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정근의 경제포커스] 정치 위기가 경제위기 초래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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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 상병 특검법’ 거부권 행사로 정국이 정면 충돌 양상
정쟁 격화로 정치 위기 오면 어김없이 경제위기 뒤따라

오정근 필진페이지 + 입력 2024-05-27 06:31:31

윤석열 대통령이 21일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본회의를 통과한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다. 7일 법안이 정부로 이송된 지 14일 만이다.

정진석 대통령비서실장은 “특검법은 여야가 수십 년간 지켜 온 삼권분립의 소중한 헌법 관행을 파괴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실장은 “삼권분립 원칙하에 수사와 소추는 행정부에 속하는 권한이자 기능”이라며 “그 중대한 예외인 특검 제도의 실행은 행정부 수반이 소속된 여당과 야당이 합의할 때만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어 “경찰과 공수처 수사가 계속 진행 중인데 공수처 수사를 못 믿겠다며 특검 도입을 주장하는 것은 자신이 만든 공수처의 존재 이유를 부정하는 자기모순이자 자기부정”이라고도 했다.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도 “대통령제 국가에서 거부권은 견제와 균형을 위해 헌법에 보장된 권리”라고 엄호했다. “여소야대 상황에서 야당의 일방적 독주와 입법 권한 남용으로 행정부 권한을 침해할 때 쓸 수 있는 최소한의 방어권이 재의요구권”이라고도 덧붙였다. 또 “우리와 같은 대통령제를 채택한 미국의 조 바이든 대통령도 거부권을 11번 행사하는 등 역사상 2595건 거부권이 행사됐다”며 “루즈벨트 대통령은 임기 중 635번 거부권을 행사했지만 탄핵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반면 장외 투쟁 등 전면전을 예고한 야당은 28일 21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를 열어 국회로 돌아온 특검법 재의결을 추진하겠다고 천명하면서 정국이 정면 충돌 양상으로 빠져들고 있다. 재의를 요구해서 재의결이 이루어질 경우에 이번 총선 과정에서 낙천·낙선한 국민의힘 현역 의원들이 58명에 달하는데 5월29일 21대 임기 종료를 하루 앞둔 5월28일 재의결 시 무기명 비밀투표이기 때문에 국민의힘에서 상당수가 이탈해서 법안이 가결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벌써 국민의힘에선 안철수 의원을 비롯해 정책위원회 의장을 지낸 유의동 의원과 김웅 의원도 찬성할 뜻을 나타냈다. 22대 전반기 국회의장으로 사실상 확정된 우원식 민주당 의원이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한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 대해 “민심에 불복한 것”이라고 비판하며 22대 국회에서 채 상병 특검법을 반드시 통과시키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여야 간 사생결단 모양새다. 고민정 민주당 의원은 “두 번 탄핵은 슬픈 일… 윤(尹)이 기름 부었다”는 등 드러내 놓고 탄핵을 언급하고 있다.

정쟁이 격화돼 정치·사회 불안이 가중되고 국정 공백 사태까지 가는 최악의 정치 위기가 오면 어김없이 경제위기가 뒤따른다. 1997년·2008년이 그 전형적인 예다. 1997년 1월 당시 김영삼 대통령의 차남 김현철의 한보그룹 개입 의혹과 국정 개입 사태가 터지면서 정국은 혼란에 빠졌다. 검찰 조사와 국회청문회에서도 김현철의 한보그룹 개입 의혹이 밝혀지지 않았지만 연말 대선을 앞둔 야당의 공세는 계속되었다. 집권 5년 차 김영삼 대통령의 국정 동력은 급격히 약화되었다. 한보·삼미·진로 등 대기업들이 줄줄이 부도나고 수출도 급락했다. 민주노총의 파업이 이어지면서 노동개혁은 불발되고 부실기업 구조조정도 하지 못해 기업 부실은 가속화되고 금융부실도 심화됐다. 마침내 외국 금융기관 대출금을 중심으로 외국자본이 급격히 유출되면서 1997년 말에 IMF 외환위기가 발생한 것이다.

2008년 2월 이명박정부가 들어서고 얼마 지나지 않은 4월18일, 정부는 한·미 쇠고기 수입 협상 타결을 전격 발표했다. 4월29일 MBC의 시사 보도 프로그램인 PD수첩은 ‘미국산 쇠고기, 과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 편을 방영했다. 주저앉은 광우병 의심 소를 도축하는 장면, 인간 광우병 여성의 죽음 등을 방영해 한국 사회는 충격에 빠졌다. 이를 계기로 연인원 100만 명이 참여하는 촛불집회가 3개월여 지속되었다. 그 후 법원은 방송 내용이 허위라는 점을 인정했지만 3개월여 지속된 촛불시위로 새 정부의 국정 동력은 급격히 약화되었다. 수출 등 경제가 악화되고 광우병 촛불시위로 국정 동력이 약화된 상태에서 글로벌 금융위기 발생하자 외국인 주식투자 자금과 은행 대출금을 중심으로 외국인 자본이 급격히 유출되어 마침내 한국은 외화유동성 위기에 직면했다. 2009년 성장률은 0.9%로 추락했다.

1997년과 2008년과 달리 최근에는 한국의 수출이 증가하면서 금년 1분기에는 전기 대비 1.3%의 이례적인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다. 이는 단연 반도체 수출 증가에 힘입은 것이다. 제조업 경기가 상승하고 있는 가운데서도 반도체를 제외한 업권의 경기는 여전히 낮은 수준을 지속하고 있다. 이에 따라 대기업의 생산지수 증감률은 상승하고 있는 가운데 중소기업의 생산지수 증가율은 마이너스에 머물러 있다. 이러한 현상이 최근 성장률 고공행진에도 민생의 체감경기가 부진한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배경이다. 이러한 가운데 사생결단의 정치 위기가 가속화되어 경제를 다시 위기로 내몰아 어려운 민생을 더욱 도탄에 빠지게 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