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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찬식의 청담유감(有感)

“중국은 운명공동체”라는 무지 또는 거짓

스카이데일리(skyedaily@skyedaily.com)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20-10-28 10:05:52

▲ 홍찬식 칼럼니스트(전 동아일보 수석논설위원)
지난주 중국 베이징은 6.25전쟁 참전 70년 행사로 시끌벅적했다. 첫 행사였던 기념 전시회 개막식에는 시진핑 주석을 포함한 중국 수뇌부(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 7명이 총출동했다. 6.25 때 중공군이 한반도로 진입한 것은 정확하게 1950년 10월19일이었다. 전시회 개막식도 같은 날짜인 19일에 맞춰 열렸다.
‘상무위원 전원 참석’은 강력한 국가적 의지의 다른 표현이다. 23일에는 인민대회당에서 기념대회가 열려 시진핑 주석이 중국 최고지도자로서 20년 만에 기념연설을 했다.
 
한국은 중공군 개입의 최대 피해자이자 전쟁의 당사자이므로 시진핑이 뭐라고 발언했는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6.25 참전을 통해 ‘정의의 승리’ ‘평화의 승리’를 거뒀다고 주장하면서 “침략자(미국)를 때려눕혀 ‘신(新)중국’의 대국(大國) 지위를 세계에 보여줬다”고 자랑했다. 또 “이 승리가 모든 시련과 강력한 적(미국)을 이겨내도록 중국 인민과 중화민족을 고무시킬 것”이라고 했다.
 
중국에서 대해서는 특히 동북공정이나 최근 BTS 소동 등 역사 문제에서 “똑같은 일을 놓고 저렇게 억지를 부릴 수 있을까” 하는 극도의 이질감을 느끼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시진핑의 6.25 발언은 사실 전부터 레코드처럼 반복되는 내용이다. 결국 ‘공산주의 중국’과 우리는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에서 본질적 차이가 있으며 그 틈은 쉽게 메울 수 없는 것임을 실감한다.
 
6.25의 진실은 북한 김일성이 소련 스탈린과 중국 마오쩌둥의 지원 아래 남한을 무력 침략한 것이다. 하지만 중국은 거꾸로 미국이 ‘침략’했으며 중국은 이에 맞서 ‘평화를 수호했다’고 선전한다. 심지어 시진핑은 “중국 참전이 인류 진보에 기여했다”고까지 했다.
 
‘팩트 체크’를 위해 1950년 당시를 복기해 보자. 9월15일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가 반전되고 북한군이 궁지에 몰리자 김일성은 9월28일 소련과 중국에 파병 요청을 한다. 소련은 거부하고 중국은 기다렸다는 듯 받아들인다. 중공군은 벌써 10월11일에 25만 명의 병력을 압록강 부근에 대기시켜놓고 있었다.
 
10월25일은 중공군이 한국군에 첫 승리를 거뒀다고 주장하면서 ‘항미원조(抗美援朝, 미국에 맞서 북한을 도움) 기념일’로 지정해 놓은 날이다. 10월26일 한국군은 파죽지세로 압록강에 진출했으나 감격은 단 하루에 그쳤다. 중공군의 물량 공세에 밀려 이튿날 남쪽으로 발길을 돌려야 했다. 미군과 한국군은 당시 중국 국경 너머로 발을 디딘 적이 없다. 중국이 6.25에 대해 ‘침략’ 운운하는 건 얼토당토않다.
 
중공군 참전은 불안한 중국 내부 정세를 외부와의 전쟁을 통해 돌파해 보려는 계산이 크게 작용했다. 결과적으로 이 전략은 성공했다. 중공군은 6.25 전투에서 국민당 출신 병력을 최전방에 내세웠다. 중국 내전 과정에서 포로가 되거나 투항한 국민당 군은 175만명에 이르렀다. 이들이 과거 우군이었던 미군과 한국군에 맞서 싸우기를 강요받고, 또 다른 죽음 앞에 내몰린 것은 전쟁 패배의 비참함과 권력의 잔혹함을 보여준다. 전쟁을 거치며 중국 내부는 빠르게 안정됐다. 6.25는 휴전이라는 ‘무승부’로 끝났으나 중국에서는 미국에 대한 ‘승리’로 치장됐다.
 
중국은 그 때의 짜릿했던 기억을 소환해 미중 갈등 속에서 내부 결속을 꾀하려 한다. 그들에겐 6.25의 연장전이 이번 미중 무역 전쟁이다. 이에 맞서 우리가 마땅히 소환해야 할 기억은 거의 손에 잡혔던 남북통일의 순간이 중국의 참전으로 무산된 사실이어야 한다.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라는 실리적 자세를 모르진 않지만 역사를 망각하는 것과 기억하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 현대 중국과 관련해서는 당시 상황을 냉철하게 살펴보는 것으로 대응 태세의 출발선을 삼지 않으면 안 된다. 한반도를 놓고 강대국들의 이익이 충돌할 때 우리의 힘이 얼마나 무력하고 취약한 것인가를 보여준 상징적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6.25 전투에서 중공군은 한국군을 ‘약한 고리’로 판단하고 미군보다 한국군을 집중적으로 공격했다. 3년 전 사드 배치 파동에서도 중국은 한국을 집요하게 괴롭혀 ‘3불(不) 합의’를 받아내는 한편, 미국을 우회적으로 압박하는 효과를 얻었다. 이번 미중 갈등에서도 비슷한 카드가 얼마든지 나올 수 있고 그때마다 우리는 진퇴양난에 빠질 것이다. 자칫 선택을 잘못하게 되면 힘들게 쌓아온 모든 것이 무너질 수 있다.
 
이 와중에 우려스러운 것은 국내 집권 세력의 유난스런 친중 노선과, 그 정신적 뿌리를 형성하는 왜곡된 역사인식이다. 현 정권의 중국관(觀)을 잘 보여주는 것이 “한국과 중국은 운명공동체”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이다. 이로부터 더 나간 게 지난 2월 코로나 발생 때 “중국의 어려움이 우리의 어려움”이었다. 코로나 확산으로 반중(反中) 정서가 빠르게 확대되자 일각에서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시절 우리 독립운동가들이 중국의 지원을 받은 것을 거론하며 “그때를 잊어서야 되겠느냐”고 중국을 옹호하기도 한다.
 
하지만 한국과 중국은 대대로 상하(上下) 관계였지, 운명공동체인 적은 없었다. 아시아를 넘어 세계 패권을 추구하는 중국에게 한국은 앞으로도 복속 혹은 지배 대상일 뿐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시절에 한국을 도와준 것은 대만으로 밀려난 국민당 정부였지, 중국 공산당이 아니었다. 국민당 정부는 일본의 침략 전쟁에 밀려 수도를 서쪽으로 여러 번 옮길 때마다 우리 임시정부와 동행했다.
 
역사를 교묘히 뒤집고 멋대로 가공하는 국내 친중 세력들의 최종 목표가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이대로 친중이 가속화할 때 나라가 어찌될 지를 보여주는 미래상이 아주 없지는 않다. 현재 중국과 국경을 접하며 중국 영향권에서 살아가는 나라가 14개국에 이른다. 북한도 그 중 하나다. 이 가운데 러시아를 뺀 국가들의 평균 국민소득은 3000달러를 조금 넘는다. 중국에 예속되는 한 절대로 중국(2019년 국민소득 1만276달러)보다는 잘 살 수 없는 건 뻔한 이치 아닌가. 지난주 요란했던 중국의 6.25 행사를 여러모로 곱씹어 보게 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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