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 탓하는 정치 문화 이젠 바뀌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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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이 VIEW] - 정치판의 고질병인 '남 탓' 문화

김준구 기자페이지 + 입력 2023-05-26 00:02:40

중국 전한(前漢) 시대에 지어진 ‘설원(說苑)’에는 ‘아장동사(我將東徙)’란 올빼미 우화가 나온다. 비둘기가 올빼미를 만나 어디로 가는지 묻자 올빼미는 “마을 사람들이 모두 자신의 울음소리를 싫어해서 동쪽으로 이사를 가려고 한다”고 했다. 비둘기는 “울음소리를 고칠 수 없다면 동쪽으로 이사를 가 봤자 그곳 사람들도 너를 싫어할 것”이라고 충고했다. 자신의 잘못이나 허물을 고치려 하지 않고 남 탓만 하는 것을 비유한 우화다.

‘잘되면 내 덕, 못되면 남 탓’하는 것을 소비자 행동학에서는 귀인이론(attribution theory)을 통해 설명한다. 여기서 귀인(歸因)은 어떤 행동의 원인을 어느 한 곳에 귀속시키는 과정이다. 쉽게 말하면 ‘탓하기’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다이어트를 했는데 성공하면 자신이 열심히 했기 때문이라며 내 덕을 들지만, 실패하면 최근 회사업무가 많았기 때문이라며 외부 환경 탓으로 돌리는 식이다.

‘남 탓’을 하는 병은 특히 정치판에선 흔한 일이다. 심지어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버젓이 남에게 덮어씌우는 경우도 있다. 최근에 있었던 남 탓의 대표적인 게 코인 투자 의혹으로 논란이 된 김남국 의원의 경우다. 김 의원은 ‘60억 원 코인 논란’이 불거지자 “한동훈 법무부 장관과 검찰의 공작”이라며 “의혹을 제기한 사람은 모든 것을 걸고 자신과 진실게임을 하자”고 발뺌했다. 금융정보분석원(FIU)이 ‘이상 거래’로 판단해 검찰에 통보한 것임에도 일단은 외부 탓으로 돌려 잠시 위기에서 벗어나려는 수작이었다.

국민이 김남국 의원에 열받아 하는 이유는 ‘내돈내투(내 돈으로 내가 투자)’가 아니다. 그동안 ‘삼시 세끼 라면’ 발언과 낡은 운동화로 온갖 ‘거지 코스프레’를 하며 정치후원금을 받아 내더니 뒤로는 수십억 원의 딴 주머니를 차고 있었던 것에 분노하는 것이다. 더군다나 혈세를 받는 대가로 국정에 전념해야 할 상임위 회의 시간에 자신의 돈벌이를 위해 코인 투자를 했다는 사실이 화를 돋운 것이다. 원인이 본인에게 있는데 화살을 외부로 돌리려다 보니 상황만 악화시킨 꼴이다.

정치판의 고질적인 ‘남 탓’은 지금도 여전하다. 사회문제로까지 커진 ‘전세 사기’만 하더라도 여야가 상대방 탓을 하며 허송세월했다. 서민들은 죽어 나가건 말건 일단 상대 당의 잘못을 부각시키는 데 여념이 없었다. 여야 할 것 없이 그동안 자신들이 내세운 것에서 조금만 비켜나면 모든 책임을 상대에게 돌리며 비난부터 쏟아 냈다. 그나마 간신히 전세 사기 피해 지원을 위한 특별법 제정안이 24일 국회 상임위 문턱을 넘었다.

난방비 폭등 문제도 마찬가지다. 더불어민주당은 윤석열정부 들어 공공요금이 급등했다며 ‘정권 책임론’만 집중적으로 부각했다. 이에 대해 국민의힘은 문재인정부에서 가스요금 인상을 억누르고 탈원전 정책을 펼친 탓이라며 역공을 쏟아부었다. 보는 국민으로선 짜증만 더할 뿐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일정 상황에서 방어기제가 작동한다. 정치인들은 특히 심하다. 그러기에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일단 남 탓을 한다. 자기합리화 중에서도 가장 만만한 수단이 바로 ‘남 탓’이다. 문제의 원인을 내게서 찾지 않고 다른 사람이나 상대 당으로 돌리는 것만큼 속 편한 일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우리 국민의 의식 수준은 높아졌다. 일단 남 탓부터 해대면 국민이 순순히 속아 줄 것이란 생각은 자신만의 착각일 뿐이다.

1990년 초에 고 김수환 추기경이 카톨릭 교계와 함께 펼쳤던 ‘내 탓이오’라는 사회운동이 있었다. 김 추기경은 당시 우리 사회에 뿌리 깊게 박혀 있던 ‘네 탓 타령’을 쇄신하려고 노력했다. 그는 당시 ‘내 탓이오’라는 문구가 적힌 스티커를 오가는 차량에 붙여 주면서 남 탓만 하는 우리 사회를 바꿔 보려 했다. 하지만 이 운동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이 운동이 한창일 때도 정치인들의 ‘남 탓’이 끊이질 않아서였다.

‘내 탓이오’ 운동 이후 30여 년이 지나 지금 우리 정치 상황을 보면 ‘내로남불’이란 신조어가 생길 만큼 고질병은 줄어들지 않았다. 동서양을 꿰뚫고 있는 황금률 중 하나는 바로 ‘내 탓’이다. 모든 잘못과 허물을 남이 아닌 자신에게서 먼저 찾아보란 것이다. 공자는 ‘군자는 허물을 자신에게서 구하고 소인은 허물을 남에게서 구한다(君子求諸己小人求諸人)’고 했다. 신약성서 마태복음에도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라는 구절이 있다.

세상을 살다 보면 타인을 불편하게 만들고 스트레스를 받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중 하나는 자신의 잘못을 잘 인지하지 못하는 사람이고, 또 하나는 자신의 잘못을 부인하거나 다른 이의 잘못으로 돌리는 사람이다. 정치인 중에는 이 두 가지 특징이 뼛속 깊이 박힌 사람들이 유난히 많다. “쟤가 했어요”가 아니라 “제가 했어요”라며 자신부터 반성하고 책임지는 정치인은 가뭄에 콩 나듯 한다. 기상청은 올여름 역대급 무더위를 예고하고 있다. 가뜩이나 날도 더운데 국민 열받게 하는 ‘남 탓’은 그만 좀 하자.

김준구 jkkim@skyedaily.com 기자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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