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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이 사람들]-한국에델바이스요델클럽

“알프스 감성 긍정시너지 반세기 동안 전파했죠”

1969년 창립 후 48년 동안 지속…요들송 통해 세대·경력 뛰어넘은 소통

이기욱기자(gwlee@skyedaily.com)

기사입력 2017-06-10 00:0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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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에델바이스요델클럽은 48년 역사를 자랑하는 한국 최초의 요들 단체다. ‘요들송 전도사’로 유명한 김홍철 선생을 비롯한 4명의 멤버로 시작된 모임은 그동안 스위스 합창단과 합동 공연을 진행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이어왔다. 사진은 한국에델바이스요델클럽 회원들의 모습 ⓒ스카이데일리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서울 YMCA별관에서는 매주 목요일 7시면 어김없이 요들송이 울려퍼진다. 요들클럽 ‘한국에델바이스요델클럽(이하·에델바이스클럽)’의 합창 소리다. ‘요들(yodel)’은 스위스의 알프스지방, 오스트리아의 티롤지방에 사는 주민들 사이에서 불리는 독특한 창법과 그 창법으로 부르는 노래를 일컫는다.
 
스위스를 비롯해 오스트리아, 독일, 미국까지 국가마다 그 종류가 다양한데, 에델바이스클럽은 요들의 본향이라 불리는 스위스 요들을 합창한다. 에델바이스클럽은 국내 최초의 요들 단체다. 지난 1969년 처음 만들어진 이후 지금까지 무려 48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 긴 역사를 지닌 만큼 30대부터 8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참여하고 있다.
 
산과 음악을 좋아하는 이들의 모임…“밝은 음악으로 밝은 마음 키우죠”
 
현재 클럽을 이끌고 있는 임상렬(65·남) 회장은 에델바이스클럽의 산증인이다. 창립 초기였던 1972년 클럽에 참여한 이후 지금까지 무려 45년간이나 활동했다.
 
“요들을 처음 접한 건 고등학교 2학년 때 텔레비전을 통해서였어요. 보자마자 요들에 호기심을 갖게 됐죠. 그러다 어느 날 학교에서 친구 한 명이 요들송 부르는 걸 보게 됐고, 그 친구의 소개로 20살 때 이 글럽에 들어오게 됐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친구 형이 클럽의 초기 멤버 중 한 명 이었어요”
 
개인적 호기심으로 시작한 클럽활동을 통해 그는 점차 요들송의 매력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요들송 특유의 밝은 분위기 때문에 부를 때마다 마음이 밝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산행을 하는 등 멤버들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해오는 과정에서 기존 멤버들의 자녀가 클럽에 참여하기도 했다.
 
“원래 요들이라는 것이 산악지방에서 부르는 노래잖아요. 창립 멤버 형님들이 클럽을 만든 것도 산에서 함께 노래를 부르다가 결성하게 됐다고 들었어요. 그 이후로 약 50년 가까이 많은 이들이 거쳐 갔고 연령도 다양해졌죠. 역사가 오래되다 보니 멤버들의 아들, 딸들이 참여하는 경우도 있어요”
 
에델바이스클럽의 최초 창단 멤버는 4명이었다. ‘요들송 전도사’로 불리는 김홍철 선생이 스위스 유학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후 3명의 친구들과 요들클럽을 만들었다. 1969년 창설 첫 해에만 클럽 멤버가 약 30여명까지 늘었다.
 
이후 클럽은 대학생 모임인 ‘알핀로제요델클럽’과 인천의 ‘엔지안요델클럽’ 창립에 기여했다. 1970년에는 한국 최초로 종로 YMCA에서 요델발표회를 가졌다. 이후 ▲스위스알펜민속음악예술단 ▲스위스벤티커예술단 ▲스위스종합예술단 등 스위스 본고장에서 활동하는 요들 합창단과 합동공연을 펼치기도 했다.
 
 ▲ 임상렬 한국에델바이스요델클럽 회장(사진)은 20살 때 처음 클럽에 참여한 후 올해로 45년째 활동 중이다. 고등학교 시절 텔레비전에서 처음 접한 요들에 호기심을 느낀 임 회장은 친구의 추천으로 클럽을 접하게 됐다고 한다. ⓒ스카이데일리

클럽 내에서 ‘왕언니’ ‘왕누나’로 불리는 김인숙(80·여) 씨는 클럽 초기멤버다. 원래 노래를 좋아했던 그는 산행을 하다가 초기 클럽 멤버를 만났고, 이를 계기로 요델클럽에 가입해 현재까지 활동하고 있다.
 
클럽에 참여하기 전까지만 해도 내성적인 성격이었던 김 씨는 클럽에서 활동하면서 성격 또한 점차 외향적으로 바뀌었다. 다양한 사람들과 화음을 맞추고 교류한 덕분이었다. 요들송 특유의 밝은 분위기 역시 도움이 됐다.
 
“제가 50년 가까이 활동을 하면서 클럽 임원을 단 한 번도 맡지 않을 만큼 나서는 것을 꺼려해요. 하지만 이런 내가 스위스 사람들과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도 하고 이제는 이런 인터뷰까지 나오게 된 것은 정말 큰 발전이죠. 건강이 허락하는 한 최대한 오래 클럽에서 합창을 하고 싶어요”
 
세대·경력 넘나드는 구성원 속에서 나누는 ‘소통’…“매일이 휴가 온 기분”
 
백미영(52·여) 씨는 김인숙 씨와 반대로 가장 최근에 클럽에 참여한 회원이다. 딸의 추천으로 클럽을 알게 된 후 지난해 10월부터 본격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여고시절 처음 요들을 접하게 됐어요. 그 때 진성, 가성을 넘나드는 요들 특유의 음악을 제대로 배워보고 싶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그 당시만 해도 요들을 배울 수 있는 곳이 많지 않았어요. 세월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잊혀졌어요. 그러던 어느 날 딸에게 요들을 배우고 싶다는 이야기를 한 적 있는데, 딸이 이 클럽을 소개해줬어요”
 
 ▲ 김인숙 씨는 초기 멤버 중 유일하게 현재까지 활동을 하고 있는 회원이다. 김인숙 씨는 요들을 통해 내성적인 성격을 조금씩 변화시켰다. 지난해 처음으로 들어온 이행선 씨는 클럽을 통해 주변 어른들에게 고민 상담을 하는 등 노래 이외의 효과들을 얻고 있다. 사진은 김인숙 씨(사진 왼쪽)와 이행선 씨 ⓒ스카이데일리

지난해 클럽에 가입한 이행선(34·남)씨 역시 새내기 회원이다. 그는 경력뿐 아니라 나이에서도 ‘막내급’에 속하는 회원이다.
 
“성당에서 성가대 활동을 할 정도로 평소 노래에 관심이 많았어요. 요들송이 가지는 ‘특이함’에 끌려 클럽에 오게 됐죠. 다른 음악과 접목 가능하고 창조적인 요들은 실제로 개인에게 하나의 특기, 무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요들이라는 노래 장르에 끌려 클럽에 참여하게 된 그는 클럽활동을 하면서 힐링받는 기분을 느낀다고 밝혔다. 직장, 사회 등에서 나누기 힘든 세대 간 ‘소통’이 가능하다는 것이 그 이유라고 소개했다. 
 
“사회가 너무 경쟁적이잖아요. 정말 지칠 때가 많은데 이런 고민들을 회사나 사회에서는 말할 수가 없어요. 하지만 이곳에 계신 형님들은 정말 편하게 제 이야기를 들어주시고 조언도 해주세요. 마치 친형처럼 받아주시죠. 지식을 찾는 것은 쉽지만 지혜를 얻는 것은 점점 어려워지는 지금의 현실에서 연습 올 때마다 힐링 받는 기분을 느껴요”
 
순수음악이 가져다주는 매력…“전통있는 단체로 100년, 200년 계속 이어갈 것”
 
에델바이스클럽의 지휘자는 윤현주(73·여) 씨다. 성가대에서 40여년간 지휘자로서 활동해온 그가 클럽과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지난 1972년이다. 당시 윤 지휘자가 활동하던 합창단의 부지휘자가 에델바이스클럽의 지휘자를 겸임하고 있었는데, 구경 차 방문했다가 요들의 매력에 흠뻑 빠지게 됐다.
 
“스위스 요들이 주는 신성한 분위기가 좋았어요. 종교적인 느낌도 많이 받았죠. 그래서 1972년부터 1975년까지 3년 동안 요들클럽의 지휘자로 활동했어요”
 
그는 3년의 활동을 끝으로 요델 클럽을 잠시 떠났었다. 한 동안 본업인 성가대 지휘자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던 중 윤 지휘자는 우연한 기회에 클럽과 다시 인연을 맺게 됐다. 건강상의 문제로 잠시 쉬는 기간에 클럽이 지속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사실일 알게 된 것이다. 오랜 공백이 있었지만 예전에 느낀 감동만큼은 그대로였다. 순수음악으로서 요들이 가지는 서정성, 순수성에 매일 감탄을 자아냈다.
 
 ▲ 가장 최근에 클럽에 참여한 백미영 씨는 딸의 추천으로 요들에 도전하게 됐다. 윤현주 지휘자는 1972년부터 1975년까지 클럽의 지휘자로 활동하닥 그만 둔 뒤 30년이 흐른 지난 2015년부터 다시 클럽의 지휘자로 복귀했다. 사진은 백미영 씨(사진 왼쪽)와 윤현주 지휘자 ⓒ스카이데일리

“일반 단원으로 활동 중 마침 당시 지휘자 분께서 활동을 그만두셔서 제가 다시 지휘봉을 잡게 됐어요. 제가 지휘를 그만둔 지 정확히 30여년만이었죠. 뭔가 운명 같다는 느낌도 받았어요. 제가 원래 굉장히 신경질적으로 지적하는 성향인데 여기서만큼은 유해지는 느낌이에요”
 
에델바이스클럽도 여타 단체들도 마찬가지고 우여곡절을 겪었다. 각자의 회원들이 순수한 음악적 견해들이 다르다보니 크고 작은 갈등이 종종 있었다. 하지만 멤버 전원이 이러한 갈등들도 더 긍정적으로 나아가기 위한 하나의 과정으로 인식하고 더욱 돈독해지는 계기로 인식했다.
 
“전통이 깊다보니 많은 사람들이 거쳐 갔고 또 많은 일이 있었어요. 하지만 모두가 하나의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최초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는 만큼 모두가 하나 된 마음으로 잘 해결해 나갈 것이라고 생각해요. 클럽명 앞에 붙는 ‘한국’이라는 글자는 아무나 붙일 수 있는 것이 아니거든요”
 
올해 48주년을 맞이한 에델바이스클럽은 향후 2년 동안 다시 한 번 내실을 다질 예정이다. 임상렬 회장은 2년 뒤 있을 50주년 창립식을 뜻 깊은 행사로 만든다는 계획이다.
 
“이제까지 함께했던 선후배 분들을 모두 모시고 그동안의 역사, 전통을 정리하는 시간을 마련하고 싶어요. 그 동안의 활동을 한 눈에 보여주는 전시회도 개최할 예정이에요. 정말 향후 100년, 200년을 이어갈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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