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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호의 ‘맛있는 동네 산책’
사라지기 전 가볼만한 을지로 노포 맛집
을지로 터주대감 평양냉면 강자 ‘을지냉면’
오징어볶음·생태탕이 그리울 땐 ‘세진식당’
유성호 필진페이지 + 입력 2021-06-04 11:00:16
▲ 유성호 맛 칼럼니스트
을지로가 빠르게 변하고 있다. 세운재정비촉진사업에 따라 구도심이 사라지고 곳곳에 마천루가 들어선다. 대로변은 이미 지구단위로 철거가 끝나고 아파트와 상가건물 골조가 올라가고 있다. 골목길 정취는 온데간데없고 자로 잰 듯한 길들이 예고되고 있다. 도시가 변하면서 노포 맛집도 사라지거나 변한다. 사라지기 전 을지로의 옛 정취를 간직한 노포를 순례한다.
  
을지로는 서울시 중구 태평로1가 31번지 서울시청에서부터 을지로7가 1번지 동대문역사문화공원까지 도로다. 길이 2.74㎞, 너비 30m, 왕복 6차선이며 1∼7가로 나뉜다. 종로·청계천로·퇴계로와 함께 서울 사대문 안쪽의 대표적인 상업·업무지구다. 1946년 10월 일본식 동명을 정리하면서 고구려 을지문덕 장군의 성을 따서 지었다.
 
일제 때에는 황금정통(黃金町通)으로 불렸다. 당시는 주로 중국인들이 많이 거주했다. 명동에 중국대사관이 있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을지문덕 장군은 고구려 살수대첩의 영웅이다. 수양제가 100만 대군을 이끌고 왔지만 거의 궤멸시키다시피 큰 전과를 올린 인물이다. 중국인 집단 거주촌이던 곳을 을지로라 정한 이유는 바로 그들의 ‘기’를 누르기 위함이다.
 
일본인들이 집단으로 거주했던 진고개 일대를 충무로라 정한 이유와 같다. 비슷한 예를 하나 더 들면 동대문부터 청량리까지 도로명은 왕산로인데, 이는 대한제국 때 의병장이었던 왕산 허위의 호를 붙인 것이다. 1908년 1월 정미의병으로 불리는 13도창의군 1만여 명을 양주에 집결시킨 허위는 300여 명의 선발대를 이끌고 동대문 밖 30리까지 진격한 바 있다. 도로명에 표시된 인물들은 대부분 그곳에 역사적인 관련이 있다. 이를 찾아보는 것도 우리 역사에 한 발짝 다가가는 쉽고 뜻깊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재정비사업에 대변화하는 을지로
 
▲ 세운재정비촉진사업에 따라 크게 변화하고 있는 을지로 일대. [사진=필자제공]
 
을지로 일대는 낡고 개발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아니 서울 사대문 안에는 종로, 충무로, 남대문 등 재정비할 곳이 차고 넘친다. 이에 따른 재개발, 재정비 등 구호 또한 이곳저곳에서 요란하다. 절차적 하자가 있는 곳도 있고 원주민의 뜻과 달리 개발이 강행되는 경우도 있다.    
 
노포 음식점이 많은 세운3구역 역시 비슷한 상황이다. 세운상가 일대는 2006년 도시재정비촉진을 위한 특별법에 근거해 재정비 촉진지구로 지정됐다. 2009년 재정비 촉진계획을 결정할 때 8개 대규모 사업구역으로 구분됐다가 2014년 박원순 전 시장에 의해 171개 구역으로 세분화됐다. 세운3구역도 이때 총 10개 구역으로 나눠졌다.   
 
세운 3구역에는 서울 노포의 대명사 중 하나인 평양냉면 전문점 '을지면옥'(3-2구역)을 비롯해 양·대창전문점 ‘양미옥’(3-3), 가장 오래된 갈빗집 ‘조선옥’(3-8) 등이 있는 곳이다. 고 박원순 전 시장은 세운재정비촉진계획을 발표하면서 을지면옥 원형을 보존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당사자인 을지면옥 측은 이를 반대하면서 단순 해프닝으로 끝났다. 주변 상가가 개발되는 데 덜렁 혼자 남는 것은 부담스럽다는 이유다.    
  
을지면옥이 속해있는 3-2구역과 3-6,7 구역에는 골목 곳곳에 노포들이 보석처럼 박혀 있다.     
 
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에 따르면 세운3-6,7구역은 정밀가공, 주물, 프레스 등을 다루는 기술자들과 전기와 기계 부품을 다루는 상인들이 모여 '상공인 마을'을 이루고 있던 곳이다. 세운3-7구역은 이미 철거됐고 세운 3-6구역은 사업시행 인가가 난 상태이다.    
 
그러나 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는 세운3-1,2,4,5,6,7구역 재개발이 진행되는 동안 세입자는 물론 지주들에게도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중구청이 감사원 지적을 수용할 것을 촉구하는 등 을지로의 ‘몸살’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중구청은 을지로를 비롯해 관내 해설사와 함께하는 도보 유람 코스를 다양하게 만들었다. 을지로의 대명사, 서울 평양냉면의 한축인 을지면옥도 ‘을지유람’ 코스에 포함돼 있다. 을지유람은 을지로3가역 버스정류장에서 출발해 송림수제화, 오구반점을 비롯해 타일, 도기거리의 서울청소년수련관과 원조녹두를 들른다. 이어서 을지로 노가리골목 포인트에서는 을지면옥, 을지다방, 통일집, 안성집 등 노포 음식점을 들러 세운청계대림상가의 조명거리, 공구거리, 재봉틀거리, 조각거리 등을 둘러보는 코스다.    
 
을지로 노포의 자존심 ‘을지면옥’
 
▲ ‘을지면옥’은 조선옥, 양미옥 등과 더불어 을지로를 대표하는 노포 맛집이다. 의정부 계열 평양냉면 원조인 의정부 평양면옥의 둘째 딸이 1985년 차린 노포다. [사진=필자제공]
 
을지로 노포 맛집 순례 첫 번째 순서로 을지면옥, 세진식당, 통일집을 소개한다. 1985년 개업한 을지면옥은 의정부 평양면옥의 서울 진출 교두보다. 의정부파는 장충동파와 함께 대한민국 평양냉면 계보의 한축이다.    
 
평양 출신 김경필 할머니가 1.4 후퇴 때 월남해 경기도 전곡에 1969년 개업했다. 의정부에 자리 잡은 것은 1987년부터로 이때부터 의정부파 명성을 듣는다. 첫째 딸에게는 '필동면옥'을 내줬고 둘째 딸이 '을지면옥’을 맡았다. 셋째 딸은 강남구 잠원동에 '의정부 평양면옥 강남점'을 열어 온 가족이 가업을 잇고 있다.    
 
의정부 계열 평양냉면의 특징은 소와 돼지고기 등을 적절하게 섞어 뺀 육수와 고명으로 대파를 송송 얹고 고춧가루를 적지 않게 뿌린 것이다. 평양냉면 마니아들은 고명 올라간 모양만 봐도 어느 면옥 냉면인지 단박에 알아맞히는데, 그런 측면에선 의정부 계열은 고춧가루 때문에 쉽게 눈에 띈다.   
 
술꾼들에게는 을지면옥 수육을 안주로 만드는 특별한 레시피가 있다. 빈 냉면 그릇에 수육 한 접시를 쏟아붓고 무김치와 수육소스 그리고 겨자 두 세 스푼 넣고 휘저어 비비면 양념이 간간한 안주가 된다. 개별로 먹던 것을 한 번에 먹을 수 있도록 비빈 것이다.    
 
3-2구역인 을지면옥 바로 옆 블록인 3-1구역은 철거 후 재건축이 한창이다. 을지면옥은 겉으로는 개발이 진행 중인 것처럼 보이지만 보상문제가 난항이다. 정부는 평당 4300만원 공시지가로 보상하려 하고 업주는 현실적 보상으로 8000만원을 요구하고 있다. 협상은 진행 중이지만 개발로 결론은 이미 나 있는 상황. 올 연말이면 페인트로 쓰윽 쓴 을지면옥 간판도 보기 어려울 전망이다.    
 
어머니 손맛 생각나는 ‘세진식당’
 
▲ 관록 있는 주방 찬모들의 능란한 반찬 솜씨가 혀의 미뢰를 자극해 옛 추억을 소환하는 ‘세진식당’.[사진=필자제공]
 
3-1과 3-2구역을 나누는 골목으로 접어들면 좁디좁은 골목에 올망졸망 들어선 을지로 공구상 광경이 눈에 들어온다. 골목 어귀 ‘갯마을횟집’을 지나면 작은 간판을 단 ‘세진식당’을 만날 수 있다. 갑오징어철에는 ‘시가’로 제공하는 갑오징어 숙회가 인기고 평시에는 오징어볶음과 생태탕이 대표메뉴인 곳이다.   
 
테이블이 열개가 채 되지 않는 좁은 곳이지만 인심만큼은 넉넉한 곳이다. 다행히 날씨가 괜찮을 때엔 야장에 테이블 몇 개를 더 펼칠 수 있다 보니 대기하는 시간도 그만큼 줄어든다. 식당 중앙에 굵직한 쇠파이프가 신기해 만지작거리고 있자니 마치 ‘봉춤’이 연상돼 일행과 웃었던 기억이다. 주인은 단지 기둥일 뿐이라고 하는데, 그만큼 낡은 건물이란 의미를 담은 재미난 풍경이다.    
 
관록 있어 보이는 주방 찬모들의 능란한 반찬 솜씨가 혀의 미뢰를 자극해 옛 추억을 소환한다. 도토리묵과 김가루, 부추, 통깨를 들기름에 절묘하게 무쳐낸 묵 반찬, 소울 푸드 반열에 오른 콩자반, 보리새우와 건새우를 달근하게 볶아낸 새우볶음은 가히 밑반찬으론 최고 수준이다.    
 
시그니처 메뉴인 생태찌개와 오징어볶음을 주문했다. 생태찌개를 한소끔 끓이는 동안 오징어볶음이 먼저 상위에 올라왔다. 은은한 불맛이 뒤에서 받쳐주고 매콤달콤한 볶음 특유의 간맛과 오징어 고유의 육향이 어울려 어머니의 옛 손맛을 떠오르게 했다. 오묘한 맛이란 표현이 딱이다. 중구 중림동 오징어볶음 맛집 호수집과 용호상박이다.   
 
공깃밥을 한 그릇 시켜 오징어볶음 양념에 비벼 먹으면 또 하나의 훌륭한 메뉴가 탄생한다. 그렇게 오징어볶음에 술잔을 몇 순배 돌리면 생태찌개가 등장한다. 바지락과 두부, 고니, 이리, 호박, 쑥갓 등의 맛이 어우러지면서 시원한 국물 맛을 낸다. 탁하지 않고 은은하고 경쾌한 국물 맛이 일품이다. 세진식당 음식의 가장 큰 장점은 간이 혀에게 윽박질 하지 않고 살살 달래는 데 있다.           
 
지난 5월 중순에 을지로 노포 맛집을 순례하기 위해 ‘어쩌다 을지로 모임’(어을모)를 만들고 첫 방문지로 간 곳이 ‘세진식당’이다. 이곳도 을지면옥과 같은 구역이라서 올해 안에 지금 자리에서 떠나야 한다. 이사를 가더라도 손맛은 싸들고 가겠지만 정취는 그렇지 못할 것이다. 노포의 맛은 추억과 합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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