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종택칼럼] 보훈 제대로 하는 나라가 참된 선진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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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이데일리 기자페이지 + 입력 2023-06-05 00:02:40

인간은 ‘행복’을 바란다. 행복의 요소로는 권력·재물·명예·건강·가족행복 등을 들 수 있다. 하지만 조물주는 한 사람에게 이 모두를 다 주지 않는다고 한다. 인간이 이를 다 가지면 자신이 마치 신이라도 되는 양 교만을 부릴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 가운데 가장 가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명예가 아닐까 싶다. 왜? 만물의 영장, 사람이기에 그렇다. 권력과 돈 등을 몽땅 다 가져도 손가락질 당하는 불명예를 안고 있다면 그게 어디 사람다운 삶이라고 하겠는가.

그래서 중국 송나라 문장가 구양수는 “표범은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豹死留皮人死留名)”는 왕언장의 말을 소개하고 있다. 왕언장은 일개 병졸로 출발해 후량의 태조 주전충 밑에서 장군이 되어 나라와 백성을 위해 충성을 다한 인물이다. 맞다. 짐승도 가죽을 남겨 세상에 이익을 주는데 하물며 사람임에랴. 왕언장의 말은 꽃다운 이름이 후세에 길이 전해져 그 향기가 백대에 걸쳐 흐른다는 ‘유방백세(流芳百世)’와 뜻을 같이하고 있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유취만년(遺臭萬年)’이다. 죽은 후 더러운 이름이 만 년 동안 대대로 전해져서 사람들에게서 욕지거리를 얻어먹는다는 의미다.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6일 현충일은 우리 역사의 영광과 아픔을 함축하고 있다. 선열은 민족과 자유를 위해 목숨을 바쳤다. 이들은 일제가 국권을 강탈하고 북한이 동족에게 총을 겨누었을 때 조국의 독립을 쟁취하고 이 땅의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수많은 피와 땀과 눈물을 뿌렸다. 우리가 선진국 반열에 올라서고 풍요를 누리는 것은 호국영령의 희생이 초석이 됐다. 대의를 위해 자신의 희생을 무릅쓰고 남긴 그 고귀한 자취를 영원히 기려야 한다.

우리나라는 지금도 위험한 고비를 맞고 있다. 북한의 핵 미사일 위협과 중국의 동북공정,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 및 독도 영유권 주장 같은 문제로 이웃 국가들의 견제를 받고 있다. 이러한 국제환경 속에선 기성세대는 물론 젊은 세대에게 보훈의식을 함양시켜야만 국가를 보존하고 민족의 내재적 발전을 도모할 수 있다.

국가보훈이란 국가와 민족을 위해 공헌했거나 희생한 분들과 그 유족에 대한 예우와 지원을 통해 이들의 영예로운 생활을 보장하고 국민의 애국심을 함양하는 것이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신명을 바친 국가유공자의 위국정신을 국민정신으로 승화시켜야 한다. 이는 국민통합을 이루고 국가발전을 뒷받침할 수 있는 정신적 토대를 구축하는 일이다. 보훈정책을 추구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국가유공자들에게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기 위해 경제적·신체적·정신적 요소들을 균형 있게 충족시키는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여느 선진국과 달리 신명을 바친 이들에게 이러한 요소들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 보훈정책과 제도상의 문제점이 적지 않다. 먼저 보훈법령상의 복잡성이다. 법체계가 일원화돼 있지 않고 무려 40여 개의 개별법이 혼재돼 있다. 이는 각 대상별로 개별법이 무분별하게 제정돼 왔기 때문이다. 또한 국가유공자 그룹의 방만성이다. 대상자는 그룹별로 순국 선열·전몰 군경·전상 군경·무공 수훈자·참전 유공자·4·19혁명 공로자·5·18민주유공자·순직 공무원 등 무려 17개나 된다. 이를 국가 유공자, 사회·민주 유공자, 공무(순직) 유공자와 같이 3개 군으로 분류해야 한다.

공헌과 훈장에 대한 합리성 결여의 문제도 있다. ‘부상의 정도’는 의학적 결과를 평가 기준으로 삼고, ‘공헌에 대한 정도’는 포상의 등급(훈격)을 평가 기준으로 삼는 것이 바람직하다.

국가보훈 정책은 다양한 형태의 국가보훈 관련 기념제와 추모 사업 및 교육활동 등과 같은 ‘기억의 정치’를 통해 국가유공자 및 유족이 심리적·정신적으로 예우를 받는다고 느끼도록 해야 한다. 또 국가보훈 정책은 기본적으로 국가 정체성을 확립하고 정부의 정통성을 확보하는 국가 기본 가치의 확립·유지·발전이라는 헌정애국주의 원칙 아래 합리적 보상과 보편적 정의가 제도화되도록 개선해야 한다.

이런 보훈 정책의 선진화는 합리적 보상과 보편적 정의 규범의 제도화, 보훈 행정조직의 위상제고와 연계성 강화 등이 그 주요 내용이 된다고 할 수 있다. 헌신의 삶을 산 국가유공자와 유족에게 합당한 예우와 보상이 이뤄져야 애국애족 정신이 후세에 이어질 수 있다.

공자의 ‘춘추(春秋)’를 해설한 주석서 ‘좌전(左傳)’은 이렇게 일러주고 있다. “사이불후(死而不朽)!” 죽어서도 영원히 썩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렇다. 역사의 거울을 직시하는 것은 참으로 의미있는 일이다. 이 정신을 잊고 산다면 꽃다운 나이에 이름 모를 산하에서 앞서간 이들에 대한 도리가 아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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