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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수의 생활명상 즐기기

진실로 나는 자유롭고 싶은가

말로만 ‘자유, 자유’ 웅얼거리는 것은 아닐까

스카이데일리(skyedaily@skyedaily.com)

필자약력 | 기사입력 2021-04-09 19:50:38

 
▲ 김성수 작가·마음과학연구소 대표
 그 자유를 코 앞에 두고도 만나지 못한 건 아닐까. 삶의 자유를 꿈꾸면서 뭔가에 묶여 있는 듯한 내 의식을 직시하지 않는다면 나의 자유는 먼 나라 얘기가 아닐까.
  
가만히 보면, 내 이름 앞 뒤에 붙는 수식어나 명칭은 나의 태도나 기분 따위에 극적인 영향을 미친다. 물론 갓태어난 젖먹이는 그런 언어의 유희와는 거리가 멀다. 그야말로 맨 얼굴, 맨 마음 상태다. 오롯이 자연 그대로다 보니 누구도 의식할 이유가 없다. 생명이라는 자연 현상이 그의 몸을 통해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울고 싶으면 울고, 싸고 싶으면 싼다.
  
시간이 흐르고 아이의 환경이 변하면서 달라진다. 성장과 관계의 인연에 따라 아이의 이름이 주변에 알려진다. 이름은 때로 누군가에게 향기가 되고 누군가에게는 두려움⋅냉소⋅따뜻함⋅편안함을 주기도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성장이란 생명활동 그 이상을 의미한다. 자신의 먹거리와 사회적 위치, 경제 수준을 확보하기 위해 이름 앞 뒤에 여러 수식어를 덧붙이게 되기 때문이다. 의도 했든 안했든 그는 ‘학생⋅알바생⋅신입생⋅사원⋅주무관⋅계장’ 따위의 호칭을 차근차근 경험하기도 한다.
  
흘러가는 시간과 함께 당신의 의식은 여러 종류의 가면을 썼다 벗었다 한다. 낮동안 쓰고 있던 가면을 벗지 못하고 잠들기도 한다. 잠자리에서도 전화가 와서 ‘과장님!’하고 부르면 당신은 ‘아, 네!’하고 답한다. 순식간에 ‘과장’이라는 가면을 다시 뒤집어쓴 순간이다.
  
이런 태도나 말투는 어디에 숨어 있었을까
  
세상은 이제 탤런트나 영화 배우만이 여러 배역을 하는 것은 아니다. 한번 정해진 신분이 죽는 날까지 고착된 시대가 아닌 이 시대 사람들은 자신에게 붙여지는 직업명이나 호칭이 다양하기 십상이다. 아무개 사장님, 아무개 회장님, 아무개 과장님 정도는 어디서나 흔하다. 같은 사람을 두고도 하루 중에 여러 호칭이 따라붙기도 한다. 아무개 씨. 아버지, 여보, 형님, 자네가 되기도 한다.
  
낮에는 택시 기사로 일한 후 저녁에는 조그마한 식당을 운영하는 사람도 있다. 유치원 교사로 일하면서 인터넷 옷가게를 하는 사람도 봤다. 아이들을 가르칠 때는 교사, 쇼핑 몰을 할 때는 사업가인 셈이다 마이크로 소프트 공동 창업자인 빌 게이츠에게는 마이크로 소프트 기술고문이라는 직함 외에도 자선사업가, 최고 부자 등의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재미있는 현상은 그 호칭에 따라 나의 의식과 언행이 순식간에 전환된다는 점이다. ‘여보게 김서방’ 하고, 장모님이 나를 불렀을 때 나는 빛보다 빠르게 세상의 모든 사위가 취할 법한 태도를 취하게 된다. 이런 태도나 말투는 그동안 어디 숨어 있었을까. 스스로 짐작조차 할 수 없다. 만약 그 순간, 내 아이가 ‘아빠’하고 부른다면 나라는 존재는 빛보다 빠르게 전환된다. 아마 아이를 보는 표정과 태도, 눈빛을 준비해 놓았다가 즉각 꺼내는 것처럼 행동할 것이다.
  
인간은 자신의 내적 언어에 대해 거의 자동으로 반응한다. 그것은 마치 몸과 마음이라는 수건이 물에 푹 젖어 있다가 누군가 그것을 쥐어짜면 물을 줄줄 흘리고, 누군가 그것을 볕에 말리면 수분을 기화시키며 말라가는 이치를 닮았다.
  
당신은 경험하면서 반응하고, 반응하면서 경험한다. 수건이 물에 젖어있는 상태가 경험이라면, 그 경험을 벗어나는 순간부터 물을 줄줄 흘리거나, 물 머금은 수건이 햇빛에 기화되는 반응을 일으킨다. 수건이라는 물질의 속성 때문이다. 나같은 생명 또한 하루 중에서 많은 경우 그와 같은 물질적, 무생물적 반응체로 둔갑한다. 어떤 상황이나 현상을 경험하는 나와 그 경험에 반응하는 나라는 단순 조합만 있는 것이다. 자세히 보면 그 반응을 주도하는 것은 경험 자체가 아니라 ‘경험의 기억’이다. ‘기억 없는 기억’이 내 심신을 주도할 수도 있다니.
  
심리학에서는 ‘기억 없는 기억’ 중 상당 부분을 무의식이라고 한다. ‘무의식적 반응’은 생명의 주도성을 갖고 있는 존재가 아니라 순간적이나마 무생물적 반응이다. ‘툭치면 톡’하고 떨어지는 마른 가지를 연상시킨다. 이런 무의식적 반응을 화석처럼 고착화시킨 것이 어쩌면 당신의 이름 앞뒤에 따라다니는 사회적 명칭일지도 모른다. 가령 ‘선생님’이라는 수식어를 20년 간 붙이고 다녔다면 그 수식어에 걸맞는 ‘선생님 의식’에 당신은 푹 젖어 있을 수 있다. 마치 수건이 물에 젖어 있는 것처럼. 그러다보니 길을 가다 누군가 뒤에서 ‘선생님’하고 부르면 반사적으로 돌아보게 되는 것이다.
  
나는 가끔 내 이름 앞뒤에 따라붙는 ‘호칭’ ‘수식어’ 따위로부터 완벽하게 벗어나고 싶을 때가 있다. 누구의 아빠, 누구의 남편, 누구의 아들, 무엇하는 사람. 나라는 존재의 의식 세계 깊은 곳에 덕지덕지, 흘러간 옛 영화 포스터처럼 붙어 있는 이것들을 벗어던지고 싶은 욕구에 휩싸인다. 그렇게 되면, 나는 어떤 존재일까. 그 상태를 선명히 보고 싶다. 조금만 노력하면 볼 수 있지 않을까. 물에 적셔진 수건처럼 나를 적시고 있는 여러 수식들에게서 벗어나 ‘나의 유아기 의식’이나 ‘유아기 전 의식’을 만나보고 싶다. 이런 상태를 경험한다면 나는 아마 이렇게 외칠 것이다.
  
“자유다!”
  
나를 에워싼 수많은 가면들. 장수의 갑옷과 투구처럼 내 영혼의 맨몸을 겹겹이 에워싼 세상의 호칭들, 스스로 ‘나는 누구’라고 지칭하며 버티는 나의 정체성. 이런 껍데기를 훌훌 벗어던질 방법은 없을까. 단 한순간이라도 완벽하게 ‘아무 것도 아닌 상태’를 경험할 수 없을까.
  
“자유다”라고 외칠만한 경험은 아니지만, 나의 의식을 고요히 한 다음, 나라는 존재를 수식하는 여러 호칭들 하나하나 떼어내 본 적이 있다. 방법은? 간단하다. 고요한 가운데 스스로에게 거듭 질문하는 것이다. 나는 누구의 아버지로써 영원한가. 누구의 삼촌으로써 영원한가. 회사 과장으로써 영원한가. 그에게 나는 영원한가. 어제 가진 불쾌한 기억은 영원한가... 이것은 영원한가? 떠오르는 그 모든 것에 대해, 이것은 영원한가? 라고 질문한다. 반복적으로. 그렇게 매일 10분씩만 되묻기로 해보자. 몇 차례 시도만으로도 훨씬 가벼워질 것이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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