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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강서구 마곡역과 마곡나루역을 잇는 지하 공공보행로에 설치된 설치된 길이 5m짜리 무빙워크는 등장과 동시에 조롱과 비판을 동시에 불러왔다. 몇 걸음만 옮기면 끝나는 구간에 굳이 기계 장치를 설치한 이유를 납득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온라인에서는 ‘타는 게 더 번거롭다’는 말까지 나왔다. 그러나 이 논란을 웃고 넘길 수 없는 이유는 이 장면이 우연이나 실수가 아니라 지금 행정이 어떤 방식으로 판단하고 있는지를 그대로 드러내기 때문이다.
문제의 핵심은 무빙워크의 길이가 아니다. 왜 필요했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다는 점이다. 교통약자 배려라는 명분이 뒤늦게 제시됐지만 현장을 본 주민들 다수는 고개를 갸웃한다. 불과 몇 미터 구간에서 이동 보조 효과가 얼마나 체감될지 의문이기 때문이다. 노약자나 장애인을 진지하게 고려했다면 단차 제거, 경사로 개선, 보행 폭 확장 같은 기본적인 환경 개선이 먼저 떠올랐을 것이다. 하지만 행정의 선택은 가장 눈에 띄는 시설 설치였다.
이 선택은 낯설지 않다. 예산이 내려오면 ‘무언가를 해야 하는’ 구조 그리고 그 결과가 사진과 보고서로 남아야 하는 행정 문화가 반복돼 왔다. 눈에 보이는 시설은 설명하기 쉽고 성과로 포장하기도 좋다. 반면 보행 동선 정비나 구조 개선은 시간이 오래 걸리고 민원도 많다. 결국 가장 쉬운 선택이 가장 그럴듯한 명분을 입고 등장한다.
이 과정에서 빠지는 것이 바로 검증이다. 이용 대상은 누구인지 하루 평균 이용량은 어느 정도일지 설치 이후 불편이나 유지 관리 비용은 어떻게 감당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은 뒷전이다. 행정안전부와 지방자치단체 국정감사 자료를 보면 생활 SOC와 편의시설 가운데 이용률 저조로 사실상 방치되는 사례가 해마다 반복된다. 스마트 벤치, 스마트 쉼터, 각종 ‘시범 사업’ 시설 중 상당수가 하루 이용 건수 한 자릿수에 머문다는 지적도 있었다.
강서구 무빙워크는 바로 이런 흐름 위에 있다. 규모가 작다는 이유로 충분한 타당성 검토 없이 진행됐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수십억 원짜리 대형 사업에는 용역과 평가가 붙지만 이런 소규모 사업은 내부 판단으로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이 ‘작은 판단’들이 쌓이면서 전체 행정의 신뢰를 갉아먹는다는 점이다. 주민들은 하나하나 따지기보다는 ‘또 이런 것’이라는 인식을 갖게 된다.
행정은 종종 “법과 절차에 문제가 없다”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주민이 묻는 것은 적법성이 아니라 상식이다. 세금이 쓰인 결과가 생활을 조금이라도 낫게 만들었는지 아니면 그저 예산을 소진하기 위한 장치였는지에 대한 질문이다. 5m 무빙워크 앞에서 주민들이 느끼는 허탈감은 바로 여기서 나온다.
더 씁쓸한 건 이런 논란이 터진 뒤에야 행정이 설명에 나선다는 점이다. 사전 설명과 공감 과정이 생략된 행정은 언제나 사후 해명으로 이어진다. 그 해명은 대개 비슷하다. “취지는 좋았다” “약자를 배려한 정책이었다”. 그러나 취지는 결과를 대신하지 못한다. 결과가 설득되지 않으면 취지는 변명이 된다.
보행 환경 개선과 이동 약자 배려는 분명 중요하다.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상황에서 이동 약자에 대한 배려는 더 강화돼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신중해야 한다. 보여주기식 시설 하나보다 불편하지만 꼭 필요한 개선 하나가 훨씬 큰 변화를 만든다. 행정이 이 순서를 뒤집는 순간 정책은 주민 삶과 멀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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