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쉼표 합창단은 뇌전증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 뇌전증 환아를 둔 다섯 가족이 모여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곡을 발표하고 공연을 했다. 지역사회 협업 프로젝트인 ‘나우프로젝트’를 통해 이뤄지는 쉼표 합창단의 공연은 지난 11일 홍대의 한 라이브홀에서 열렸다. 사진은 쉼표 합창단 구성원들 [사진=박미나 기자] ⓒ스카이데일리
‘쉼표 합창단’은 흔히들 ‘간질’이라고 알려진 ‘뇌전증’을 앓는 환아와 그 가족들이 모여 함께 합창 공연을 펼치는 프로젝트 그룹이다. 뇌전증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개선하기 위한 목적으로 기획된 ‘나우(NOW)프로젝트’를 통해 공연이 기획됐다. 나우프로젝트는 ‘나를 있게 하는 우리’라는 뜻을 가졌다.
‘나우프로젝트’는 글로벌 제약그룹 에자이의 한국법인인 한국에자이에서 사내 사회공헌 프로젝트로 시작했다. 한국뇌전증협회, 한국음악발전소 등 여러 협력기관이 함께 동참하며 규모가 점차 커졌다.
올해 시즌 3번째를 맞은 ‘나우프로젝트’는 프로젝트 진행 과정에서 지난 3월 합창단원을 모집했다. 그 결과 ‘쉼표 합창단’이 탄생했다. 이한철 싱어송라이터가 총괄 감독하는 쉼표 합창단은 지난 8일 디지털 싱글곡인 ‘해브 어 굿 타임(Have A Good Time)’을 발표했다. 지난 11일에는 홍대 웨스트브릿지 라이브홀에서 콘서트를 열기도 했다.
참여 계기는 달라도 뜻은 하나…뇌전증 부정적 인식 개선 계기되길
쉼표 합창단원은 모두 다섯 가족으로 구성됐다. 콘서트를 앞두고 서울 마포구 아현동의 한 공연 연습장에 모여 공연 준비에 여념이 없는 단원들을 직접 만났다. 연습 내내 그들의 얼굴엔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그들이 연습한 ‘해브 어 굿 타임’이라는 곡은 경련이나 발작을 일으키는 ‘뇌전증 증상’이 잠시 쉬어가는 과정일 뿐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쉼표 합창단원 이선희(47) 씨는 세 자녀 중 막내 손정인(7) 군이 연세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했을 당시 병원 내 사회사업팀의 권유로 합창단에 합류했다. 손 군은 생후 18개월 때 발작을 일으켜 뇌전증 진단을 받았다. 처음에는 무대에서 뇌전증을 알린다는 사실이 부담스러웠지만 합창단 특유의 밝은 모습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을 가지게 됐다.
“처음에는 한 번씩 발작을 일으키는 뇌전증을 알린다는 사실이 부담스러웠어요. 괜한 일을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하지만 막상 합창단에 처음 왔을 때 단원들의 표정이 너무 행복해 보이고 프로젝트 관계자들도 너무 좋아 잘 왔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 이선희(사진 왼쪽) 씨는 처음 뇌전증을 알린다는 사실을 부담스러워 참여를 후회하던 참에 합창단의 밝은 첫인상을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 조윤서 씨는 뇌전증은 숨겨야 할 병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스카이데일리
뇌전증을 앓고 있는 최민준(14) 군의 어머니인 조윤서(45) 씨는 지인이 SNS를 통해 프로젝트 관련 내용을 알려줘 합창단에 참여하게 됐다. 특히 ‘나우프로젝트’ 과거 시즌에 열렸던 공연 영상을 보고 사회 인식 개선을 위한 좋은 일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해 가족들의 동의를 얻었다.
최 군은 지난 2004년에 태어나 생후 20개월 때 바이러스성 뇌염의 후유증으로 뇌전증을 앓게 됐다. 그동안 약물치료, 식이요법 등을 병행하며 관리해왔지만 수술을 해야 할 정도로 상황이 나아지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 씨는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으며, 현재도 기쁜 마음으로 공연 준비를 하고 있다.
“TV프로그램에 뇌전증 환자가 나오면 얼굴이 모자이크 되거나 목소리가 변조돼 나오기도 하는데 왜 그래야만 하나 생각했어요. 이게 숨겨야 될 병이 아닌데 왜 숨겨야 하는지 모르겠더라고요. 지난해 7월 부산 해운대에서 뇌전증 앓는 운전자가 교통사고를 낸 것을 보고 왜 (죄인과 같은)낙인이 찍혀야 하는가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죠.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사회 인식을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더 강해 졌어요”
과거 성악을 전공했던 박관영(45) 씨는 딸인 박혜송(9) 양과 진료실을 방문했다가 쉼표합창단 포스터를 보고 지원하게 됐다. 박 양의 경우 아버지가 성악을 전공한 덕분인지 합창단 내에서도 가장 발성이 좋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흔히 자녀를 위해서라면 목숨도 내놓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하는데 노래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기 때문에 당연히 합창단에 참석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집은 평택에 있어요. 아이는 다섯 명이죠. 다섯 아이를 데리고 서울 마포구까지 연습을 위해 오가면서도 힘든 줄 모르고 있어요. 아이를 위해서라면 제주도에 살았어도 왔을 거예요”
▲ 성악을 전공한 박관영 씨(사진 왼쪽)는 과거 딸인 박혜송 양이 생사를 오간 적도 있었지만 노래를 통해 힘을 얻게 됐다고 밝혔다. 이소현 씨는 가족 간 서먹한 분위기가 합창단 활동을 통해 달라졌다고 말했다. ⓒ스카이데일리
이학준(14) 군의 어머니 이소현(44) 씨는 처음 합창단 가입 권유를 받았을 때 회의적인 입장이었다. 이 군의 증상이 심각해 합창단 활동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상치 못했던 남편의 동의로 합창단에 참여하게 됐다.
“처음에는 하지 않으려고 했어요. 합창단 가족들 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편이어서 참여 자체가 무리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최)민준이 어머니가 적극적으로 권유하더라고요. 또 그때 남편이 의외로 한 번 해보자고 말해 합창단에 참가하게 됐죠. 지금은 남편이 가장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어요. 합창단 단원들끼리는 ‘단장’이라고 부를 정도죠”
자녀 아픔 바라볼 수밖에 없는 부모의 고통…“희망가득 노래로 힘 얻죠”
이선희 씨는 합창단 활동을 하면서 노래를 통해 힘을 얻고 있다. 또 그동안 합창단 연습을 해오면서 가족들과 더욱 끈끈해질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 합창단 활동이 단순한 취미나 문화 활동을 넘어 뇌전증을 앓고 있는 자녀와 그 가족들을 치유해주는 매개체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둘째 아이가 막내와 함께 매일 병원에 다닌 기억밖에 없어 가장 힘들어 했었어요. 하지만 합창단을 준비하면서 자존감이 높아졌고 가족들과 같이 노래하고 춤추면서 성격도 밝아졌죠”
조윤서 씨는 아들 최민준 군의 뇌전증으로 인해 힘든 시간을 보내기도 했지만 즐거운 하루를 보내기 위해 매일 최선을 다하고 있다. 합창단에 참여해 즐거운 시간을 갖는 것도 그 이유 중 하나다.
“처음 합창단 모임에 참여한 날 ‘오늘을 살자’라는 말을 하기도 했어요. 뇌전증이 중증질환이다 보니 교육 문제 등 사회적 제약이 많더라고요. 처음에는 빨리 나아질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병이 길어질 수 있겠다는 생각에 심경이 복잡했죠. 하지만 합창단을 하면서 노래를 부르고 집에 가면 너무 행복해지고 기분이 좋아지더라고요”
▲ 쉼표 합창단원은 노래와 춤 연습을 하는 동중에도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단원 모두가 합창단 활동을 통해 가족 간 더 친밀해 지는 등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났다고 기뻐하기도 했다. [사진=쉽표 합창단]
박관영 씨는 뇌전증이라는 병을 알기도 전에 딸 박혜송 양의 증상을 보게 됐다. 이후 박 양이 뇌전증 진단을 받자 박 씨는 의사와 수월하게 소통하기 위해 전문서적을 탐독하면서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최초 한 달에 한 번씩 발작을 일으키던 박 양의 증상은 날이 갈수록 더욱 심각해졌다. 생사를 오갈 정도로 심각했던 적도 있었다.
“혜송이가 5살이었던 어느 날 하루 6번의 발작 증상을 보여 응급실 갔어요. 혜송이가 피를 토할 정도로 증상이 심각해져 중환자실까지 갔죠. 당시 의사 선생님이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할 정도였어요. 산소포화도가 50이하만 되도 가족들이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하는 수준인데 20까지 수치가 떨어졌어요. 그때 혜송이 손을 잡고 혜송이가 좋아하던 동요를 불렀어요. 그때 1시간 마다 산소포화 수치도 10씩 오르더라고요. 하늘의 뜻이었죠”
박 씨는 가족들이 합창단에 참여하면서부터 큰 변화가 생겼다. 특히 박 양의 변화가 두드러졌다. 박 양은 과거 집안에서 겉돌기도 했지만 합창단을 시작한 이후 다른 아이들과 함께 어울려 뛰놀기 시작했다.
“혜송이는 집에서 혼자 돌아다니기 일쑤였어요. 처음 합창단에 들어왔을 때도 나머지 네 명의 아이들끼리만 놀곤 했죠. 하지만 합창단을 시작한 이후 합창단 곡을 틀면 하루 종일 다른아이들과 함께 방방 뛰며 놀곤 해요. 혜송이가 없으면 아이들이 일부러 혜송이를 부를 정도로 단결력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뇌전증 환자를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은 아직 차가운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쉼표 합창단원들은 뇌전증 환자가 일으키는 발작은 환자가 잠시 쉬어가고 있는 과정일 뿐이라고 말한다. 특히 이선희 씨는 감기에 걸려 기침을 한 번 했을 때와 다를 바가 없다고 강조했다.
“뇌전증을 앓는 아이들은 커가면서 증상을 나타낸 이후 부끄러움을 느끼는 경우가 많아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운 거죠. 이제 그런 시선들을 바꾸기 위해 한 걸음 뗀 게 아닌가 생각해요. 감기 한 번 앓고 기침 한 번 했을 때와 같은 시선으로 바라바 줬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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