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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체 없는데… 발포명령·암매장 ‘44년 선동’
전두환 개입 정황 근거 없는데 실체 규명하겠다며 국민 현혹
암매장 의혹도 소문만 떠돌 뿐 “사실무근” 일방적 주장 결론
허겸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24-03-04 00:05:00
 
▲ 문재인정부에서 출범한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이하 ‘조사위’·위원장 송선태)가 이른바 ‘전두환 집단 발포 명령’과 ‘암매장’의 실체를 규명하는 데 실패했다. 연합뉴스
 
문재인정부에서 출범해 지난해 12월 조사 활동을 종료한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이하 ‘조사위’·위원장 송선태)가 이른바 전두환 집단 발포 명령암매장의 실체를 규명하는 데 실패했다. 
 
이로써 그동안 조사위가 핵심 직권조사 안건으로 삼았던 이들 사건은 역사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일방의 주장으로 결론 났다. 
 
이에 따라 4년간 거액의 국민 혈세를 들이고도 핵심 과제에 대해 규명하지 못한 정부 조사위가 소속 직원들의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날 선 비판마저 제기되고 있다. 가짜 유공자 논란이 끊이지 않는 5·18유공자 규모 부풀리기에 버금가는 도덕적 해이가 아니냐는 지적이다. 
 
조사위는 지난달 29일 홈페이지를 통해 규명 불능’ 과제 등 개별 조사 보고서를 공개하고 국민 의견을 수렴한 뒤 상반기 중으로 종합보고서를 낸다. 올해부터 추가 조사가 금지된 관계로 사실상 이번 보고서가 최종 보고서에 그대로 수록될 것으로 보인다. 
 
발포 명령과 암매장은 1980년 5월 항쟁 발발 이후 44년 동안 5·18의 가장 뜨거운 이슈였다. 
 
이 중 발포 명령은 전두환 당시 합동수사본부장(합수부장)이 신군부 집권 시나리오에 따라 광주·호남 시민을 총으로 쏴 죽이도록 계엄군에게 명령했다는 게 주장의 본질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군 조직의 특성을 무시한 일방적인 주장으로 전혀 이치에 맞지 않다는 반박 의견도 꾸준히 제기되었다. 
 
그동안 예비역 군·안보단체는 무장 폭도의 대(對)정부 선제공격에 따른 정당방위 차원의 자위권 행사 발포 명령으로 간주해선 안 되고 삼성장군(육군 중장)인 전두환 합수부장은 사성장군(육군참모총장)이자 사격 명령 권한을 지닌 이희성 계엄사령관을 대신할 위치에 있지 않다고 꾸준히 지적해 왔다.
 
5·18 당시 계엄사령관이었던 이희성 장군은 2016년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전두환 발포 명령에 관해 군의 작전지휘 계통을 정말 모르고 하는 소리라며 전두환 보안사령관은 5·18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밝힌 바 있다. 
 
이어서 전두환은 새카만 후배였고 내게 형님, 형님’ 하며 어려워했는데 나를 뛰어넘어 감히 월권해?라며 내 성격을 알고 이런 관계만 알아도 그런 소리가 안 나온다. 단호히 얘기하는데 광주에 관한 한 전두환 책임은 없다고 단언했다. 그러면서 발포 명령을 내린 지휘관이 없었다며 무장 선제공격에 자위권으로 대응 사격한 것임을 거듭 강조했다. 
 
오히려 전두환은 학살자라는 주장은 북한의 전단과 불온 선전물에서 먼저 나온 것으로 드러났다. <본지 2023년 10월25일자 단독: 5·18 진실 찾기⑳] 유언비어로 심리전… 광주 들쑤셨다’ 보도 참조> 정부 조사의 초점이 무고하고 선량한 광주시민을 현혹시킨 유언비어의 규명에 맞춰졌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당시 허위 사실에 기초한 유언비어는 광주 시민의 불안을 조성하고 공권력에 대한 적개심을 품게 만든 데 이어 폭도들에 휩쓸린 일부 광주 시민이 정부를 겨냥한 공격에 가담하도록 직접적인 단초를 제공한 것으로 파악됐다. 미 정보당국도 5·18을 전후해 광주 지역에 유포된 각종 유언비어가 민심을 호도하고 계엄군에 대한 적개심을 키웠다고 판단한 문건이 공개된 바 있다. 
 
악성 유언비어 활개 여파 오늘날까지... 여전한 전두환 책임론 
 
이번 정부 조사위 진상규명에서는 전두환 명령의 실체 없음이 다시 한번 확증된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선량한 광주시민을 속이고 군중의 대대적인 분노를 유발하기 위해 날조된 악성 유언비어가 활개 친 여파는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것으로 분석됐다. 
 
12.12의 본질을 왜곡했다는 날 선 비판을 받는 영화 서울의봄과 5·18 도청 앞 집단 발포에 대한 사실을 왜곡했다는 영화 화려한 휴가가 전두환을 악마화하는 데 주요 소재로 활용되면서 여전히 국민을 기만한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근거 없이 떠도는 유언비어 또는 양치기 소년의 거짓말 정도로 치부해 버려야 했지만 5·18 당시 파급력이 있었고 여전히 그 유언비어를 정설처럼 믿는 이들이 나오면서 역사적으로 존재하는 사실처럼 인식되는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12.12가 군사 반란이라는 해석에 대해서도 논쟁이 거듭되고 있지만 수사 기록에 따르면 군사 반란보다는 대통령 시해 공범의 연행 조사 과정에서 일어난 유혈 충돌의 성격에 가깝다고 5·18 연구가들은 보고 있다. 
 
검찰의 12.12 수사 기록에 따르면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육군 대장)은 박정희 대통령이 시해된 1979년 10월26일 피 묻은 옷을 걸친 채 나타난 김재규와 같은 차에 탄 뒤 그가 새 옷과 구두를 갈아신는 것을 보고도 직속상관인 노재현 국방부 장관에게 보고하지 않았다. 김계원 비서실장이 정승화·노재현이 함께 있는 자리에서 김재규가 범인임을 알린 밤 11시40분까지 무려 4시간 동안 침묵한 것이다. 
 
그는 또 차지철 경호실장만 할 수 있는 경호 인력의 시해 현장 출동을 전화로 중단시켰다. 상식적으로 차 실장이 죽은 사실을 인지하고 있어야 가능한 행동이었다. 대통령과 차지철이 죽고 김재규가 피범벅이 됐다면 직속상관과 내각 각료들에게 정황을 알리는 게 군인으로서 마땅한 본분이었다. 이에 따라 수사 책임자였던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훗날 합수부장)은 상급자이자 육군 참모총장인 정승화를 반드시 조사할 의무가 있었다. 
 
또한 최규하 대통령과 전두환 합수부장 사이에 정권 이양을 전후한 시기 친밀한 교류가 있었다는 사실도 다양한 정부 문건에서 확인됐다. 최근에는 민정기 전 비서관이 직접 증언하기도 했다. 이는 전두환 합수부장이 대통령이 되기 위해 신군부 집권 시나리오에 따라 최 대통령을 밀어냈다는 일각의 주장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낭설인지를 대변해 준다. 
 
최 대통령의 비서진으로 일하다 전두환 대통령 시절 청와대 공보비서관을 지내 양측의 연락책 역할을 한 민 전 비서관은 올해 1월 자유기업원에서 열린 강연에서 영화 서울의봄의 소재가 된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10.26 사건)에 관해 (전 장군이) 대통령 시해 이후의 혼미한 상황을 바로잡기 위해 목숨을 담보하고 취한 결단이 12.12라며 수사관 몇 명을 보내 (상관인) 계엄사령관(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연행해 오는 일이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어 전날 가족을 모아 놓고 유언을 남겼던 일화가 있다고 증언했다. 
 
전두환 합수부장이 검찰과 경찰·보안사·중앙정보부를 총괄하는 기관의 수사 최고 책임자로서 대통령 시해 이후 2달 가까이 수사한 결과 가담 정황이 뚜렷한 용의자를 체포한 것이지 하극상도 집권 시나리오도 팩트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당시 항쟁 지도부는 5·18 하루 전날인 1980년 5월17일 비상계엄령의 전국 확대를 신군부의 집권 시나리오로 간주하고 대정부 공격의 구실로 삼았다. 이는 12.12와 5·18을 억지로 연결 짓는 또 다른 문제를 낳는다. 당시 대통령이 암살당해 계엄령을 유지한 정부는 군인 등을 상대로 한 김대중의 정부 명령 불복종 촉구를 시한부 선전포고이자 명백한 반란행위로 여겨 그를 체포한 것이이어서 계엄령 전국 확대와 12.12의 직접적 관련성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민주화 세력은 그것을 신군부 집권 시나리오로 간주함으로써 양측 간 부조화가 발생했다. 
 
이와 관련해 5·18 연구가들은 전두환 합수부장을 발포 명령자로 만들어 김대중의 내란 음모와 북한군 개입의 비밀을 감춰 5·18의 아성을 지키려고 했던 꼼수가 이어져 온 것이라고 강력하게 비판을 제기해 왔다. 
 
앞서 1995년 검찰 및 군·검찰 공동 조사 보고서 15쪽에는 전두환 보안사령관의 중앙정보부장서리 겸직은 최규하 대통령이 10.26사건 이후 사실상 와해 상태에 있던 중앙정보부의 기능 정상화를 위해 전두환 보안사령관을 적임자로 판단, 인사 발령한 데 따른 것이라고 적시돼 있다. 
 
北개입 확인 땐 명분 잃어… 피해자 주장 중심 조사 한계 노정 
 
5·18 유공자인 송선태 위원장이 이끄는 정부 조사위가 이번 자료 공개에서 전두환의 집단 발포 명령이 없었다고 밝히지 않은 것은 조사위의 구조적 한계를 노정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송 위원장(장관급)을 비롯해 조사 방향의 열쇠를 쥔 키맨들의 상당수가 전남대 운동권 출신인 조직 분위기와도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최소 6명의 유공자가 조사위 활동에 깊이 관여한 것도 문제다. 이들이 조사보고서 작성에 참여하는 것은 공정성을 저해하는 제척 대상 행위로 법률상 금지된다. 제척이란 죄를 지은 아들의 사건을 판사인 아버지가 재판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조사의 공정성을 해칠 우려가 있어 원천적으로 배제하는 법리적 원칙이다. 
 
5·18 유공자를 조사위에서 배제해야 하는 것은 조사 과정에서 유공자로서의 지위를 잃을 만한 증거나 사안을 고의로 축소·은폐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서다. 하지만 문재인정부는 유공자의 조사위 참여 금지 원칙을 어겼을 뿐 아니라 장관급 조사위원장에 유공자인 송선태 씨를 임명함으로써 일찌감치 공정성 논란을 야기했다. 
 
5·18조사위는 집단 발포 명령 외에도 북한군 개입 등의 첨예한 이슈들을 조사하기로 돼 있었다. 결과에 따라선 무장 폭도의 대정부 선제공격이 규명될 경우 순수 비폭력 민주화운동의 명분을 잃고 사안의 성격이 뒤집힐 가능성이 처음부터 상존했다. 
  
송씨는 본지 단독 취재 결과 유공자이면서 자유노트’ 작성자인 사실이 확인됐다. 자유노트는 무기를 동원해 전남도청을 접수한 뒤 다이너마이트(TNT)를 설치한다는 끔찍한 내용이 적시된 기록이다. 본지가 입수한 문건은 경찰이 압수해 법원에 증거자료로 제출한 동일본이다. 그러나 당시 최규하에서 전두환으로 정권이 이양되는 과정에서 정부는 광주의 아픔을 묻고 가겠다며 이 사안을 더는 들추지 않았다. 
 
무기를 동원해 정부를 공격하고 관공서를 점령한다는 계획서를 작성한 무장봉기 주동자였던 송 위원장은 조사위 활동 기간 내내 편향된 조사 행태로 비판의 중심에 섰다. 지난해 10월13일 국회 5·18조사위 국정감사에서는 전두환의 주도성·중심성에 대한 증언을 확보했다고 발언했다가 상임위원회 위원장으로부터 제지를 받고 사과하기도 했다. 
 
당시 송 위원장은 광주에 진압군으로 투입됐던 군부대가 전부 하나회 출신인데 하나회 출신들과의 별도의 지휘·지시·보고 체계를 확보하고 있었다는 증언을 확보했다고 추정 답변했다. 이에 한기호 국회 국방위원장이 즉시 추정 발언에 대해 제재하자 송 위원장은 (국회) 위원장 의견에 동의한다고 정정했다. 조사 결과에 따라 민주화운동에서 외부 세력이 개입한 폭동으로 성격이 뒤바뀔 수도 있는 중차대한 국가적 사안에 대해 개인의 선입견을 앞세운 것이다. 
 
송 위원장의 시각이 이번 개별 조사 보고서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한다. 
 
▲ 시위대가 남한의 도시(광주)를 접수했다는 뉴욕타임스 1980년 5월22일자 헤드라인 아래로 ‘군으로부터 무기를 탈취한 폭도들이 미쳐 날뛰고 권력자는 위협(습격)받고 있다(Rioters rampage with arms seized from Military - strongman is assailed)’는 부제목이 달려 있다.
  
증거도 없이 “북한군 개입 없다” 결론… 날림조사 논란 
 
거액 혈세 들이고도 진실 규명 못해… ‘돈벌이 조사위’ 비난 
민의 수렴 뒤 상반기 종합보고서… 추가 조사 더 이상 못 해 
“왜곡된 안보 역사 바로잡자”… 우파 중심 전면 조사론 부상 
 
향후 100년간 규명만?… 또 다른 국고 낭비 예고 
 
조사위는 증거를 찾지 못한 결과에 대해 전두환 발포 명령증거가 없다” 실체가 없다” 역사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주장으로 규명됐다고 국민에게 알리는 대신 규명 불능이라는 애매한 단어로 에둘러 표현했다. 
 
증거가 없는 사안에 대해 없다고 결론내림으로써 국력 낭비를 방지하고 불필요한 남·남 갈등의 씨앗을 제거하려는 노력이 현저하게 미흡하다고 5·18 연구가들은 받아들인다. 
 
이는 조사위가 최종 보고서를 낸 이후에도 이 안건을 규명하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동시에 국민의 혈세를 들이는 또 다른 정부 주도 조사위원회의 출범을 예고하는 일종의 마중물 성격의 포석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규명하지 못했기 때문에 언젠가는 규명하겠다는 암시라는 것이다. 
 
조사위는 이번 홈페이지 공개 보고서에서 다양한 규명 과제를 직접적으로 언급했다. 
 
이 중 2021년 법률 개정에 따라 새로운 법정 조사 과제에 포함된 ·경 피해’ 항목에서는 조속한 시일 내 추가적인 조사를 재개해야 한다고 했다. 이는 계엄군 출신 군·경의 트라우마가 현존하는 상황에서 계엄군 출신 인사들이 가장 원하는 내용이다. 조사위가 이를 언급하며 추가 조사의 필요성을 제안한 것이다. 
 
또한 개별보고서는 북한군이라고 용어를 한정함으로써 고정간첩 또는 불순 세력의 개입은 북한군 침투’ 범주에서 제외됐다는 지적도 있었다. 
 
조사위는 5·18민주화운동 당시 북한 특수군이 광주 일원에 침투했다는 일부 탈북인의 주장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됐다며 새로운 사실 규명을 조사 성과로 밝혔고 지만원 (박사) 등 사회 일각에서 제기하는 5·18민주화운동 당시 북한특수군 광주 일원 침투 주장은 사실이 아님을 규명, 이와 관련된 논란 및 갈등 해소라고 적시했다. 
 
北개입 폭동이냐, 민주화 운동이냐… 부실 조사 책임론 비등 
 
본지 취재에서 조사위는 4년간 거액의 정부 예산을 쓰고도 북한군 개입 여부를 명백히 가려내기는커녕 고의로 외면 또는 축소·방치해 온 단서들이 포착됐다. 
 
북한군 개입설은 확인 여부에 따라 5·18의 성격을 근본적으로 바뀌게 한다. 우리 군복을 입고 계엄군 행세를 한 북한 무장 공비와 고정간첩이 무고한 광주시민들을 총으로 쏜 뒤 계엄군의 잘못으로 덮어씌운 모략 전술이 드러나면 정부 폭력에 항거한 순수한 민주화운동으로서의 명분을 잃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기존 5·18 유공자는 대대적으로 물갈이가 불가피하다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1980년 5·18 때 생포된 남파 간첩 이창룡(李昌龍·본명 홍종수·당시 46세)에 대한 조사위의 진상규명도 불충분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번 개별 보고서는 “1980년 5월24일 간첩 이창용을 ‘광주 시위 선동 임무를 띠고 남파된 간첩’으로 검거했다고 발표했던 사건은 5·18과 관련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주장했다. 조사위의 이 같은 결론은 일찌감치 예견된 것이었다. 조사위가 지난해 6월30일 발표한 6차 보고서 244쪽에 담긴 내용을 그대로 옮긴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기밀 해제된 ‘외교 전문(80SEOUL 006865)’에 따르면 1980년 당시 윌리엄 글라이스틴 주한 미국대사는 “(이씨 생포 등) 이 모든 일의 배후에 ‘불순 세력’과 공산주의 선동가들이 있다(‘impure elements’ and communist instigators lay behind the whole affair)”고 워싱턴에 보고했다. 5·18 연구가들은 이창룡뿐만 아니라 비슷한 시기에 남파됐지만 잡히지 않은 간첩들이 더 많을 가능성에 대한 면밀한 검증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앞서 미국의 외교 전문도 ‘외부 침입자들(infiltrators·남파간첩들)’과 ‘공산주의 선동가들(communist instigators·고정간첩들 또는 혁명역량)’이라고 무장봉기의 배후를 복수로 못 박아 명시하고 있어서다. 이는 북한 인민군이 아닌 민간 공작조가 광주에 침투했다는 마이클 이(Yi) 전 미 중앙정보국(CIA) 요원의 본지 인터뷰 발언과도 일치한다. 
 
본지는 이전 정권 조사위 보고서들이 반쪽짜리에 불과하며 팩트와 정황을 충실하게 파악하지 않았음을 엿보게 하는 증언을 단독으로 입수했다. 
 
당시 취재를 종합하면 이창룡은 해상으로 침투한 뒤 뭍으로 나와 경기도 양주에 다녀온 것으로 전해진다. 양주는 그의 고향이다. 안기부는 이창룡을 조사하다가 그의 원적지가 양주인 사실을 파악한 뒤 형제와 친지가 생존해 있다고 그에게 알렸다. 
 
이창룡은 믿지 않았다고 한다. 6·25 당시 양주와 동두천·포천은 격전지여서 형제와 친지들이 모두 죽은 것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동생과 조카들을 만난 이창룡은 전향의 길을 택했고 안보 강사로 활동하며 5·18 당시 광주 임무에 대해 군부대를 중심으로 강연하다가 수년 전에 사망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생전 남한에서 결혼하고 가정을 꾸렸다. 
 
어득용(67) 5·18특전사명예회복위원회 회장은 본지 인터뷰에서 “58년 개띠인 후배는 죽은 줄 알았던 큰아버지가 북에서 내려와 만났다”며 A씨가 이창룡과의 만남에 대해 어 회장에게 직접 이야기한 사실을 전했다. 그러면서 “고향이 그리워 찾아왔다가 신분을 드러낼 수 없으니 형제들과 친지들이 살아 있는지 제대로 확인하지 못해 전쟁 난리 통에 모두 죽은 것으로 생각하고 자기 임무를 수행하다 검거된 것이란 이야기를 들었다”며 “나중에 붙잡힌 뒤 전향할 수 있었던 것도 안기부 요원들이 직접 그와 형제·친지들을 만나게 해 주면서 가능했다”고 비하인드 스토리를 전했다. 조사위는 이런 보도에 대해서도 제대로 조사하지 않은 채로 광주와 관련이 없다고 결론 내렸다. 
 
또한 도청 앞 집단 사격(포 사격이 아니므로 집단 발포라는 용어는 잘못) 의혹 등 그동안 사태 유발의 결정적 원인으로 꼽혀 온 계엄군의 만행이 북한군 소행으로 책임이 전환되면 44년간 거듭돼 온 남·남 갈등과 반목이 해결의 실마리를 찾고 실추된 군의 위상이 회복되는 전기를 맞이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국가적 실익이 크다. 당시 계엄군과 시민이 진심으로 손을 맞잡고 화해할 해빙무드가 비로소 조성될 수 있어서다. 
 
호남과 선량한 광주시민에 대해 그간 사회에 만연해 온 차별적 풍토가 일순간 개선될 가능성도 크다는 점에서 매우 중차대한 정부 조사 과제로 꼽힌다. 계엄군으로부터 피해를 당한 광주시민에서, 북한의 계략과 교묘한 선전·선동에 휘말려 차별 피해를 당해 온 호남 도민 전체로 피해 회복의 객체가 확대된다는 관점에선 시민 사회적 실익도 기대할 수 있다. 
 
따라서 5·18이 순수 민주화운동인지, 북한군 또는 북한 인민군 소속이 아닌 민간 공작조가 개입한 폭동·반란인지 성격을 재정립할 중요한 책무를 조사위가 고의로 외면해선 안 된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5·18이 특정 정당이나 이익집단의 정파·정략적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상징으로 전락한 결과 역설적으로 다수의 호남 도민을 현실적 피해자로 양산한다는 근거에서다. 
 
조사위는 지난해 9월 기준 북한군 개입 안건을 전원위원회의에 회부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조사량을 보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의 제기 기간 90일을 고려하면 조사위의 본격 활동이 9월에 대부분 일단락되는 것을 감안할 때 남은 3개월간 조사가 불가능한 과제여서 일찌감치 “북 개입 없다”는 결론이 날 것으로 예상됐다. 
 
활동 종료 시한을 6개월 앞둔 작년 6월 보고서에서도 북한 특수군 침투 및 개입설 등의 왜곡과 조작이 1980년 5·18 등 당시 전두환(합수부장)의 발언에서 시작돼 군과 정보기관에 의해 계획적·조직적·지속적으로 진행됐음을 확인해 가고 있다”고 에둘러 표현한 것이 단적인 예다. 만 4년 가까이 조사한 내역이 스카이데일리가 주도해 지난해 7월 발족한 민간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민진사·위원장 정성홍)의 조사량보다 현저하게 부족한 것은 의도성이 다분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잇따랐다. 
 
이 밖에도 북한 개입설에 관한 조사위의 부당한 처신은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였다. 
 
무장 괴한이 북한군이라고 직감하고 다양한 첩보를 상부에 보고했던 5·18 당시 광주 보병학교 교관 홍순영 예비역 소령은 전북 고창에서 조사위 관계자들을 만났다가 낭패를 본 경험담을 토로했다. 홍 예비역 소령은 지난해 본지와 만나 북한군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 하니 갑자기 조사를 중단하고 자리를 떴다”며 북한군에 관한 내용은 아예 들으려고 하지 않는 어처구니없는 행태에 말문이 막힐 정도였다”고 밝혔다. 
 
5·18 당시 남파됐던 한 탈북 군인의 5·18 체험담을 기록한 실화 소설 보랏빛 호수’의 저자인 탈북 작가 이주성 씨를 무례하게 대하며 폭언한 사실이 담긴 녹취가 공개되면서 확인된 바 있다. 
 
또한 체코주재조선무역 대표를 지냈고 민진사의 고문을 맡고 있는 김태산 남북함께국민연합 상임대표의 조사위 조사 과정에선 김 고문과 함께 사진을 식별하던 조사위 관계자가 그때는 (계엄군이) 머리가 길었다”며 사진 속 인물을 계엄군이라고 강변하려 한 정황도 포착됐다. 
 
김 고문은 대한민국에 5·18 유공자는 없다’는 주제의 세미나 토론에서 5·18에 북한이 개입한 것은 명백한 사실이고 한국의 좌파들이 더 잘 알면서도 자기들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철저히 숨길 뿐”이라고 역설한 바 있다. 
 
▲ 윌리엄 글라이스틴 주한미국대사는 생포 간첩 사건 배후에 외부 침입자들과 공산주의 선동가들이 있다고 워싱턴에 보고했다.
  
우파 중심 전면 조사 필요… 왜곡된 안보 역사 바로잡아야 
 
조사위는 또 전남 일원의 무기고 습격 사건에 대해서도 진상규명 불능으로 결정했다. 이는 유공자 명단 공개와 직결돼 관심을 모았지만 끝내 명확한 공개 결정 없이 또다시 진실이 베일에 가려지는 결과가 나왔다. 
 
국가의 혜택이 주어지는 유공자 중 무기 탈취 유경험자가 극소수라는 것은 오히려 외부 세력이 개입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실어 줬고, 과연 선량한 광주시민이 전남 44개 무기고를 직접 습격했겠냐는 의구심이 끊임없이 제기돼 온 대목이었다. 
 
대한민국 안보 역사를 재조명하고 북한과 연계된 주사파가 전복시킨 왜곡된 국군사(史)를 바로잡기 위해 지난해 11월 창립된 (사)국군명예회복운동본부(이하 명본)의 장낙승 이사장은 전남 화순 예비군 무기고에서 총기류를 강탈한 폭도들이 개수작하지 말라우”라는 표현을 썼다는 증언을 확보했다. 무기고를 습격한 폭도 중에 북한 말씨를 쓰는 사람이 있었다는 목격담이 전해진 것은 처음이었다. 
 
이 밖에도 조사위는 공군 전투기 출격 대기 의혹 등은 객관적 물증조차 찾는 데 실패했지만 규명 불능으로 지정했다. 이는 문재인정부의 국방부 조사에서 광주를 겨냥한 전투기의 출격 대기 주장은 사실무근이라고 결론 낸 것과 극명하게 대조를 이룬다. 함선필 예비역 대령(공사 28기) 겸 명본 이사는 공군 전투기가 광주 폭격을 위해 무장한 채로 출격 대기했다는 주장은 허위라고 본지에 밝힌 바 있다. 
 
5·18 민주화운동에 참여한 군·경의 사망·상해도 일부 진상을 규명하는 데 그쳤다. 5·18 조사위는 계엄군에 한해 조사가 이뤄졌고 계엄군 중심 시각이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제시한 바 있다. 
 
육사 출신의 20사단 계엄군 장교를 지냈고 5·18을 연구해 온 최종원 민진사 위원은 방송국과 무기고·공공기관을 죽창을 동원해 접수하고 탈취한 무기로 도청을 점령한다는 내용이 담긴 자유노트’는 5·18이 비폭력 민주화운동’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음을 입증하는 위중한 문건으로 일각에서 받아들인다”며 “사실상 무장봉기를 사전 계획하고 획책하려 한 항쟁 계획서를 기록한 당사자이자 유공자에게 진상조사위원장의 직책을 맡겼다는 것 자체가 처음부터 균형감을 상실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1980년 정부가 북한군 개입에 대해 깊이 있게 파헤치지 않았다는 지적에 대해 5·18 당시 정호용 특전사령관의 전속부관을 지낸 최종대 예비역 육군 대령은 “신군부라는 표현 자체도 정확하지 않지만 군부의 시나리오라는 것은 전혀 근거가 없는 얘기”라고 짚은 뒤 “80년대에는 과거 일을 들춰 내 그쪽 사람들의 가슴을 아프게 하지 않겠다는 게 전반적인 분위기였다”며 북한군 개입의 진위를 떠나 개입 여부에 초점을 맞추지 말자고 독려하는 분위기가 군 고위층에 있었다고 전했다. 
 
익명을 요구한 5·18 연구가는 조사위는 심의·의결 권한이 9인 전원위원회에 있는데 이들 중 6인이 전남대에서 학위를 받았고 3인이 특정 연구소의 전직과 현직으로 특수 관계를 이뤄 담합의 여지가 있다면 애초 여야 합의로 위원을 추천해 독립된 위원회를 구성한 취지에 위배된다”며 국가적 차원에서 공정한 판단이 아니라 광주 지역 특정 세력의 이해관계를 대변할 뿐이라는 우려가 들지 않을 수 없다”며 피해자 주장 중심의 조사 일변도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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