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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마무리된 이재명 대통령의 업무보고를 두고 야당에서는 ‘잡도리 쇼’라는 다소 코믹한 표현을 쏟아냈다. 권력자가 공개석상에서 공직자들을 윽박지르고 모욕하는 장면을 연출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직장인의 눈으로 본 이번 업무보고는 현실에서 겪는 잡도리와는 거리가 멀었다.
중소기업에 다니는 직장인에게 물어보시라. 이유도 모른 채 상사로부터 쏟아지는 질책, 감정 섞인 고함과 폭언, 공개적인 망신이 일상인 곳이 적지 않다. 그에 비하면 생중계된 대통령의 질문과 지적은 차분했다. 이재명 대통령 수준의 질책이라면 중소기업 이직률이 지금보다 낮아질지도 모른다.
잡도리라는 말이 엄히 꾸짖는다는 뜻을 넘어 요즘에는 갑질과 괴롭힘까지 포괄하기에 이번 업무보고를 그 단어로 규정하는 데에는 무리가 있다. 오버다.
놀라운 대목은 대통령이 장관과 기관장에게 공개적으로 질문을 던지는 장면 자체가 낯설게 받아들여졌다는 것이다. 불편함을 느낀 공무원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이 권력 남용이나 예능화된 조롱 쇼였는지는 냉정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대통령의 질문 상당수는 사전 보고서와 현장의 괴리를 짚는 것이었고 “왜 이렇게 됐느냐”는 지극히 상식적인 질문이었다.
그 효과는 12일 국토교통부 업무보고에서 분명히 드러났다. 대통령이 철도 차량 계약 문제를 언급하며 “정부 기관이 사기당한 것 같다”고 지적하자 국토부는 26일 철도 차량 제작업체 다원시스를 사기 혐의로 수사 의뢰했다.
이 회사는 1조 원에 가까운 계약을 따내고도 납품을 지키지 못했다. 선급금을 계약과 무관한 용도로 사용한 정황까지 확인됐다. 하루아침에 일어난 일이 아니었다. 수년간 납품 지연과 관리 부실이 반복됐지만 공직 사회는 내부 보고와 감사로 문제를 덮어왔다. 공개 업무보고라는 압박 속에서 정부의 무능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이쯤 되면 잡도리 쇼라는 비판은 설득력을 잃는다. 공개적인 질문과 책임 추궁이 없었다면 국민은 이 사실을 몰랐을 가능성이 크다. 대통령이 그간 아무도 묻지 않았던 질문을 공개적으로 던졌기에 허점이 드러난 것이다. 세월아 네월아 잔잔한 호수 위 돛단배를 타던 공직자에게는 황당했을진 몰라도 날마다 생존의 살얼음판 위를 걷는 소시민에게는 꼭 필요한 장면이었다.
대조적으로 떠오르는 존재가 있다. 요즘 쿠팡은 노동과 유통 질서 문제로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그럼에도 부정하기 어려운 사실이 하나 있다. 쿠팡은 소액의 비용으로 소비자에게 분명한 편리함을 제공해왔다는 점이다. 밤에 주문하면 다음 날 새벽에 도착하는 서비스는 말뿐인 혁신이 아니라 체감 가능한 결과였다.
정부는 어떤가. 수천억, 수조 원의 예산을 쓰고도 철도 차량 하나 제때 받지 못한 채 책임 소재를 흐려왔다. 유능함의 기준이 결과라면 국민 눈에는 정부보다 쿠팡이 더 유능해 보이지 않을까.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이번 생중계 업무보고는 의미가 있었다. 비밀스러운 회의실에서 형식적인 보고를 주고받던 관행을 깨고 국민 앞에서 질문과 답변이 오갔기 때문이다. 다만 논란을 일으키는 말보다 공직자의 책임을 피할 수 없게 만드는 송곳 질문이 더 많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무능한 정부는 채찍질해야 한다. 국민이 보고, 듣고, 판단할 수 있을 때 공직자는 반성하고 행정은 성과로 이어진다. 잡도리 쇼라는 정체불명의 비난보다 중요한 건 무엇이 드러났고 무엇이 바뀌었는지다. 6개월 뒤 다시 열릴 업무보고에서 정부는 국민 앞에 어떤 모습으로 설 것인가. 정부는 국민 앞에 성과로 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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