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사고 과실비율을 둘러싼 분쟁이 급증하는 가운데, 국민이 체감하는 사고 책임과 현행 인정기준 사이의 간극이 자동차보험에 대한 불신을 키우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보험연구원의 전용식 선임연구원이 6일 발간한 ‘자동차사고 과실비율에 대한 국민인식’에 따르면 재작년 자동차보험 과실비율 분쟁 건수는 15만6812건으로 2014년 3만206건보다 최근 10년 새 약 5배 늘었다. 같은 기간 대물배상 수리 건수 대비 분쟁 건수 비율도 1.0%에서 5.4%로 뛰었다. 개별 사고유형에서는 현행 기본과실과 국민 인식이 크게 엇갈리는 사례가 확인됐다.
대표적으로 후행차량이 선행차량을 들이받는 후미추돌사고의 괴리도 두드러졌다.
현행 기준은 후미추돌 사고를 기본적으로 후행차량의 전방주시 태만과 안전거리 미확보로 인해 발생한 것으로 보고, 선행차량은 무과실(0%), 후행차량은 100% 과실로 본다. 그러나 설문조사에서는 응답자들이 선행차량에도 평균 16.3%의 과실이 있다고 판단했다. 기본과실인 100대 0을 정확히 인식한 응답자 비중도 57.8%에 그쳤다.
본지가 최근 한 달 사이 후미추돌 사고를 당했거나 낸 운전자들의 반응을 들어본 결과도 비슷한 흐름을 보였다.
선행차량 운전자였던 인천 계양구 거주 40대 A씨는 “내가 앞차였기 때문에 당연히 상대방이 100% 과실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역시 선행차량 상태에서 사고를 당한 경기 남양주 거주 50대 B씨도 “뒤에서 들이받은 사고라 내 과실이 잡힐 거라고는 생각 못 했다”고 했다. 반면 후행차량 운전자였던 서울 중구 거주 30대 C씨는 “내가 뒤차이긴 했지만 앞차가 갑자기 브레이크를 밟은 상황이라 무조건 100% 과실인지 의문이 들었다”고 말했다.
현장 실무에서는 이런 인식 차이가 일정 부분 현실과 맞닿아 있다는 설명도 나왔다. 양희권 SAS손해사정 과장은 6일 “원칙적으로 후미추돌은 뒤 차량 100% 과실이 맞지만, 운행 중 앞차가 특별한 사유 없이 급정거하는 등 예외적인 상황에서는 과실이 달라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다만 일반적인 기준에서는 100대 0으로 보는 것이 맞다”고 덧붙였다.
신호기 있는 교차로에서 보행자신호에 우회전한 차량과 녹색신호 직진 차량이 충돌한 유형은 기준상 100대 0 사고지만, 응답자들은 평균적으로 상대 차량에도 22.7% 과실이 있다고 봤다. 육교나 지하도 부근 도로를 건너던 보행자를 차량이 충격한 유형도 기준은 차량 40%, 보행자 60%이지만, 응답자들은 오히려 차량 과실을 평균 67.7%로 더 높게 인식했다.
정확한 기본과실을 맞힌 비율 역시 전반적으로 낮았다. 사고도표별 정답률은 최저 4.6%에서 최고 57.8% 수준에 그쳤다. 특히 보행자 사고의 경우 정확한 기본과실인 40대 60을 맞힌 응답자는 4.6%에 불과했다. 국민이 흔히 접하는 사고유형조차 기준과 실제 인식 사이에 적지 않은 틈이 있다는 의미다.
사고경험자들의 체감 공정성도 낮았다. 최근 3년 내 사고를 겪은 응답자 가운데 34.9%는 과실비율이 공정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예상과 실제 과실 차이가 있을수록 불공정 인식이 높았고, 사고경험자 중 33.2%는 사고 조사 자체가 충분하지 않았다고 봤다. 16.3%는 과실비율에 대한 불만으로 민원이나 분쟁, 소송을 고려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보험연구원은 제도 자체의 구조적 한계도 함께 지적했다. 특히 과실이 낮은 쪽이 오히려 더 큰 수리비를 부담하는 이른바 ‘모순적 배상’ 구조에 대해서도 개선 요구가 높았다. 우리나라가 채택한 순수비교과실제도에서는 가해자 과실이 99%여도 피해자는 상대방 손해의 1%를 부담해야 한다. 이 때문에 저가차가 과실비율은 낮지만 고가차 수리비 일부를 배상해야 하는 사례가 생긴다.
현장에서도 이러한 구조에 대한 체감은 분명했다.
양 과장은 “과실이 적어도 상대 차량이 고가라면 수리비 부담이 더 커질 수 있다”며 “과실비율과 실제 손해액은 별개로 계산되기 때문에 단순히 과실이 낮다고 부담이 줄어드는 구조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보험연구원은 과실비율 인정기준에 대한 인지도를 높이는 한편, 도로교통 환경과 판례 변화를 반영해 사고도표 개정 절차를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아울러 고가차·저가차 간 모순적 배상 문제를 줄이기 위해 현행 표준약관 개선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봤다. 피해자 과실이 일정 수준을 넘으면 배상을 제한하는 수정비교과실제를 도입할 필요도 있다고 강조했다.
이번 조사는 전국 18세부터 69세까지 성인 남녀 3000명을 대상으로 올해 2월 진행했다. 차대차 7건, 차대인 2건, 차대자전거 1건 등 모두 10개 사고도표를 제시한 뒤 각 사고의 기본과실을 얼마나 정확히 알고 있는지 물었다.
그 결과 응답자의 절반가량이 10개 가운데 2개 사고도표의 기본과실만 정확히 알고 있는 수준에 그쳤다. 운전자와 비운전자, 사고 경험 유무를 막론하고 과실비율 기준에 대한 전반적 이해도가 높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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