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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프리드리히 헤겔은 “미네르바의 올빼미는 황혼이 질 무렵에야 날기 시작한다”고 했다. 이 말엔 역사의 진정한 의미는 사건이 모두 지나간 뒤에야 비로소 깨달을 수 있다는 깊은 통찰이 담겨 있다. 지금 우리 사회는 급격한 인공지능(AI) 혁명의 여명 앞에 서 있다. 이 여명의 시간에는 빛과 어둠이 공존한다. 챗GPT와 같은 생성형 AI가 펼쳐낼 새로운 세상에 대한 기대와 함께 그 뒤에 짙게 깔린 어둠, 즉 ‘AI 격차’의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시점이기도 하다.
인류의 역사엔 늘 기술 혁신과 사회적 불평등이 동전의 양면처럼 함께해 왔다. 18세기 영국을 휩쓴 산업혁명이 그랬다. 증기기관의 발명은 인류의 생산력을 비약적으로 끌어올렸지만 동시에 자본을 소유한 소수의 자본가와 기계에 종속된 다수의 노동자라는 새로운 계급을 만들었다. 오늘날의 AI 혁명 역시 다르지 않다. AI 기술을 얼마나 잘 이해하고 활용하느냐에 따라 개인의 경쟁력과 사회적 위치가 확연히 갈리는, 새로운 형태의 계급 사다리가 가시화되고 있다.
기존의 디지털 격차가 단순한 정보 접근성의 차이, 즉 스마트폰이나 PC를 다루는 능력의 문제였다면 AI 격차는 훨씬 더 심층적이고 근본적인 문제를 노출한다. 이제는 기술을 사용하는 기본 능력을 넘어 AI를 통해 얼마나 창의적이고 효율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느냐가 핵심 역량이 되었다.
소위 ‘디지털 네이티브’라 불리는 젊은 세대는 AI를 익숙한 친구인 듯 자연스럽게 대한다. 그들은 AI에게 보고서 초안 작성을 맡기고, 복잡한 데이터 분석을 몇 분 만에 끝낸다. 마치 그리스 신화 속 프로메테우스가 불을 훔쳐 인간에게 준 것처럼, 이들에게는 AI가 삶의 패턴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다주는 새로운 도구다. 이 도구를 이용해 그들은 시간을 절약하고 생산성을 극대화한다.
반면에 이 기술에 익숙지 않은 이들은 여전히 수작업에 매달려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 최근 미국의 한 조사에 따르면 Z세대의 절반 이상이 “상사가 AI의 진짜 가치를 모른다”고 답했다고 한다. 이들은 AI를 기존의 도구라는 개념에서 벗어나 자신들의 생산성을 극대화하는 ‘동료’로 인식하는 반면 기성세대는 여전히 AI를 ‘낯설거나 위협적인 존재’로 여기고 있다는 방증이 아닐까.
이러한 인식의 차이는 일반적인 세대 갈등의 차원을 넘어 직장과 사회 전반의 소통과 협업을 저해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이는 단순한 업무 효율의 차이에 그치지 않고, 미래 사회의 주도권을 누가 쥘 것인가 하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기술을 통해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 심화될 수도 있다는 토머스 홉스의 경고가 오늘날의 현실에 더욱 가깝게 다가오는 듯하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이러한 AI 격차가 경제적 불평등을 심화시킬 것이라는 점이다. AI 기술에 능통한 소수는 더욱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하며 막대한 부를 쌓을 것이고, 기술에서 소외된 다수는 저임금의 단순 반복 노동에 머물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이는 과거 산업혁명 시대에 빚어졌던 자본 계급과 노동 계급의 격차가 기술 발전이라는 이름 아래 또다시 재현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만약 이대로 방치한다면 대한민국 사회는 ‘AI 엘리트’와 ‘AI 문맹’으로 나뉘는 새로운 계급사회를 맞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 거대한 파도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해답은 ‘AI 리터러시’ 교육에 있다. 정부와 교육기관은 학교와 평생교육 시스템에 AI 기술 교육을 적극적으로 도입하여 모든 세대가 이 새로운 기술에 적응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기업 역시 직원들의 AI 역량 강화를 위한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특히, AI 시대에는 인간 고유의 역량, 즉 창의성과 공감 능력이 더욱 중요해진다. 단순 반복적인 작업은 AI에 맡기고 인간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고차원적 사고에 집중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모두의 인식 변화다. AI는 인간의 자리를 빼앗는 적이 아니라 인간의 잠재력을 확장하는 도구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기술 발전의 혜택이 특정 계층에만 국한되지 않고 모든 국민에게 고루 돌아갈 수 있도록 사회 전체가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모두에게 평등한 기회를 보장하는 것은 국가의 중요한 책무다. AI 격차라는 새로운 불평등의 그림자를 걷어 내고 기술이 인간을 위한 진정한 도구가 되도록 돕는 것, 이것이 바로 이미 우리가 발을 들여놓은 AI 시대가 던져 주는 당면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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