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요희의 작가노트] 사기 당할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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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요희 필진페이지 + 입력 2023-10-25 06:30:30

존 스튜어트 밀은 ‘자유론’에서 자유의 영역을 ‘의견’과 ‘행동’으로 구분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자기 의견을 말할 자유가 있으며, 행동에 있어서는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에서 사생활을 간섭받지 않을 자유가 있다는 것이다. 즉 인간에게는 기본적으로 의사 표현의 자유, 사생활의 자유가 있고 추가로 남에게 피해당하지 않을 자유가 있다.

지난해 TV에서 방영되었고 지금도 인터넷 동영상 서비스(OTT)를 통해 감상할 수 있는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10화는 인간의 자유는 어디까지 보장받을 수 있는가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준다.

초등학생 6학년 정도의 지적 능력을 가진 20대 여성이 한 청년을 만났다. 살짝 껄렁한 분위기의 이 청년은 여성과 뜨거운 밤을 보내면서 상대에게 데이트 비용을 대게 했다. 여성은 남자와 ‘뜨밤’을 보내는 게 그다지 내키지 않았지만, 결국 응했고 데이트 비용도 혼자 댔다. 얼마 후 여성의 어머니가 그 사실을 알고는 분노하여 남자를 검찰에 고발했다.

재판부는 지적 장애가 있는 여자를 성적으로 유린하고 지갑을 열게 한 청년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판사가 판결문을 읽어 내려가는데 여성이 참았던 울음을 터트렸다. 더 이상 ‘억지 뜨밤’을 보내지 않아도 되고 돈을 뜯기지 않아도 되는데 여성은 왜 이토록 오열한 것일까.

남들이 생각하듯 여성은 일방적으로 당한 게 아니었다. 여성은 그가 나쁜 남자라는 것을 알았지만 그를 사랑했기에 ‘뜨밤’에도 순순히 응하고 데이트 비용도 댄 것이다. 그가 감옥에 가는 순간 여성은 사랑을 잃을 것이었다. 이런 상황은 우리 주변에 널렸다.

‘남자는 섹스하기 위해 사랑하고, 여성은 사랑하기 위해 섹스한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을 뒤집으면 여성은 ‘섹스 좀 안 하고 사랑할 수 없을까?’ 이런 궁리를 하고 있고, 남성은 ‘거추장스러운 작업 따위 건너뛰고 바로 섹스할 수 없을까?’ 궁리한다는 것이다.

재판정에 증인으로 출석한 의사는 말한다. 지적 장애인은 사랑의 데미지가 크므로 특별한 보호를 받아야 한다고. 여성의 어머니는 말한다. 내 딸을 세상의 늑대들로부터 지키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할 뿐이라고. 결국 모든 사람이 선의로써 이 여성의 사랑할 자유를 박탈했다.

설사 상처 좀 입는다고 해도, 그 상처로 인해 조금 오래 고통스럽다고 해도 본인이 감내하겠다면 상처받을 자유 정도는 허락해야 되는 게 아닐까? 몸 사리느라 섹스도 사랑도 미루고 사는 것보다 조금은 상처받아도 원 없이 ‘뜨밤’도 하고 사랑도 하는 게 이득 아닌가.

시인·소설가

임요희 필진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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