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유와 맨시티 처음부터 앙숙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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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체스터 지역 라이벌로서 만날 때마다 혈투
트레블 앞둔 맨시티 향한 맨유의 심정 궁금

박병헌 필진페이지 + 입력 2023-05-17 08:35:29

잉글랜드 축구협회(FA)컵은 그 역사가 무려 150년이 넘는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축구 협회 축구 대회다.

FA컵은 축구의 발상지인 잉글랜드 축구 협회에 속한 프리미어리그(EPL)와 잉글리시 풋볼 리그(EFL)·EFL 원·EFL 투 등 프로 팀들과 내셔널리그 등 5개 지역리그 아마추어 클럽 등 모두 12개 리그의 클럽들이 토너먼트 방식으로 자웅을 가린다.

다음 달 3일 축구의 성지라고 불리는 런던의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치러질 올해 결승전에서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와 맨체스터 시티(맨시티)가 승부를 가린다. 이른바 맨체스터 더비여서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18세기 산업혁명의 발상지인 영국 북서부 공업도시 맨체스터를 연고로 한 맨시티와 맨유 사이의 라이벌전은 맨체스터 더비라는 말로 유명하다. 옥스퍼드 사전에 따르면 ‘더비’는 같은 지역을 연고지로 하는 두 팀끼리의 라이벌 경기를 뜻한다. 더비라는 말의 기원은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더비는 원래 같은 지역 연고팀들 사이 경기에 대해서만 사용한다. 로컬 더비가 본래 의미였지만, '치열한 라이벌전'을 뜻하는 용어로 그 의미가 넓혀졌다. 더비 팀은 한 도시에서 월등한 경기력을 앞세워 축구팬을 확보해야 하기 때문에 혈전을 치를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한 나라를 대표하는 팀 간의 경기를 더비라고 부르기도 한다.

맨체스터 더비의 역사는 100년을 훌쩍 뛰어 넘는다. 두 팀의 초기 창단 역사와 관련이 깊다. 산업 혁명의 태동지로 도시에 부가 축적되며 시민들이 여가생활로 축구를 많이 즐겼다.

맨시티는 1880년 맨체스터 서부의 조그만 마을 웨스트 고든에서 세인트 마크스라는 교회가 선교 목적으로 창단한 팀이었다. 프로 축구를 위해 만든 팀은 아니었다. 세인트 마크스 웨스트 고튼(St. Mark’s West Gorton)이라는 이름으로 창단한 팀은 1887년 연고지를 맨체스터 남동쪽에 있는 아드윅으로 바꾸고 아드윅 어소시에시션 풋볼클럽으로 개명했다. 두 팀의 산파 역할을 맡았던 주인공은 개신교 목사의 딸인 아나 코넬이다. 코넬은 잉글랜드에서 축구단을 만든 첫 번째 여성으로 기록돼 있다. 아드윅 FC는 1894년 자금난을 겪으면서 오늘날 맨체스터 시티 FC로 이름을 바꿨다.

맨유는 1878년 맨체스터에서 철도회사인 랑카셔 요크셔의 뉴턴 히스 지사 노동자들이 만들었다. 1878년에는 뉴턴 히스 LYR 풋볼클럽이란 이름의 실업팀이었다. 철도지부에서 독립한 뉴턴 히스는 자금난을 겪다가 존 헨리 데이비스의 투자로 위기를 넘겨 1902년 4월부터 지금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맨체스터 축구 팬들은 맨유와 맨시티 구분없이 두 팀을 모두 좋아했다. 두 구단은 관계가 상당히 좋아서 서로 간에 선수 이적도 많이 할 정도였다. 맨시티의 하이드 로드 근처 탄광에서 일어난 폭발 사고로 23명의 광부가 사망한 참사가 일어났을 때 맨유 팬들은 지역 주민들을 돕기 위한 자선 경기를 치르기도 했다. 그러나 1970년대 들어 상대 선수에게 심각한 부상을 입힐 정도의 격렬한 몸싸움이 벌어지고 나서부터 골 깊은 감정이 생겨났다.

▲ 앙숙 관계가 된 맨유와 맨시티의 더비는 늘 혈투를 벌여 팬들의 관심을 끈다. AP=연합뉴스

이후 피 튀기는 경기를 벌이다 보니 맨체스터 더비는 흥행 만점인 EPL의 인기를 등에 업고 세계적인 볼거리로 자리를 잡았다. 든든한 자본력을 발판으로 1992년 EPL이 출범하면서 맨체스터 더비는 잉글랜드를 넘어 전 세계 축구팬들의 관심을 받기에 충분했다. 앙숙답게 늘 멋진 승부가 연출되기 때문이었다.

특히 맨시티는 2008년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 왕족 출신의 사업가인 셰이크 만수르가 인수하면서 빠르게 성장했다. 3조 원에 육박하는 오일 달러가 대거 유입되었기 때문이다. 만수르의 자산은 무려 37조 원에 달한다고 한다.

그 덕분에 맨시티는 호화 멤버를 꾸려 올시즌 EPL 3연패를 눈앞에 두고 있으며 ‘만수르의 꿈’인 트레블(EPL 우승·FA컵 우승·UCL 챔피언)을 사정권에 둔 상태다. 맨시티 선수단의 몸값은 1조5300억 원으로 추정된다. EPL 20개 구단 중 가장 높으며, 만수르의 이처럼 과감한 투자는 성적으로 직결됐다.

잉글랜드 축구 명장 알렉스 퍼거슨 전 맨유 감독은 맨시티를 “시끄러운 이웃”이라며 라이벌 의식을 드러냈지만 이젠 거꾸로 맨유가 맨시티의 “시끄러운 이웃”이 될 지경에 몰렸다. 세상만사가 참으로 아이러니컬 하다.

EPL 출범 이전부터 라이벌 관계를 형성해 온 두 팀은 컵 대회를 포함해 188번의 더비를 가졌다. 2010년 전까지만 해도 맨유의 압도적인 우위였지만 만수르가 구단주에 오른 이후 격차가 좁혀져 맨유 77승, 맨시티 58승(무승부 53)을 기록 중이다. 맨시티는 2011~12시즌 원정경기에서 맨유에 6-1로 대승을 거둬 라이벌의 자존심을 완벽하게 꺾는 이변을 연출하기도 했다.

맨시티의 트레블 도전을 바라보는 맨유의 심정은 무엇일까. 라이벌이 잘 되기를 바라는 것일까. 아니면 사촌이 땅을 사면 배 아프다는 놀부의 심보일까.

박병헌 필진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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