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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혐오’의 한국 사회를 직설적 화법으로 풀어내 화제가 된 장편소설 ‘82년생 김지영’은 ‘맘충(엄마+벌레의 합성어) 독백’으로 끝난다. 서울 변두리의 24평 아파트에 살면서 딸을 낳아 키운 지영 씨는 공원에서 1500원짜리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먹는 순간 사람들에게서 ‘벌레’ 소리를 듣는다. 남편이 벌어 온 돈에 기생하여 자신의 목을 축이며 놀고먹는 기생충.
지영은 읊조린다. “죽을 만큼 아프면서 아이를 낳았고 내 생활도, 일도, 꿈도, 내 인생, 나 자신을 전부 포기하고 아이를 키웠어. 그랬더니 벌레가 됐어. 난 이제 어떻게 해야 돼?” 해당 책이 출간된 지 햇수로 8년 차다. 맘충 담론은 일파만파 확산해 ‘맘카페’ ‘여초커뮤니티’ ‘여초카페’ 라는 조직화한 단어로 표적화됐다. 기성 언론과 남성 중심의 일부 보수정치권이 이들을 사냥하듯 조리돌림하는 정치동학도 정착됐다.
‘맘충과 여혐’의 여파는 곧 한국 사회를 강타한 저출산·출산 파업으로 이어졌다. 결혼도 육아도 안 하는 미혼의 여성들이 대거 등장하게 된 것이다. 결혼정보회사에서 ‘퇴물’ ‘상폐(상장 폐지)’ 소리를 일상적으로 듣는다는 30·40대 미혼 여성들은 “임신율이 떨어질 테니 난자 냉동을 먼저 하라” “30대 후반 여자는 난소 나이를 보고 중매를 해라. 불임 쪽팍을 찬다” 등의 언어 폭력에 일상적으로 시달린다. 최근 화제를 모았던 TV프로는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 미혼 여성들이 연하남과 소개팅을 시도하는 과정을 그린 리얼리티프로였다. 대부분의 시청자는 온라인커뮤니티에 ‘늙은 여자들의 추태’라는 글을 올리며 이들을 조롱했다.
인터넷에 접속만 하면 “30대의 돈도 없는 미혼 여성이 남성의 조건을 본다”는 커뮤니티 글을 기사화한 ‘성별 갈라치기’ 기사가 끊임없이 무한 복제되며 여성혐오를 부추긴다. 아이를 낳으면 달라질까. 벌레의 삶이 기다리고 있는걸. 7세 아들을 키우는 30대 중반 주부는 미혼 여성들에게 “아이 절대 낳지 말아라. 아이 데리고 나가서 조금만 민폐를 끼쳐도 맘충이라고 손가락질 받는다”고 호소한다. 아이가 없으면 ‘퇴물’ 있으면 ‘기생충’으로 취급되는 게 한국 사회의 여혐 현실이다. 인도식 신분제 사회라면 30대 여성은 신분제에도 못 들어가는 불가촉 천민에 해당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의 언어 폭력이 언론부터 대중문화에 이르기까지 난무하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더불어민주당에서 최근 몇 년 동안 강성 팬덤의 한가운데에 ‘개혁의 딸(개딸)’로 불리는 20·30·40대 여성 지지자들이 우뚝 섰다. 근거지는 맘카페와 여초카페 등이다. 이들은 보수정당인 국민의힘의 ‘이대남(이십대 남성의 줄임말로 20·30남성 우월주의 집단)’과 맞서고 있다.
지난 총선과 대선 과정을 거치며 한국 사회에서는 20·30대 여성들이 페미니스트라는 ‘사회악적’ 존재로 규정되기도 했다. 이들이 성차별과 남성혐오를 부추긴다는 인식이 이준석 국민의힘 전 당 대표 시절 보수 정당의 주류 유권자 집단 사이에서 퍼졌다. 이대남이 생물학적 여성을 멸시하고 따돌리면서 여성들은 민주당의 강성 지지층을 이뤘고 이재명 당 대표가 자진해서 수호하는 강성 팬덤인 ‘개딸’로 변모하는 결과를 낳았다. 결과는 보수 정치권에서의 여성의 실종이다.
지난 대선에서 윤석열 대통령 후보에게 과반의 표를 준 여성은 전 세대 중 60대가 유일했다. 총선을 1년 앞둔 현재에도 ‘여혐’은 현재 진행이며 ‘개딸’의 위상은 민주당 내 계파 정치를 좌지우지할 정도다. 이런 가운데 국민의힘에서는 여성 지지자가 실종됐다. 개딸과 맘충의 사회에서 국민의힘의 역할은 여가부 폐지로 대표되는 이대남들의 성별 갈라치기 밀어주기 말고 무엇이 있었는가. ‘개딸’이라는 정치적 괴물을 잉태한 건 ‘이대남’이라는 또 다른 괴물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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