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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르포]-렛츠런파크 서울(옛 과천경마장)
말발굽 소리에 교차하는 희비, 대박 꿈꾸는 사람들
불법 도박으로 수십 억 탕진하기도… 트랙 안쪽 가족공원은 바깥쪽과 딴 세상
김도현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15-07-23 17:37:46
 ▲ 19일 찾은 렛츠런파크 서울(구 서울경마장)은 소나기가 내리는 날씨에도 많은 인파로 붐비는 모습이었다. 마사회는 경마가 가진 사행성의 이미지를 희석시키고 경마의 스포츠성을 강화한다는 취지로 지난해 3월 경마장의 명칭을 바꿨으나 여전히 이곳은 베팅을 목적으로 방문하는 이들이 다수였다. ⓒ스카이데일리

지난 19일 경기도 과천의 ‘렛츠런파크 서울’을 찾았다. 과천경마장 혹은 서울경마장이라 불렸던 이곳은 현재 ‘렛츠런파크 서울’로 명칭이 바뀐 상태다. 부산·경남경마장과 제주경마장도 ‘렛츠런파크+지역명’의 형식으로 이름이 변경됐다.
 
마사회 관계자는 “지난해 3월 제2창업을 선포하면서 이미지 개선을 위해 기존 경마장의 이름을 버리고 렛츠런파크로 교체했다”고 밝혔다. 경마에 꼬리표처럼 따라붙는 사행성 이미지를 희석하고 경마의 스포츠성을 강화하겠다는 마사회의 의도가 반영된 것이다.
 
한 손에는 정보지, 다른 손에는 사인펜
 
주말마다 지하철 4호선 경마공원역에서는 진풍경이 연출된다. 열차가 이 역에 정차할 때마다 승객 대부분이 우르르 쏟아져 나오기 때문이다. 이들은 개찰구를 나오자마자 약속이나 한 듯 경마정보지와 컴퓨터용 사인펜을 구매한다. 경마정보지를 사면 사인펜은 덤으로 끼워 주는 것이 보통이다.
 
이날 경마공원역 역사 내에서 경마정보지를 구입한 한 남성은 “경마정보지에서 유심히 체크하는 부분은 기수의 이력, 말의 건강상태, 추천 출주마 등 3가지다”며 “말을 직접 살펴본 뒤 배당률을 확인하고 최종적으로 베팅을 한다”고 말했다.
 
 ▲ 이곳을 방문한 이들의 손에는 경기 정보를 얻기 위한 경마정보지와 마권에 마킹하기 위한 컴퓨터용 사인펜이 있었다. 마감 종료가 임박했음을 알리는 안내방송에 모두들 분주히 움직이는 모습이었다. 사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마권, 지하철 경마공원역 내 경마정보지 판매처, 마권 자동발매기 앞을 가득 메운 인파의 모습 ⓒ스카이데일리

사인펜을 들어 보인 그는 “매번 경마장에 올 때마다 사게 되는데 나뿐만 아니라 대부분 사람들이 경마장을 나설 때 집으로 가져가지 않고 그냥 버려 일회용이나 마찬가지다”며 “경마장 덕을 가장 톡톡히 보는 기업은 아마 모나미일 것”이라고 여담을 덧붙였다.
 
렛츠런파크 서울의 입장권은 2000원이다. 과거에는 입장권을 사기 위한 사람들이 장사진을 쳤으나 입장시스템이 개편되면서 길게 늘어선 줄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게 됐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처럼 교통카드를 이용한 입장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교통카드를 입구에 있는 센서에 태그하면 곧바로 입장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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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장객을 맞고 있던 이곳 직원은 “아침에 비가 와서 방문객이 적을 것으로 예상했는데 오전 중에 비가 그치니 평소와 다름없다”며 “평상시에도 오후 늦게까지 끊임없이 방문객이 들어온다”고 말했다.
 
매 경주마다 환호보다는 욕설·고함이 가득
 
경마장 내부에 들어서니 구관람대인 ‘해피빌’과 신관람대인 ‘럭키빌’은 경마팬들로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해피빌 앞으로는 경기 출전을 앞둔 출주마들을 가까이서 볼 수 있는 예시장이 위치해 더욱 북적였다.
 
장내방송에서 ‘마감 5분전’이란 안내가 흘러나왔다. 실내외 곳곳에는 마권구매표가 비치돼 있었는데 상당수 사람들이 이 마권구매표를 들고 마권 발매창구와 마권 자동발매기 쪽으로 바쁘게 움직였다.
 
 ▲ 경주가 시작되자 트랙은 일순간 적막에 휩싸이기도 했다. 해피빌과 럭키빌에서 경기를 지켜보던 관중들은 이곳 가까이에 위치한 결승선으로 말들이 가까워질수록 저마다 응원하는 말을 격려하는 목소리를 높였다. ⓒ스카이데일리

날씨가 더워 실내 모니터를 통해 경기를 관람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으나 대부분 사람들은 경기를 직접 눈으로 보기 위해 밖으로 나가는 모습이었다. 관람대와 트랙 간 거리는 40m 남짓이었는데 경주 거리마다 출발선은 다르지만 결승선을 모두 동일했다.
 
출발을 알리는 총성이 울리면 아주 잠깐 동안 경마장은 조용해진다. 말 발굽소리가 가까워질수록 관람대는 웅성거리기 시작했고 경주마들이 마지막 코너를 돌아 결승선을 앞둔 직선주로에 다다르자 흥분의 도가니로 변했다.
 
경주가 끝남과 동시에 관람객들 사이에서는 고함과 욕설이 튀어나왔다. 경주 내내 손에 쥐고 있던 마권은 휴지조각처럼 구겨지거나 찢겨져 바닥에 내팽개쳐졌다. 간간히 환호를 내지르는 사람도 있었으나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다.
 
‘맞대기’에 빠져 35억원 날린 자산가
 
경마장 내에는 곳곳마다 금연표시가 부착돼 있었고 금연안내를 하는 직원들이 돌아다녔으나 버젓이 담배를 물고 있는 사람들이 많아 사실상 흡연자들은 통제되지 않는 실정이었다.
 
럭키빌 외부에 조성된 야외 흡연구역은 길이만 약 30m에 달했고 실시간 배당률을 알려주는 전광판과 경기실황을 볼 수 있는 모니터가 배치돼 있었지만 이곳을 이용하는 관람객들은 소수였다.
 
 
 ▲ 경마장 내 다수의 구역은 금연구역이다. 하지만 금연구역 지정은 사실상 유명무실한 상태다. 이따금씩 실내에서도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 목격됐기 때문이다. 야외의 경우 상황은 더욱 심각했다. 이곳이 금연구역을 알리는 직원의 목소리와 표지판에도 사람들은 아랑곳 않고 담배를 피웠다. ⓒ스카이데일리

흡연구역에서 만난 A씨는 기자에게 “경마로 일확천금을 꿈꾸는 것은 패가망신의 지름길”이라며 지인의 얘기를 들려줬다.
 
그는 “가끔 동창들을 따라 경마장에 다녔던 친구가 있었는데 용산 실내경마장이 생기면서 혼자서도 자주 다닌 모양이더라”며 “어느 날 고배당 경기를 맞춰 2000만원 정도를 땄는데 그때부터 경마에 완전히 중독돼 빚까지 지면서 가산을 탕진했는데 잃은 돈만 수 억원이다”고 전했다.
 
기자와 A씨의 대화를 옆에서 듣고 있던 B씨도 비슷한 일화를 꺼냈다. B씨에 따르면 수십 억원 대 자산가였던 그의 지인은 경마장을 자주 찾아 소소한 베팅을 즐겼으나 한 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졌다. 이른바 ‘맞대기’에 빠져버린 것이다. 맞대기란 마권을 사지 않고 2명 이상이 우승 마필을 놓고 서로 내기를 하거나 사설업체에 돈을 거는 행위로 합법적 마권이 베팅 상한액이 10만원인 반면 맞대기는 베팅 상한선이 없다.
 
B씨는 “여러 개 회사를 운영할 정도로 잘 나가가던 사람이 맞대기를 시작하더니 6개월 만에 35억원을 날리고 사업은 물론 가정까지 파탄났다”고 말했다.
 
 ▲ 트랙 안쪽에 위치한 가족공원은 날씨 탓에 평상시보다 한산하다고 전해졌다. 그래도 꾀 많은 가족, 친구, 연인들이 이곳에 방문했다. 이곳은 담배연기가 자욱하고 욕설이 난무한 트랙 바깥쪽과 확연이 다른 분위기였다. 이곳은 오는 30일 마사회 측의 테마파크 건립 방침에 따라 운영이 한시적 중단될 예정이다. ⓒ스카이데일리

트랙 안쪽과 바깥쪽은 별개의 세상
 
해피빌 옆의 지하통로를 따라 연결되는 경마트랙 안쪽에는 ‘가족공원’이 조성돼 있다. 이곳의 분위기는 매 경주마다 희비가 엇갈리고 긴장감이 넘쳐나는 관람대와는 달리 안락한 분위기였다.
 
마권 발매창구도 마련돼 있고 배당률과 경기장면을 중계하는 모니터들이 사방에 붙어있었으나 경주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은 드물었다. 경마장 내 공간이었음에도 가족·연인·친구들의 나들이 장소라는 느낌을 풍겼다.
 
지난해 대학에 입학한 과 동기라는 4명의 남녀와 얘기를 나눠봤다. 경마장 방문이 처음이라는 이들은 “관람대와 가족공원은 전혀 딴 세상이다”며 “이곳이 휴식처라면 바깥쪽은 담배냄새에 찌든 도박꾼들의 공간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고성과 욕지거리가 난무했던 관람대와는 달리 가족공원은 평화로웠다. 정자에서는 나이가 지긋한 노년층들이 수다를 떨었고 아이들은 자전거와 인라인스케이트를 타며 깔깔대고 있었다.
 
한편 한국마사회 측이 가족공원에 테마파크를 건립한다는 계획에 따라 이 공원은 오는 30일부터 내년 어린이날까지 한시적으로 운영이 중단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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