원들조차 ‘이런 걸 왜 돈 주고 하냐’고 여기는 사람이 적지 않은 안타까운 현실”이라며 “게임을 즐기는 사람이 돈을 내는 고객이라는 것을 확실히 이해해 줬으면 한다”고 지적했다.
 
최근 게이머들의 행보는 불만을 거의 제기하지 않던 소비자들이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인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동안 이들 게이머가 불만을 제기하면서 가장 많이 쓰는 말로는 ‘꼬우면 접어’가 꼽힌다. 마음에 안 드는 게임이 있으면 하지 않고 다른 게임을 하면 게임 회사도 게이머들을 생각하게 될 것이라는 뜻을 함축한 표현이다.
 
하지만 게임사들이 계속해서 이용자들과 제대로 소통하지 않는 태도를 보이자 게이머들의 생각도 변하기 시작했다. 단순히 게임을 이용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의견을 제시해 게임을 바꾸고자 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는 셈이다.
 
게이머들이 본격적으로 소비자 운동에 나서면서 기업을 압박하는 방법 또한 진화하고 있다. 판교 마차 시위 당시 우마무스메 이용자들은 동물 학대 논란을 피하기 위해 전문 말 훈련사를 동행시키고 말의 피로도를 고려해 시위 시간을 조정했다. 또한 이용자 간의 의견 분열이나 분쟁 등을 맡기 위해 비슷한 사건에서 흔히 발생하는 성별 이슈, 정치적 이슈 등을 조기에 차단하는 모습도 보였다.
      
▲ 지난해 넷마블을 상대로 트럭 시위를 진행했던 '페이트 그랜드 오더' 이용자들이 올해는 '커피 트럭'을 보냈다.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캡쳐]
 
소통나선 게임사, 반등에 성공… “소통하면 모두에게 이득될 것”
 
한편 간담회 등 이용자들과의 소통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고 개선 사항을 반영한 게임들은 위기를 딛고 반등에 성공했다. 얼어붙었던 이용자들의 마음도 게임사의 노력에 조금씩 풀어지는 기류가 포착되고 있다. 운영진이 이용자들의 신뢰를 되찾으면서 매출도 향상되는 선순환 효과가 일어나고 있다.
 
메이플스토리의 경우 직업 간 밸런스 등 이용자 요구 사항을 적극적으로 반영하고 강원기 메이플스토리 디렉터가 ‘치킨 먹방’을 진행하는 등 소통에 힘썼다. 그 결과 여름 대규모 업데이트 이후 순 이용자가 전년 대비 70% 이상 상승했다. 마비노기 역시 불편 사항을 대거 개선하고 소통에 힘쓴 결과 7월 신규 이용자가 전년 동월 대비 2배 이상 증가했다.
 
트럭 시위의 시발점으로 알려진 ‘페이트 그랜드 오더’의 경우 꾸준한 서비스 품질 개선과 소통 등으로 시위 트럭 대신 커피 트럭을 받게 됐다. 매출 역시 7월 ‘알트리아 캐스터’ 업데이트 이후 구글플레이 매출 10위에 오르는 등 긍정적인 결과가 나왔다.
 
게임 업계 관계자는 “시위 등을 통해 고객들이 게임에 대해 직접적인 방향성을 제시해주기 때문에 게임사도 그런 점을 더 고려하고 검토하게 된다”면서 “평소에도 이용자 반응을 체크하기는 하지만 이용자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특정 사안에 대해 간담회를 통해 의견을 주고받으면서 합의점을 찾아가고 있다”고 밝혔다.
 
이번 ‘마차 시위’에 동참한 한 게이머는 “이용자들이 문제점을 직접 말하고 게임사도 의견을 들으면서 소통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된다면 불만이 생길 때마다 게임에 투자한 시간과 돈을 버리고 옮기는 것보다는 모두에게 이득이 되는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내다보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기 단순한 불만 표출이 소비자 운동으로 진화하는 과정이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위정현 한국게임학회장은 “다른 게임의 경우 돈을 많이 쓰는 이용자층과 비교적 적게 쓰는 이용자층의 의견이 나뉘면서 흐지부지되는 경우도 있다”면서 “우마무스메의 경우 대부분의 이용자가 분노해 의견을 모은 것도 폭발력을 가지게 된 이유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위 회장은 이어 “지난해 있었던 트럭 시위로 이용자들이 교훈을 얻으면서 게임사에 요구하는 방법도 갈수록 발전하고 있다”며 “게임에 대한 불만 표출이 하나의 소비자 운동으로 진화하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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