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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의 전설’로 불리는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부 장관이 27일(현지시간) 100세를 맞았다.
이번 주 초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열린 빌더버그 콘퍼런스를 마치고 돌아온 그는 100세 기념행사를 위해 뉴욕·런던을 거쳐 고향인 독일 퓌르트로 향할 예정이다.
코로나19 대유행을 지나며 두 권의 책을 마무리 지었고 최근 또 다른 집필 작업에 들어갔다.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보이고 있는 키신저의 행보에 놀라움을 금치 않을 수 없다.
그의 아들 데이비드 키신저는 최근 미국 워싱턴포스트(WP) 기고문에서 “아버지의 식습관이나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직업적 특성을 고려할 때 아버지의 장수는 기적과도 같은 일”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아버지의 장수 비결로 “꺼지지 않는 호기심으로 세상과 역동적으로 소통하는 것”을 꼽았다.
TV 프로그램 제작사 대표인 아들의 눈에 비친 아버지는 당대의 실존적 과제를 파악하고 이에 맞서 싸우는 뜨거운 열정의 소유자다.
1950년대 핵무기의 부상과 인류에 대한 위협이 키신저 전 장관의 고민이었다면, 5년 전 95세의 키신저 전 장관을 사로잡은 건 인공지능(AI)의 철학적·실용적 의미를 파악하는 일이었다.
데이비드는 “최근 몇 년간 아버지는 추수감사절 때마다 손자들에게 영화 터미네이터의 줄거리를 상기시키면서 이 새로운 기술이 미칠 파장을 이야기하셨다”며 “매사추세츠공과대(MIT) 대학원생의 열정으로 AI의 기술적 측면에 몰두하면서도 AI 활용 논쟁에 있어서는 특유의 철학적·역사적 통찰력을 보이셨다"고 소개했다.
그는 "아버지의 또 다른 인내 비결은 사명감"이라고 했다. 키신저 전 장관이 주로 냉정한 현실주의자로 묘사되지만, 전혀 냉담하지 않으며 애국심·충성심·초당파성 같은 개념을 깊게 믿었다는 것이다.
데이비드는 그 일례로 자신이 어렸을 때 아버지가 케이 그레이엄·에드워드 케네디·허버트 험프리 등 정치적 성향이 달랐던 이들과도 따뜻한 우의를 다졌다고 떠올렸다.
키신저는 1938년 어린 나이에 부모를 따라 히틀러의 홀로코스트에서 가까스로 벗어나 미국으로 이민을 온 뒤에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고, 그에 대한 보상으로 주어진 지아이 빌(GI Bill) 덕택으로 하버드대에서 탁월한 학문적 재능으로 필적할 수 없는 지적 자본을 축적한 뒤 그곳에서 교수가 되었다.
키신저는 케네디와 존슨의 행정부 시기에 권력의 외부인으로만 머물다가 1969년 닉슨 대통령의 국가안보보좌관으로 발탁되면서 권력의 내부인이 되었다.
그때부터 키신저는 마치 경이로운 마법사처럼 당시 치열한 미소 초강대국들의 냉전시대에 ‘죽의 장막 ’을 뚫고 미중의 관계개선을 이뤘고, 소련 제국의 ‘철의 장막 ’을 넘어 미
·소 간의 데탕트를 구축했다. 그리고 미국을 기나긴 베트남 전쟁의 질곡에서 마침내 탈출시켰다.
키신저는 미국의 대통령이 아니었다. 그는 미국의 역사상 수많은 국무장관 중 제56대 국무장관에 불과했다. 미국 행정부의 권력구조에서 제2인자에 지나지 않았던 그가 어떻게 ‘외교적 마법’을 부려 한때나마 ‘지구의 대통령’으로까지 칭송될 수 있었던데에는 제럴드 포드 대통령의 전폭적인 신임 등 행운적인 요소가 있었지만 그의 탁월한 창조적 리더십의 결과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데이비드는 "핵 강대국들이 충돌 직전에 있는 것처럼 보였던 시기에 이러한 정기적인 대화는 긴장 완화에 도움이 됐다"며 "오늘날 국제 갈등의 주역들 간에도 이런 대화를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데이비드는 아버지에게 국제 외교는 절대 게임이 아니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아버지가 나치 독일 치하에서 홀로코스트로 13명의 가족과 수많은 친구를 잃었다며 이런 개인적 경험에서 비롯된 헌신과 끈기로 외교에 임했다고 소개했다. 김명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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