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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근의 미디어와 정치] 미디어 사업자 간 갈등 해결 못 하는 법·제도
황근 필진페이지 + 입력 2023-09-26 06:31:10
 
▲ 황근 선문대 교수·언론학
KBS·MBC 같은 공영방송의 정상화와 가짜뉴스 문제에 시선이 집중되면서 별로 큰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지만, 이 시간에도 국·외 미디어 시장에서는 결코 과소평가할 수 없는 일들이 연일 이어지고 있다. 이는 극도로 왜곡된 언론 시스템을 청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빛의 속도로 급변하고 있는 새로운 미디어 환경에 대응하는 것도 시급하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다.
 
국내적으로는 이번 달 초부터 현대홈쇼핑을 비롯한 TV홈쇼핑 사업자들이 IPTV를 비롯한 거의 모든 유료방송사업자들에게 송출중단을 통보하고 예고방송을 내보내고 있다. 연간 25000억 원에 육박하는 홈쇼핑 송출수수료는 광고시장 축소 등으로 심각한 경영압박에 시달리고 있는 방송 시장에 사실상 생명줄처럼 되어 버린 상태다.
 
특히 결합판매 등으로 저가 경쟁에 매몰되어 있는 유료방송사업자들에게 홈쇼핑 송출수수료는 일종의 소년장사같다고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유료방송사업자들은 지난 몇 년간 지속적으로 홈쇼핑 송출수수료 인상을 요구해 왔다. 송출 창구를 쥐고 유리한 입장에서 협상을 전개해 온 유료방송사업자들과 이에 불만을 가진 홈쇼핑사업자들과의 갈등은 언제든 폭발할 수 있는 휴화산 같은 상태에 놓여 있었다.
 
국외적으로는 올해 5월 구글이 미국의 뉴욕타임스와 3년간 1억 달러(1300억 원)의 콘텐츠 사용 대가를 받기로 계약하는 일이 있었다. 물론 구글을 비롯한 플랫폼 사업자들과 뉴스를 제작·공급해 온 언론사들 간의 사용 대가를 둘러싼 갈등은 오래전부터 있어 왔고, 실제로 대다수 나라에서 집단 혹은 개별 계약이 성사된 것도 사실이다. 또 호주를 비롯한 일부 국가에서는 뉴스 사용료 부과를 의무화하는 법이 제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계약은 단순한 뉴스 사용료가 아니라 구글의 다양한 플랫폼에서 뉴스 콘텐츠를 광범위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합의한 계약이라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그것은 최근 급성장하고 있는 이른바 생성형 AI’에 뉴스 내용을 자유롭게 변형·활용할 수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뉴욕타임스는 콘텐츠 배포와 구독 대가뿐만 아니라 마케팅 및 광고 상품 실험을 위해 각종 구글 툴을 사용하는 것이 포함된 포괄적 계약이라고 밝혔다.
 
이것은 플랫폼 사업자들에게 뉴스라는 디지털 콘텐츠 저작물을 제공하고, 그 대가를 지불받는 방식을 넘어 다른 영상콘텐츠들과 마찬가지로 광고수익 분배 방식으로 변화해 온 그동안의 흐름에 역행하는 것이다. 아마도 그 이유는 챗GPT나 구글 바드(Bard) 같은 인공지능 매체들은 사실에 기반한 막대한 뉴스라는 언론사가 생산한 콘텐츠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또 기사 내용을 변형·수정해 활용해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두 사건, 아니 현상들은 지금 미디어 시장이 어떤 형태로 변화되고 있는가를 극명하게 보여 주고 있다. 물론 앞의 두 사건을 플랫폼사업자들과 콘텐츠사업자들 간의 전통적인 공정경쟁 갈등으로 축소 평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인공지능을 기반으로 하는 첨단 플랫폼이나 검색엔진이 뉴스를 마음대로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은 공영방송·편파보도·가짜뉴스보다 더 심각하게 미디어의 존립 자체를 위협할 가능성도 있다.
 
이렇게 미디어 기술 진화와 이로 인한 미디어 사업자 간 갈등은 변화무쌍하게 급변하고 있는 반면, 우리나라의 법·제도는 낡은 아날로그 패러다임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미 유럽연합(EU)을 비롯해 호주·캐나다 같은 나라들은 미흡하지만 플랫폼 사업자들의 뉴스 이용 대가를 규율할 수 있는 법·제도 정비를 완료했거나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법·제도 개선은커녕 사실상 어떤 결과도 효력도 기대할 수 없는 사업자 간 협의에 매달려 있는 느낌이다. 벌써 20년 넘게 방치되어 온 지상파방송재송신 대가 관련 법·제도는 고사하고, 규제기구들은 방송중단 같은 사태에 대처할 수 있는 직권조정 권한조차 가지고 있지 못한 상태다. 더구나 구글 같은 국외 플랫폼에 대해서는 법적 규제 자체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무엇보다 챗GPT 같은 지능형 미디어가 어떻게 진화하고 미디어 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한 심각한 고민 같은 건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다. 하긴 정치에 포획되어 낡은 미디어 패권 갈등에 매몰되어 있는 현재 미디어 규제기구들에 아직 벌어지지도 않은 문제들을 신경 쓸 여력이 있을 리 없어 보인다. 이 상태라면 미디어의 발달 속도를 규제가 못 따라가는 규제지체(regulation-lagged)’가 아니라 아예 규제 자체를 생각할 수 없는 규제불능(regulation-impossible)’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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