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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찬식의 청담유감(有感)

민주주의가 힘을 잃다

스카이데일리(skyedaily@skyedaily.com)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20-12-23 11:25:23

 
▲홍찬식 칼럼니스트(전 동아일보 수석논설위원)
//40% 고정 지지층이 떠받히는 정권의 폭주
//공수처 통해 대통령은 ‘제왕’ 넘어 ‘황제’로
//좌파진영은 기득권 지키려 반대 목소리 실종
//지식인과 대학사회는 일부 인사들 빼고 침묵
//새해는 새로운 각성 일으키는 출발점 되기를 
 
문재인 극장의 객석이 썰렁해졌다. “감히 약속드립니다. 오늘부터 저는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습니다”는 취임사에 기대를 걸었던 국민들이 먼저 우르르 빠져나갔고, 부동산 정책과 청년 실업에 절망한 사람들이 성난 얼굴로 뒤를 이었다. 그러나 입장을 바꿔 보면 문 대통령에게는 아직도 약 40%의 지지층이 있다. 그의 대선 득표율은 41%였다. 객석은 여기저기 비어 있어도 대선 득표율만큼의 사람들은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2020년이 저물고 있다. 올 한 해의 최대 화두는 코로나 사태와 함께 소위 ‘민주화 세력’에 의한 민주주의 파괴로 쉽게 정리된다.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징계 과정을 보면 현 정권이 마음만 먹으면 없는 죄도 만들어내 다른 헌법기관들의 권력 감시 기능을 무력화시킬 수 있음을 드러낸다. 가뜩이나 제왕적인 대통령제에서 대통령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까지 손에 쥐게 되면 판·검사 국회의원 고위공무원들을 더욱 숨죽이게 만들어 ‘제왕’을 넘어 ‘황제’로 등극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 한 가지만으로도 과거 전체주의 독재에 맞섰던 그들의 존재 이유는 사라졌다.
 
게다가 지난 4년의 집권을 통해 겉과 속이 너무 다른 그들의 본색, 모든 국정 과제에서 원초적 무능마저 새삼 확인된 상태다. 하지만 신통하게도 그들은 승승장구하고 있다. 행정 입법 사법 교육 권력까지 그들 손 안에 있다. 자기들끼리 건배사로 ‘50년 집권’을 공공연히 외칠 정도다. ‘믿는 구석’은 바로 40%의 탄탄한 지지다. 이 정도의 확실한 지지층을 갖고 ‘표(票)퓰리즘’까지 장착하면 각종 선거에서 필승이다.
 
좌파 진영은 많이 변했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 때만 해도 같은 편 정권에 날카로운 비판의 목소리를 냈던 그들이다. 노무현 청와대에서 홍보수석을 지낸 조기숙 교수는 “진보 언론과 시민단체는 어용 시비를 피하기 위해 보수 언론보다도 가혹하게 노무현 정부를 비판했다. 여당은 책임론을 피하기 위해 정부에 흠집을 냈다”고 술회했다. 청와대 입장에서 좌파 진영에 섭섭함을 드러낸 발언이긴 하지만 살아있는 권력 감시라는 진보의 가치가 이때만 해도 살아 있었다.
 
하지만 현 정권에선 한 몸이 됐다. 180석을 차지한 여당 국회의원들은 소신도, 자존심도 버렸는지 청와대의 말 잘 듣는 거수기로 전락한지 오래다. 심지어 국회의장이 야당의 필리버스터를 저지하려고 돌연 종결 투표에 참여하는 일이 벌어졌다. 시민단체 인사들이 심판에서 선수로 유니폼을 갈아입고 권세를 누리는 것은 더 이상 뉴스도 아니다. ‘양념’이라는 완장 찬 세력들은 ‘문재인 왕조’의 호위무사를 자처한다. 노무현 정권 때 분열로 무너졌다는 트라우마가 있다고는 하지만 누가 봐도 거대한 기득권 집단의 철옹성 쌓기다.
 
세인들의 관심사에서 벗어나 있으나 필자는 지방의회의 ‘일당 독재’ 체제를 떠올릴 때마다 현기증을 느낀다. 특히 수도권 광역의회에서 민주당은 서울에서 92.7%, 경기도 95%, 인천에서 91.8% 의석을 차지했다. 이건 결단코 민주주의가 아니다. 지방의회 출마자들이 누군지도 모르고 민주당만 보고 찍은 유권자들이 태반이다. 부패 비리 성추행 등 사회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추악상이 그 안에서 버젓이 벌어지고 있다. ‘좌파 영구 집권’이라는 그들의 ‘낙원’이 실현되면 중앙 정치에도 반드시 나타날 일이다.
 
막강 기득권을 토대로 현 정권이 휘두르는 만능 무기는 다수결 원칙이다. 그들은 탈원전 소득주도성장 등의 정책에 대해 “대선 승리를 통해 유권자 지지가 확인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공수처법, 경제 3법, 대북전단금지법 등도 같은 구실로 강행됐다. 그 논리가 갖는 모순은 일단 접어두더라도 다수결에는 분명 한계가 존재한다. 학자들은 다수결 원칙을 적용해서는 안 되는 세 가지를 꼽는다. 객관적 진리가 존재하는 경우, 전문적 지식과 평가가 필요한 경우, 인류 역사를 통해 검증된 근본 가치에 어긋나는 경우가 그것이다. 이 선을 넘느냐 마느냐가 ‘진짜 민주주의’와 포퓰리즘을 가른다.
 
예컨대 현 정권의 소득주도성장은 마차가 말을 끌 수 없다는 객관적 진리를 거스르는 것이고, 원리주의적인 탈원전 정책은 원전이 안전하고 경제성 높은 에너지라는 전문적 지식과 평가를 외면하고 있다. 5·18법이나 대북전단금지법은 표현의 자유 같은 인류 보편의 가치에 역행한다. 국가 최고지도자로서 민주주의의 맹점을 각별히 경계해야 할 대통령이 되레 부채질하고 있음은 할 말을 잃게 한다.
 
정권의 폭주에 가장 먼저 경고 사이렌을 울려온 지식인 사회는 의외로 조용하다. 일부 인사들이 고군분투하고 있을 뿐이다. 최근 서울대에서 나온 시국선언 참여 교수는 달랑 10명에 그쳤다. 오히려 조국 사태 등에서 시시비비를 밝히기 보다는 정권 편에 서는 대학들이 속출했다. 너무도 달라진 풍경이다.
 
문 대통령이 당선되던 해인 2017년 벽두에 프란치스코 교황이 설파했던 말이 묘한 울림을 준다. 교황은 “위기의 시대에 사람들은 ‘구원자’ 같은 지도자를 찾는다”며 포퓰리즘을 경계했다. 그는 독일의 히틀러 사례를 들면서 “히틀러는 권력을 훔치지 않았다. 그는 국민에 의해 선출됐고 그리고 나서 그의 국민을 파멸시켰다”고 했다. 유럽과 미국 정치에서 포퓰리스트들의 득세를 우려한 말이었지만 지금 보면 한국의 장래에 대한 섬뜩한 예언처럼 다가온다.
 
문재인 지지층의 정서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언급한 ‘구원자’ 기대 심리다. 내 앞뒤로 꽉 막힌 현실을 타개해줄 ‘해결사’를 학수고대하는 것이다. 기대가 번번이 실망으로 바뀌어도 미련의 끈을 놓지 않는다. 나라가 망하든 말든 한번 갈 데까지 가보자는 오기의 정치에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이들도 적지 않다. ‘친문 대모’ 한명숙 전 국무총리는 “우직함과 진심, 이런 것으로 문재인 식 해결을 이끌었기에 코로나 상황에서 대한민국에 사는 게 좋다”고 했다. 이런 기분을 지닌 사람이 그 혼자만은 아닐 듯하다.
  
나머지 다수의 민심이 수면 아래서 때를 기다리고 있을 가능성은 있다. 그러나 과거 어느 때보다 민주주의라는 말이 지니는 힘과 무게가 떨어져 있음을 실감한다. 그렇다고 민주주의 자체가 틀릴 리 없다. 새해가 새로운 각성의 출발점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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