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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 라벨을 보다 보면 ‘올드바인(OLD VINE·오래된 포도나무)’ ‘V.V.’라는 표기를 종종 볼 수 있다. 오래된 포도나무에서 생산된 와인이라는 뜻이다. 오래된 포도나무에서 생산된 와인이 왠지 좋을 것 같은 심리가 작용하기 때문인지 몰라도 손이 자꾸 가게 된다.
나라마다 포도나무의 수령이 어느 정도 되어야 ‘올드 바인’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에 대한 정확한 규정은 없지만 와이너리들은 올드바인의 장점을 마케팅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
올드바인은 포도가 적게 열리기에 집중도가 매우 뛰어나다. 하지만 오래되었다고 무조건 와인의 좋은 품질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탈리아의 최고급 와인인 바롤로(Barolo) 생산자는 “35년~40년 수령의 포도나무야말로 깊은 뿌리·알맞은 수확량·이상적인 품종의 표현력에서 삼위일체를 이루는 이상적인 포도나무”라고 말한다.
100년 이상 오랜 수령의 포도나무가 꼭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오랜 수령의 포도나무의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미국 최고의 진판델 와인을 생산하는 한 와이너리는 1880년에 심어진 올드바인에 어린 포도나무를 접붙여 이 포도나무로 올드바인을 생산하고 있다.
프랑스 샴페인 생산자인 볼렝저(Bollinger)가 처음으로 ‘올드바인’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고 한다. 그러나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포도나무는 필록세라를 피한 유럽의 슬로베니아 마리보르에 위치한 ‘자메토브카(Žametovka)’로 400년 수령을 자랑한다. 이 포도나무는 17세기부터 지금까지 와인 생산을 위한 포도를 매년 40kg 내외로 생산하고 있다. 이탈리아 카첸주겐 성(Castel Katzenzugen)의 350년 된 베르소알른(Versoaln) 품종의 올드바인은 영바인과 블랜딩해 연간 500병 정도가 생산되고 있다.
올드바인이라는 용어도 나라마다 다양하게 표시되고 있다. 이탈리아에서는 ‘베끼오 비녜(Vecchio Vigne)’, 프랑스에선 ‘비에이유 비뉴(Vieilles Vignes)’, 스페인이나 남미에서는 ‘비냐스 비에하스(Viñas Viejas)’, 포르투갈에서는 ‘비냐스 벨라스(Vihnas Velhas)’, 독일에서는 ‘알테 레벤(Alte Reben)’이라고 부른다.
올드바인이 자라는 지역은 ‘필록세라(Phylloxera)’라는 해충을 피한 스페인·칠레·호주·아르헨티나 등의 와인 생산국에 주로 있다. 60~100년 된 수령의 포도나무를 ‘올드 바인’이라 부르지만 미국 오레곤이나 뉴질랜드에서는 그보다 더 어린 포도나무, 심지어 수령 25년 된 포도나무에 대해서도 올드바인이라고 표기한다.
유럽에서 올드바인을 보기 드문 것은 필록세라 때문이다. 필록세라는 포도나무 뿌리에 살고 있는 미세한 진딧물로 뿌리의 진액을 빨아먹고 사는데 필록세라에 감염된 포도나무는 뿌리에 혹이 생기고 수액의 공급이 중단돼 말라비틀어져 죽는다. 19세기 후반에 유럽의 포도나무의 절반 이상을 초토화시켜 와인산업을 황폐화시킨 주범이다.
필록세라 피해가 없는 호주 바로사 지역의 경우에는 체계적으로 올드바인을 보호하고 구분하고 있다. 바로사 올드바인 차터(Barossa Old Vine Charter)를 설립해 지역 와이너리들과 올드바인을 표시해 관리하고 있다.
35년 이상된 나무는 ‘바로사 올드바인(Barossa Old Vine)’, 수령 70년 이상은 ‘바로사 서바이버 바인(Barossa Survivor Vine)’, 수령 100년 이상은 ‘바로사 센테내리안 바인(Barossa Centenarian Vine)’, 125년 이상은 ‘바로사 앤세스터 바인(Barossa Ancestor Vine)’으로 구분해 표시한다.
이러한 올드바인의 애매모호한 기준 속에서도 많은 와인 생산자들이 올드바인을 고집하는 이유는 포도 재배학적으로 분명한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올드바인은 빈티지와 관계없이 일정한 퀄리티의 와인을 생산할 수 있다. 포도나무가 자랄수록 뿌리를 깊게 내리기 때문에 홍수가 나도 심각한 타격을 입지 않고 가뭄이 들어도 땅 아래 깊숙이 저장되어 있는 물을 끌어 올릴 수 있다.
포도나무는 수령 9년~20년 된 나무가 가장 생산성이 높다. 그래서 보통 40년이 넘으면 경제성이 떨어져 새롭게 포도나무를 다시 심는 것이 일반적이다. 우리가 올드바인을 선택하는 이유는 희귀성과 복합적인 와인의 풍미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와인 평론가들은 적은 수확량을 생산하는 올드바인이 보다 집중된 풍미와 부드러운 질감을 보인다고 평한다. 그들은 모든 조건이 같다면 올드바인을 선택하는 게 좋다고 말한다. 결국 올드바인 구매에 관한 결정은 소비자의 감성과 판단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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