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지도 석유화학 제품이니 곧 품절된다? 제1차 오일 쇼크가 벌어졌던 1973년. 오사카에서 시작한 화장지 사재기가 일본 전역으로 퍼졌다. 신문이 사재기 현상을 보도할 때마다 불안 심리는 커졌다. 일본 정부가 “재고가 충분하니 안심하라”고 발표했지만 공용 화장실에서 화장지를 훔치는 현상까지 나타났다.
손실 회피 심리가 한국에선 쓰레기 봉투에 반영됐다. 이란에서 벌어진 중동전쟁으로 원료가 부족해지자 3월 하순부터 종량제 봉투 사재기 현상이 나타났다. 일본처럼 한국에서도 정부는 “재고가 충분하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서울시 양천구에서 남이 버린 쓰레기에서 종량제 봉투를 훔치는 촌극까지 생겼다. 쓰레기는 꼭 종량제 봉투에 버려야 한다는 시민 정신이 남의 집 주차장에서 종량제 봉투를 훔치도록 만들었다.
이재명 대통령은 3월 31일 헛소문을 퍼트린 사람을 수사하라고 지시했다. 쓰레기 봉투 가격이 오를 거란 유언비어는 사회 질서를 어지럽히는 중대범죄란 취지다. 이 대통령은 봉투 가격이 오르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쓰레기 분리배출은 돈을 벌기 위한 목적이 아니므로 봉투 제작이 어려우면 그냥 배출하면 된다는 해설은 행정의 달인다운 명쾌한 해법이다.
그러나 사태의 본질은 유언비어가 아니다. 맥락이 빠진 정보와 어설픈 소통이 문제였다. 공무원은 쓰레기 봉투가 넉넉하다고 판단할 때 쓰레기 분리 배출에 철저했던 가정주부들은 쓰레기를 버리지 못하는 지옥을 상상했다. 편의점과 대형마트에 가면 종량제 봉투는 보이지 않고 1인당 1장씩만 살 수 있다는 경고만 보였다. 정부와 지자체 말이 귀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쓰레기를 버릴 자유가 사라질 수 있다는 공포는 끔찍했다.
내가 아는 걸 남도 알 거라는 생각이 착각일 때가 있다. 자기중심적 편향(egocentric bias)이다. 많은 정보를 가진 전문가가 관련 지식이 부족한 대중에게 정보를 전달할 때 꼭 필요한 개념이나 기초 정보에 대한 설명을 빠트리기 마련이다. 미국 스탠포드대 칩 히스 교수는 2007년 발간된 책 스틱에서 지식의 저주(curse of knowledge)라고 설명했다. 석유 최고가격제로 휘발유 가격 급등을 막았던 정부가 쓰레기 봉투 부족으로 곤욕을 치르는 건 지식의 저주 때문이다.
주부들은 왜 쓰레기 봉투에 집착할까? “편의점이나 대형마트에 가면 딱 한 장씩만 파니까 불안하잖아!” 불안한 마음이 사재기의 원인이었다. 쓰레기 봉투는 지자체가 만들기 때문에 원료가격이 오르더라도 가격이 오르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랬더니 돌아오는 대답에 진짜 이유가 담겼다. “그럼 왜 아무도 우리한테 설명해주지 않는 거야?”
환자를 위한 의료제품도 부족하다.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은 7일 나프타를 의료제품 생산에 우선 공급하겠다고 발표했다. 병원별로 비축 물품이 쏠리지 않도록 공급망에도 개입하겠다고 선언했다. 유언비어를 탓하기에 앞서 기후에너지환경부도 국민 눈높이에서 생각하고 말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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