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군사 지원 논란과 ‘내로남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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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이 View]- 한국을 위한 변명

한원석 기자페이지 + 입력 2023-04-21 00:02:40

최근 미국에서 기밀 문건이 유출되면서 전 세계가 발칵 뒤집혔다. 유출된 문건 중 상당수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된 내용이었다.

이 가운데 한국이 우크라이나 군사 지원을 꺼리고 있다는 김성한 전 국가안보실장과 이문희 전 외교비서관의 대화 내용도 포함돼 있어 충격을 줬다. 이들은 미국의 포탄 수출 요청에 응할 경우 미군이 ‘최종 사용자’가 아니게 될 상황에 처할 것을 우려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럴 경우 한·미 정상회담이 우크라이나에 살상무기를 주는 조건으로 성사된 것처럼 비칠 수도 있기 때문에 이를 막아야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러한 내용이 뉴욕타임즈(NYT) 등을 통해 보도되자 유럽을 중심으로 서방세계의 일원인 한국이 우크라이나 지원에 인색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됐다.

한 영국 매체는 “한국의 외교 정책이 서구 우방의 인내심을 시험한다”면서 “이번 문건 유출 사태는 한국이 우크라이나 지원에 너무 소심하다(timid)는 것을 서방 동맹국들에게 상기시켰다”고 지적했다.

한술 더 떠 이 매체는 한국의 ‘2030 부산엑스포’ 유치 노력을 “동맹국들이 전쟁 여파로 정치·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근시안적이고 이기적인 태도로 보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부산에 있는 유엔 한국전 참전 묘지를 방문하면 미국·영국·프랑스·캐나다·콜롬비아·에티오피아 등 한국에서 전사한 군인의 묘를 볼 수 있다”며 과거 한국이 받은 도움을 상기시켰다.

실제로 영국은 한국전쟁 시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5만여 명을 우리나라에 파병한 나라다. 다른 영연방 국가인 캐나다와 호주·뉴질랜드까지 합치면 참전 인원수는 더욱 늘어난다.

하지만 이러한 영국의 도움에도 3년간의 전쟁은 휴전협정으로 마무리됐다. 70년이 흘렀지만 아직 북한과 240km에 달하는 휴전선을 놓고 대치하고 있다. 북한은 최근 고체연료를 사용한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에 성공하면서 동북아시아에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있다.

또한 한국은 서해를 사이에 두고 중국과 마주하고 있다. 미 국방부의 2022년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은 이미 2020년에 세계 최강 미 해군을 전함 수에서 앞질렀다. 여기에 더해 북한 바로 위에는 러시아도 있다. 그야말로 ‘레드팀’과의 최전선에 한국이 위치한 것이다.

한국이 세계 10대 무역국이자 서방 세계의 일원으로 자유민주주의 수호에 일조해야 한다는 지적에는 기본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레드팀’ 3인방과 마주하고 있는 한국에 대한 무리한 요구는 온당치 않다. 우리가 처한 상황은 도버해협이라는 ‘천연 해자’를 가진 데다 대륙에서 프랑스·독일·폴란드 등 나토 동맹국들이 안전을 담보해 주는 영국의 그것과는 매우 다르다.

특히 북한 문제 때문에라도 한국은 러시아를 적대시만 할 수 없다. 이는 유럽이 중국과의 경제적 관계를 고려해 대만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에 고개를 돌린 것도 아니다. 의약품 등 정부가 지원한 각종 인도적 물자만 두 차례에 걸쳐 1억 달러에 달한다. 민간 지원까지 합하면 훨씬 더 많은 규모다. 한국 민간인의 지원으로 최첨단 장비를 갖춘 우크라이나군 중대도 있을 정도다. 이번에 유출된 기밀 문건과 국내 언론에 따르면 한국은 지난달 155mm 포탄 50만 발을 대여 형식으로 미국에 제공한다는 내용의 계약을 미국과 체결한 사실도 뒤늦게 알려졌다.

하지만 유럽 앞마당에서 터진 우크라이나 전쟁에 그동안 나토 소속 국가들의 대응은 어땠는가. ‘노르드스트림’이라는 값싼 에너지에 취해 대러 제재에 미온적이었고, 레오파르트 탱크 지원은 전쟁 1년이 지나서야 간신히 이뤄졌다. 이마저도 미국이 압박하지 않았으면 힘들었을 것이란 게 외교가의 공공연한 비밀이다.

오죽하면 EU와 나토에 속한 리투아니아의 란드스베르기스 외교장관이 SNS에 “서구의 영향력 확산이 불가피하고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메시아적 망상 때문에 독재자들이 모든 규칙을 어기도록 내버려 두면서 그들의 경제를 먹여 살렸다”고 직격탄을 날렸겠는가.

한국 비판에 앞장 선 영국 매체를 2015년 인수한 일본의 사정은 어떤가. 러시아산 석유를 1배럴에 60달러 이상으로 구매하지 않는 내용의 대러 제재에 동참해 놓고 평균 68.5달러에 구매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소한 한국은 자국 정찰기가 러시아 미사일 공격에 격추당할 뻔했지만 ‘집단방위’를 규정한 나토 헌장 5조 발동을 막기 위해 쉬쉬하거나 중립국 의뢰로 건조 중인 군함을 자국이 급하다며 멋대로 빼앗아 가 중립국을 적국으로 만들지도 않았다. 오히려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고, 이라크와 아프가니스칸에도 파병하는 등 미국 등 서방의 동맹국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해 왔다.

우크라이나 포탄 지원도 밝혀진 만큼 이제 서방 세계 일각에서 일고 있는 한국에 대한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식 비판을 멈춰야 할 때다. 아직 휴전 중인 한국을 비난하기 전에 자신들의 눈에 놓인 들보부터 먼저 봤으면 한다.

한원석 wshan@skyedaily.com 기자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