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4월의 마스터스 골프에 흥분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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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년간 한곳서 열려…최적의 대회 위해 6개월간 휴장
‘마스터스 직관’ 과시욕 …굿즈 판매량 7000만 달러

박병헌 필진페이지 + 입력 2023-04-19 08:02:47

미국프로골프(PGA) 투어는 올해 47개 대회가 열린다. 4대 메이저 대회와 플레이오프 대회 3개가 포함된다. 1년이 52주인 점을 감안하면 거의 매주 투어가 개최되는 셈이다.

4대 메이저 대회와 시즌 최종전인 투어 챔피언십의 경우 아직 총상금이 확정되지 않았지만 상상을 초월하는 초고액이 책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아직까지 시즌 총상금을 딱히 한정할 수가 없다. 대회 중에 상금이 결정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PGA 투어의 4대 메이저 대회는 10일(한국 시간) 끝난 제87회 마스터스골프 토너먼트와 5월에 열릴 PGA 챔피언십·6월 US오픈·7월의 디 오픈을 일컫는다. 마스터스 골프는 4대 메이저 대회 가운데 역사가 가장 짧지만 그 관심도와 열기는 상상을 초월해 가히 폭발적이다.

매년 시즌 첫 메이저 대회로 열리는 마스터스는 전 세계 골프팬들의 이목을 집중시킬 뿐 아니라 골프계를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곤 한다. 그럴 만한 이유가 충분하다. 매년 개최 장소가 바뀌는 다른 메이저 대회와는 달리 마스터스는 원년인 1934년부터 늘 같은 장소에서 개최돼 왔다.

4월 둘째 주 마스터스가 열리는 곳은 바로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 인근의 오거스타 내셔널골프클럽이다. 오거스타 내셔널골프클럽이 바로 마스터스 주최자다.

한국에선 골프가 생소한 스포츠였던 1980년대 만해도 오거스타내셔널골프클럽을 내셔널이라는 단어가 하나의 고유명사였음에도 ‘국립 골프장’이라고 번역해 사용하는 우를 범하기도 했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무식의 소치였다.

이 코스는 1930년 한 시즌에 전미오픈골프선수권대회·US아마추어골프선수권대회·디 오픈 챔피언십·영국 아마추어골프선수권대회에서 모두 우승한 ‘골프의 성인(聖人)’ 보비 존스가 영국의 골프코스 디자이너인 매켄지와 함께 심혈을 기울여 만든 작품이다. 토양의 온도·습도·산소량 등을 조절하는 등 코스 관리가 철저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특히 마스터스를 앞두고는 6개월 전부터 코스는 아예 문을 닫는다. 최적의 대회 환경을 조성하겠다는 골프장 측의 각별한 배려다.

잔디를 아주 짧게 깎아 그린 표면이 매끄럽고, 속도 조절이 매우 어려워 ‘유리알 그린’이라고 불리는 것도 오거스타 만의 특징이다. 특히 11·12·13번 홀은 난코스여서 선수들이 기도를 한다는 뜻으로 ‘아멘 코너’라고 부른다.

▲ 지난해 마스터스 우승자인 스카티셰플러가 올해 챔피언인 욘 람에게 그린 재킷을 입혀 주고 있다. AP=연합뉴스

미국 남북 전쟁 때 남군의 본거지였던 애틀랜다 인근이어서 흑백 차별이 유난히 심하다. 흑인과 여성의 출입은 한때 금지되었고, 이곳 코스를 밟아 보고 구경하는 게 평생 소원인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문이 굳게 잠겨 있는 신비성뿐 아니라 지명도가 높기 때문이다. ‘인간이 만든 최고의 코스’로 불리는 오거스타는 1970년대 초까지만 해도 흑인 입장이 허락되지 않았고 이후에도 여성 입장을 금지해 시위의 대상이 돼 왔다. 콘돌리자 라이스 전 미 국무부 장관과 여성 사업가 달라 무어를 첫 여성 회원으로 선정하면서 80년 만에 금녀의 장벽을 허문 게 불과 11년 전의 일이다.

마스터스라는 이름이 골프뿐 아니라 테니스·수영·바둑 등에서도 널리 쓰이게 된 것도 세계 골프의 강자들만이 출전하는 마스터스 골프 토너먼트의 영향이다. 마스터스하면 곧 ‘명인들의 경연장‘이라는 인식이 자리잡게 된 배경이다.

마스터스 티켓 구하기는 하늘의 별따기다. 패트론(patron)이라는 약 5만 명의 후원자들에게만 입장권을 우선 배당하기 때문이다. 대회를 앞두고 암표는 부르는 게 값이다. 기업의 후원을 받거나 상업성을 띠지 않아 골프만을 위한 가장 순수하고 환상적인 대회라는 평가를 받아 골프팬들이 마스터스에 광분하는 이유다.

노랑 바탕의 미국 대륙에 빨간 깃발 달랑 하나 꽂힌 마스터스 로고가 보여 주는 힘은 대단하다. ‘마스터스에 직관하러 왔다’는 걸 인증하기 위한 과시욕이 반영된 탓에 올해의 경우 마스터스 주간 동안 한 시간에 약 100만 달러어치(약 13억 원)씩 각종 기념품이 팔렸다고 한다. 로고가 새겨진 굿즈 종류는 볼 마커와 모자·티 셔츠·대회 깃발 등 100가지가 넘었다. 골프와 별로 관계없는 텀블러·개 밥그릇·열쇠고리 등도 불티나게 팔렸다.

일주일 동안 대회 총상금의 4배가 넘는 무려 약 7000만 달러(추정)어치가 판매됐다. 1800만 달러에 달하는 총상금 등 대회 예산을 TV 중계권료 및 기념품 판매 수익 등으로 충당하고도 남는 장사다. 올해 영광의 그린 재킷을 입은 스페인의 욘 람은 우승상금으로만 324만 달러를 거머쥘 수 있었다.

마스터스 우승자만이 입는 그린 재킷은 골프대회 우승자의 대명사가 된 지 오래다. 2021년에는 일본의 마츠야마 히데키가 동양인으로는 처음 그린 재킷을 입었다. 한국 선수로는 2020년 임성재가 2위에 오른 게 역대 최고 성적이다. PGA투어에서 활약중인 태극 전사들이 그린 재킷을 입는 모습을 상상 속에서만 그려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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