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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진단] - 거액 횡령, 언제까지 방치할 것인가
훔친 돈 빼돌리고 처벌은 몸으로 때우고… ‘한탕주의’ 횡령 판친다
공기관부터 금융권까지 할 것 없이 횡령
“거액 횡령하고 징역 10년 이내면 할 만해” 비아냥도
“바늘 도둑 소도둑 되는 셈”… 처벌 수위 높여야
이건혁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23-11-19 09:56:29
▲ 3일 오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위변조대응센터에서 직원이 미국 달러화를 들어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은행 금고가 털리는 방식의 범죄는 최근 들어 거의 사라졌다. 경찰 치안부터 보안업체 등이 잘 갖춰져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매년 빠지지 않고 나타나는 범죄 유형이 있다. 거액의 횡령은 어디든 가리지 않고 나타난다.
 
실체만 없을 뿐 사실상 오랜 시간에 걸쳐 거액을 금고에서 빼 가는 것과 다를 바 없지만 우리 사회는 예방은 물론 사후 수습도 부진한 모습이다. 수십억 원을 횡령했지만 여태 잡지 못하고 있는 사례도 있다.
 
잡힌다 한들 달라질 게 크게 없다. 횡령한 돈을 환수하기도 어려울뿐더러 형법상 처벌 수위도 약하다. 시민들 사이에선 차라리 횡령 한 번 크게 하고 몇 년 살다 나오는 게 나을 수 있다는 비아냥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건강보험공단부터 금융권까지 구멍 뻥뻥
 
횡령 사건은 국가 기관이라고 피할 순 없다. 지난해 9월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횡령 사건이 발생했다. 요양급여를 담당하는 A 팀장이 지난해 4월부터 9월까지 7차례에 걸쳐 46억 원가량을 횡령한 사실이 드러났다.
 
채권자의 계좌 정보를 조작해 채권 압류 등으로 지급 보류 상태였던 진료비용을 본인 계좌로 빼돌리는 방식이었다. 전산상에만 돈을 병원에 지급한 것으로 해놓고 빼돌린 것이다.
 
전산상으로는 입금 처리됐지만 실제로 돈이 들어오지 않자 병원들이 공단에 문의하면서 해당 사건이 드러났다. 하지만 A 팀장은 이미 장기 휴가를 내고 잠적한 상태였다.
 
지난달 18일 조명희 국민의힘 의원이 보험공단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A 팀장은 필리핀에서 생존 징후가 포착된 상태다. 사건이 발생한 지 1년 4개월이 지나서야 A 팀장의 소재지 흔적을 찾아낸 셈이다.
 
보험공단은 사건을 인지하자마자 형사고발과 계좌 조기 동결 등의 조치에 나서 올해 246억 원 상당의 손해배상 채권에 대한 민사소송에서도 승소했다. 하지만 A 팀장의 계좌에 남아 있던 현금 72000만 원을 회수하는 데 그쳤을 뿐 39억 원은 아직 되찾지 못한 상태다.
 
금융권에서 개인 횡령액이 가장 컸던 사건은 BNK경남은행에서 발생했다. 은행에서 PF(Project Financing)를 담당하던 직원이 2007년부터 2022년까지 회사 PF 대출금을 횡령한 사건이다.
 
▲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오른쪽)과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16일 국회에서 열린 공매도 제도개선 민··정협의회에서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당초 500억 원 규모로 알려졌지만 금융감독원의 추가 조사 결과 2988억 원까지 늘었다. 해당 직원의 은신처에서는 5만 원권 지폐와 1kg 골드바가 무더기로 발견되기도 했다.
 
이 외에도 10일 우리금융저축은행에서 한 직원이 고객 돈 23400만 원을 횡령한 사건이 드러났고 14일에는 여주의 지역농협에서 직원이 회삿돈 8억 원가량을 횡령한 것으로 전해졌다.
 
서민은 상상도 못 할 금액바늘 도둑이 소도둑 되는 모양새
 
강민국 국민의힘 의원이 금융감독원에서 받은 국내 금융업권 임직원 횡령 사건 내역에 따르면 2017년부터 올해 9월까지 금융업에서만 횡령을 저지른 임직원 수는 206명으로 이들이 횡령한 금액만 18504260만 원에 이른다. 
 
하지만 이 금액마저도 경남은행 사건의 전체 횡령 금액이 반영되지 않는 등 보수적인 지표에 불과하다. 실질적인 횡령 금액은 이보다 클 것으로 추정된다.
 
강 의원은 최근 수백억 원대의 횡령사고로 금융당국의 관리 감독이 강화됐음에도 추가로 4건의 횡령사고가 연이어 나왔다는 것은 금감원의 대책들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업계에서는 내부통제 강화방안도 절실하다는 목소리가 더해지고 있다.
 
문제는 횡령한 금액 가운데 2584260(14.0%)만 환수됐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철저한 범죄수익 환수가 필요하다는 요구가 커지고 있다.
 
 
▲ 횡령은 빈번히 일어나고 있는데 처벌 수위는 여전히 낮기만 하다. 전문가들은 처벌 수위를 높여야 범죄를 억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게티이미지뱅크
 
처벌 수위가 낮은 것도 문제다. 형법 제355(횡령·배임)에 따르면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가 그 재물을 횡령하거나 그 반환을 거부한 때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그나마 형법 356(업무상의 횡령과 배임)에서 업무상의 임무에 위배해 횡령·배임한 자에 대해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고액을 횡령하고도 비교적 낮은 징역형을 받은 사례는 최근에도 있다. 13일 부산지법 형사5부는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징역 7년을 선고했다고 밝혔다.
 
부산의 한 밀가루 가공업체에서 2007년부터 2021년까지 경리로 일하던 A씨는 이 기간동안 213차례에 걸쳐 333257만 원을 횡령한 혐의를 받고 있다.
 
B씨는 빼돌린 돈을 해외여행부터 백화점 고가 쇼핑·결혼자금 마련·부모 집 구입·조카 병원비 등에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B씨는 매년 프랑스··멕시코·필리핀 등으로 여행을 갔으며 코인·부동산 투자 등에도 횡령한 자금을 사용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부동산 투자로 이익을 얻고도 회사에 반환하지 못한 돈이 20억 원이 넘는다피해 회사로부터 용서받지 못한 점과 범죄 전력이 없는 초범인 점 등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시민들은 이런 판결을 보고 기가 찬다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 해당 언론보도 댓글에는 “30억 원 해먹고도 징역 7년이면 해 먹을 수 있을 때 해 먹으라는 판결 아니냐며 비아냥거리는 댓글들이 눈에 띄었다.
 
서울의 한 업체에서 출퇴근하는 직장인 C씨도 “33억 원 횡령하고 징역 7년이면 연봉 5억 원 가까이 되는 것 같다결혼 자금으로 쓰고 부모님 집 마련했으면 이미 할 건 다 한 것 아니냐고 불만을 터뜨렸다.
 
세계법제정보센터에 따르면 미국은 일반적으로 공금이나 재산 횡령에 대해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25만 달러(3억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연방의 규제를 받은 은행의 임직원이 횡령을 할 경우에는 3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만 달러(13억 원) 이하의 벌금을 내린다.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대표는 대부분의 횡령이 오랜 기간 걸쳐 금액이 점점 커지는 방식으로 이뤄졌다는 것이 문제라며 말하자면 바늘도둑이 소도둑으로 바뀌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일벌백계하고 금융권에서 이뤄지는 횡령은 가중처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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