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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호의 법으로 세상읽기] 심각한 재판 지연은 국민에 피해 가중
문재인정부 시절 고등부장 승진 폐지 후 재판 지연 심각
민사 1심 재판 평균 기간 9개월에서 14개월로 대폭 늘어
이동호 필진페이지 + 입력 2024-04-17 06:31:00
▲ 이동호 변호사
현직 변호사인 필자가 최근에 재판에서 겪은 일화 하나를 소개하고 싶다. 한 상가 건물주(원고)가 10년 넘게 계약한 임차인(피고)을 상대로 지난해 5월에 소송을 냈다. 장기간 월세가 밀렸기 때문에 임대차 계약을 해지하면서 건물 인도와 월세 지급을 구하는 소송이었다. 
 
필자는 원고인 건물주를 대리 중인데 원고·피고 모두 변호사가 선임돼 충분한 공방을 펼쳤다. 1월 말에 네 번째 재판이 열렸는데 필자는 이것으로 재판은 마무리되고 판결 선고일이 지정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런데 예상이 빗나갔다. 판사가 곧 있을 2월 정기인사 대상이라 자신은 판결문을 못 쓴다면서 두 달 후인 3월 중으로 재판일을 다시 잡아 버렸다. 판사가 인사 이동할 경우 흔히 있는 일이라서 그러려니 했다. 그리고 새로 부임하는 판사가 3월 중에 재판을 끝내 주려니 했다.
 
그러나 3월 재판 직전에 피고의 변호사가 바뀌었다. 새로 선임된 변호사는 아직 사건 파악이 안 됐으니 재판 날짜를 뒤로 변경해 달라는 신청을 냈다. 재판 결과에 자신이 없는 피고가 쓰는 전형적인 시간 끌기 수법이다. 그래서 필자는 충분한 공방을 했고 1월 말로부터 거의 두 달간 시간적 여유가 있었는데 그동안 아무 반박도 없다가 이제 와서 변호사를 바꾸고 시간을 더 달라는 것을 허용하면 이는 신속 재판 원칙에 위배되니 예정대로 재판을 열어 달라고 서둘러 의견서를 제출했다. 그런데 필자의 의견이 묵살당했고 재판은 끝내 한 달 뒤로 미뤄졌다.
 
재판장이 바뀐 후 3·4월에 열리는 재판에서는 재판장이 기존 재판 내용을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때 변호사나 당사자들에게 여러 가지 질문도 하기 때문에 보통 때보다 재판이 늘어지기도 한다. 판사가 바로 판결문을 쓰기에는 시간적 여유가 부족해서 굳이 재판일을 한 번 더 잡는 방법으로 시간을 버는 경우도 종종 있다. 하지만 변호사가 바뀌었다는 이유로 이미 두 달 전부터 예정된 재판을 안 열고 미뤄 버리는 일은 처음 겪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다음 재판에서는 결말을 보리라 사건을 예의주시했지만 재판 일주일 전까지 바뀐 변호사가 서면을 안 내고 있었다. 오히려 필자가 기존 주장을 다시 정리한 서면과 관련 증거를 추가로 제출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재판장이 이 사건은 조정으로 해결하는 것이 좋겠다면서 조정 절차에 회부해 버렸다. 그러나 지금까지 진행된 재판 내용상 원고는 조정할 의사가 없고 사건 내용상 조정할 여지도 없음이 확실했다. 
 
임대차가 10년 넘게 진행되면서 계약을 갱신할 때마다 월세가 조금씩 올랐지만 맨 처음 정한 월세를 넘는 돈은 현금으로 주고받았다. 게다가 소송 도중에 고령의 건물주가 사망하는 일까지 발생했다. 이런 약점이 있다 보니 임차인은 10년 전 월세가 아직도 진짜 월세이고 이 돈을 다 냈기 때문에 계약 해지 사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에서 보장하는 최소 임대차 기간도 이미 훌쩍 지났다. 그래서 설령 월세가 밀리지 않았더라도 이제는 임대차를 종료시킬 수 있는 권리가 건물주에게 있다. 그래서 임대차 종료 말고는 해결 방법이 없는데 대체 무슨 조정을 하겠다는 것인가?
 
그래서 즉시 조정거부 의견서를 내고 재판부에 전화해서 조정의사가 없음을 재판장께 전달해 달라고 했다. 그러나 다음 날 확인해 보니 재판장의 답변은 그런 얘기도 조정에서 하라고 했다는 것이었다. 결국 재판장의 확고한 의도는 이 사건을 무조건 뒤로 미루겠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 판결문 쓸 일정에 여유가 생기기 때문인 게 확실해 보였다.
 
필자로서는 조정 절차라도 빨리 끝나게 하는 수밖에 없게 됐다. 그래서 조정 의사가 없다는 내용의 서면을 또 조정재판부에 제출했다. 그럼 조정재판부는 굳이 조정을 열지 않고 사건을 다시 재판 절차로 넘겨 버리면 된다. 그런데 실무에서는 조정 안 하겠다고 해도 굳이 조정을 개시한 다음에 ‘불성립’으로 처리해 재판 절차로 넘기기도 한다. 조정 불성립으로 처리 후에 재판 절차로 넘어가 재판이 잡힐 때까지는 경험상 6개월 이상이 걸렸다. 그만큼 분쟁 해결이 지연될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해도 너무 한다 싶어 재판장이 대체 누군지 확인해 보았더니 사법연수원 25기다. 지금 서울중앙지방법원장이 26기이고 검찰총장이 27기이다. 엄청난 고참 판사가 지방법원 부장판사로 있으면서 재판을 미루는 것을 보며 여러 생각이 들었다.
 
김명수 전 대법원장이 취임한 2017년 이후 법원의 풍토가 정말 많이 바뀌었다. 대표적인 것이 고등법원 부장 승진제도 폐지다. 이 제도는 군인이 별을 다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지방법원 부장판사에서 차관급인 고등법원 부장판사로 승진해야 법원장이 될 수 있고 대법관도 될 수 있는 것이다. 소위 ‘전관예우’ 시장에서도 높은 대우를 받는다. 그래서 승진하고 싶은 판사들이 야근을 불사하며 열심히 재판을 했다. 
 
고등법원 승진에서 누락한 판사들은 적당한 시점에 퇴직하는 관행이 있었다. 이로써 법원의 고령화를 막고 인사도 원활해지는 순기능이 있었다. 그런데 김명수 대법원장이 법관을 관료화시킨다며 이를 폐지하면서 지방법원의 고참 부장판사로 정년퇴직하는 것이 당연한 풍토가 되어 버렸다. 이게 법관에게는 좋을지 몰라도 국민에겐 별로 좋은 일이 아니다. 승진에 관심 없으니 판사들도 소위 ‘워라벨’을 챙기면서 열심히 일할 이유가 적어졌기 때문이다. 그 효과는 즉시 나타났는데 민사 1심 재판 평균 기간이 9개월에서 14개월로 대폭 늘어나는 등 재판이 늘어지고 있다.
 
특히 고참 부장판사로서는 재판을 여유 있게 진행시키고 싶은 마음이 더 클 것이다. 필자가 소개한 사례가 그런 예일 것 같다. 하지만 재판 지연을 해결할 방법이 마땅치가 않다. 재판 좀 빨리 하고 사건 좀 많이 처리하라고 채근하면 즉시 판사의 독립성을 침해한다며 반발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고등부장 승진제를 부활시키거나 판사 정원을 늘리는 것이 제일 확실한 해결책이지만 이 역시 쉬운 일이 아니다.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의 반대가 확고하기도 하지만 다른 부처에서도 반발할 테니 말이다. 결국 재판 지연의 피해는 오롯이 국민의 몫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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