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헌의 스포츠 세상] ‘독일 병정’ 랑거 형님은 나이를 거꾸로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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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넘게 코어 강화 위한 피트니스 덕분
챔피언스투어 최다승 및 최고령 기록 경신

박병헌 필진페이지 + 입력 2023-07-26 06:31:00

프로 골퍼로 데뷔한 지 무려 50년이 넘은 ‘독일 병정’ 베른하르트 랑거는 독일 골프의 선구자다. 원칙을 지키며 고지식하고 빈틈이 없는 사람을 지칭할 때 쓰는 ‘독일 병정’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선수다.

독일은 월드컵 축구대회를 네 번이나 제패한 축구의 나라이지만 골프와는 거리가 멀다. 랑거 이후에도 특출난 선수가 나오지 않고 있다. 독일 출신의 프로 골퍼로는 미국프로골프(PGA) 챔피언스 투어에서 활약 중인 알렉스 체카와 마르셀 짐 등이 고작이다.

1957년생인 랑거는 올해 66세로 15살인 1972년 프로에 데뷔했다. 지금은 50세 이상만 출전할 수 있는 챔피언스 투어에서 활약하고 있지만 그곳에서도 왕 고참 축에 속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랑거 형님’이라고 부른다.

2007년 1월 미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골퍼 중 한 명인 헤일 어윈(78)이 62세 나이에 챔피언스 투어 통산 45승을 거두자 세간에선 이 최다승 기록은 깨지지 않을 것이라고 여겼다.

챔피언스 투어에선 50대 중반을 넘기면 신체적인 한계가 오면서 기량이 급격히 내리막길을 걷는 게 보통이다. 당시 어윈은 50대 후반과 60대 초반에도 쉬지 않고 우승한 유일한 선수였다. 어윈의 45승은 당시 통산 최다승 2위인 리 트레비노(83·미국)가 거둔 29승보다 무려 16승이나 많았기 때문이다.

그해 8월 50세가 되면서 챔피언스 투어에 입문한 랑거도 같은 생각이었다. “이 나이에 우승할 것 같지는 않지만 하는 데까지 해 보자”고 다짐했을 뿐이다.

그러고서 17년의 세월이 흘렀다. 이달 3일 ‘랑거 형님’이 코스가 길고 깊은 러프로 악명 높은 챔피언스 투어 시즌 세 번째 메이저 대회인 US시니어오픈에서 우승컵을 들어 올리며 불가능해 보이던 챔피언스 투어 통산 최다승 기록을 세웠다. 무려 46승째를 거두며 ‘불가능은 없다’는 교훈을 던졌다. 나이를 거꾸로 먹는 랑거 형님에게 경의를 표할 수밖에 없다. 위대하다는 것 외에는 딱히 할 말이 없다.

더구나 경기 도중 샷이 워터 해저드쪽에 떨어지자 양말을 벗고 물속에 들어가 샷을 하는 등 혼신의 투혼을 보여 준 랑거 형님이었다.

▲ 독일의 베른하르트 랑거가 3일 US시니어오픈에서 우승한 뒤 갤러리들의 환호에 손을 들어 화답하고 있다. 스티븐스포인트(미국 위스콘신주)=게티이미지·AFP·연합뉴스

골프 ‘명예의 전당’ 회원인 랑거는 최다승과 나이와 관련된 모든 기록을 한꺼번에 갈아치웠다. 랑거는 2월 추브 클래식에서 챔피언스 투어 통산 최다승 타이기록을 세운 지 5개월 만에 전인미답의 46승 고지를 밟았다. 랑거는 당시 세운 PGA 챔피언스투어 최고령 우승 기록을 이날 65세 10개월 5일로 늘렸다. 챔피언스투어에서 64세 이후에 승리를 거둔 선수는 랑거가 유일한데 벌써 5번째다. 환갑을 넘겨서 거둔 우승 수만 해도 13번이나 된다.

랑거는 챔피언스 투어 데뷔 이후 17년 동안 단 한 해도 거르지 않고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뚝심을 보였다. 챔피언스 투어에서 가장 무서운 선수는 하루도 빠짐없이 운동하는 ‘랑거 형님’이다. 1986년 남자 프로골프에 세계 랭킹 제도가 도입됐을 때 세계 1위에 올랐던 랑거다. PGA투어에선 3승에 머물렀지만 주 무대인 유럽투어에서는 42승(마스터스 2승 포함)을 올렸다.

46승째를 거둔 뒤 랑거 형님은 그 공을 어머니께 돌렸다. “8월이면 100세가 되시는 어머니로부터 좋은 유전자를 물려받은 것 같다”는 소감을 밝혔다. 하지만 랑거 만큼 열심히 체력관리를 하는 사람은 없다. 어찌 보면 최고령 우승이나 나이를 거꾸로 먹는 기록도 끊임없는 그의 노력 덕분이다. 근육량 감소는 보통 40세 이후 시작되며 50세부터는 1년에 하지 근육량이 1∼2%, 근력이 1.5∼5% 감소하는 게 정설이지만 랑거에게는 세월이 무색하다.

20세 때 랑거의 모습을 담은 사진과 현재 랑거의 모습을 놓고 비교해 보면 얼굴 주름살을 빼고는 달라진 게 없다. 20세 때 공군으로 병역 복무 중 완전무장 행군을 하다 척추 골절과 디스크에 걸려 고생한 이후 50년 가깝게 하루도 거르지 않고 피트니스를 하고 있는 랑거다.

독일 남부 아우크스부르크 출신인 랑거는 가정 형편이 넉넉지 못해 먹고 살기 위해 아홉 살부터 캐디 일을 시작했다. 그의 아버지는 공사판의 벽돌공이었고, 어린 랑거는 틈틈이 아버지 일손을 도우며 자랐다. 키 174cm에 50년 넘도록 늘 체중 72kg을 유지하고 있는 랑거는 어릴 때의 경험을 살려 벽돌집을 짓듯 운동했다고 한다. 코어(척추·골반·고관절)가 탄탄해야 신체도 집도 오래갈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챔피언스 투어에서 가장 무서운 선수는 하루도 빠짐없이 운동하는 ‘랑거 형님’이라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대회를 앞두고 악천후로 아무도 연습하지 않는 날에도 혼자 드라이빙 레인지에 나가서 스윙 연습을 하는 랑거형님이다. 덕분에 70을 바라보는 나이임에도 드라이버 평균 비거리가 250m가 넘는다. 웬만한 젊은이 못지않다.

놀라운 자기 절제와 골프에 대한 열정과 집중력은 전 세계 골퍼뿐 아니라 일반인도 본받아야 할 스승의 자세임에 틀림없다. 랑거가 부디 오래오래 필드 위에서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 주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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