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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과 가상의 경계가 무너지는 ‘메타버스’가 트렌드로 떠오르면서 독자적인 세계관 설정을 내세운 가상인간이 대세로 급부상했다. 이른바 ‘버추얼 휴먼’이라 불리는 가상인간은 그래픽 기술을 활용한 디자인과 캐릭터 고유의 세계관을 통해 메타버스를 즐기는 사람들에게 색다른 몰입감과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다. 특히 단순히 즐거움을 선사하는 수준을 넘어 마케팅 등 다양한 산업 분야에 활용되는 등 실존하는 인물을 대체하는 수준까지 도달했다.
실제 인물과 흡사한 외모와 현실적 설정…광고시장 블루칩 떠오른 가상 인플루언서
인스타그램 팔로워 수 약 4만8000명을 보유 중인 인플루언서는 올해 나이 29세로 직업은 디자인 연구원이지만 부업으로 패션모델 일을 하고 있다. 그의 인스타그램 계정에는 옥상에서 피자를 먹거나 그날 입은 옷을 자랑하는 일상적인 사진들이 게재된다. SNS 내에서의 높은 인기 덕에 롯데홈쇼핑의 ‘광클절’ 행사 홍보모델로 발탁됐다. ‘광클절’은 누적 주문 건수 200만 건을 기록하고 올해 평균 대비 주문고객 25%가 증가하는 성과를 거뒀다.
놀랍게도 이 인플루언서는 실존하는 인물이 아니다. 롯데홈쇼핑이 만들어 낸 가상인간 ‘루시’다. MZ세대가 좋아할 만한 외모적 특성을 조합해 만들어졌다. 루시의 인스타그램에 올라 온 사진들은 대역 모델이 특정 장소에서 사진을 찍으면 3D 애셋 기술을 통해 루시의 외형을 합성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루시와 맞먹는 인기를 누리는 인플루언서 ‘로지’도 가상인간이다. 서울에서 태어났고 나이는 영원한 22살이다. 로지의 본명은 ‘오직 단 한 사람’이라는 뜻의 ‘오로지’로 순수 한국어 이름이다. 로지는 신한라이프, 반얀트리 호텔, 쉐보레 전기차, 신한라이프, 구찌X삼성전자, 마틴골프, 질바이질스튜어트 등의 광고모델로 활동했으며 12일 기준 인스타 팔로워 수 10만명을 돌파했다.
가상 인플루언서는 실존 인물과 구분이 어려울 정도로 정교하게 제작된다. 모르고 볼 경우 실존인물로 착각할 가능성이 높다. 구체적인 프로필까지 지니고 있어 직접 볼 수만 없을 뿐 그 외 나머지 부분은 실존인물이라 봐도 무방하다. 심지어 가상 인플루언서들의 인스타그램에 댓글을 달면 가상 인플루언서도 답글을 달아준다.
일례로 가상 인플루언서가 올린 데일리룩 사진에 ‘사진 너무 예쁘게 나왔어요’라는 댓글을 달면 ‘실물은 더 예뻐요’ 등과 같은 대답을 해주는 식이다. 실제로는 가상 인플루언서 담당자가 댓글을 읽고 거기에 맞는 문구를 쓰는 것이지만 가상 인플루언서를 소비하는 사람들은 실제로 가상 인플루언서와 대화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현실에서 부딪히기 어려운 인기 연예인과 크게 다르지 않다 보니 가상 인플루언서의 인기와 영향력은 상상 이상이다. 연예인을 대신해 광고모델로 나서는 사례 또한 점차 늘고 있다. 미국의 시장조사 기관 비즈니스 인사이더 인텔리전스에 따르면 인플루언서 마케팅 시장은 내년까지 150억 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관측되는데 이 중 상당수는 가상 인플루언서가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가상 인플루언서의 가장 큰 장점은 변동성 리스크가 적다는 점이 꼽힌다. 실존하는 광고모델의 경우 사생활 문제 등으로 인한 이미지 타격이 곧장 제품 이미지 타격으로 이어지는데 반해 가상 인플루언서는 전혀 그럴 일이 없다. 소비자 입장에선 자신이 생각하는 이미지와 다른, 속된 말로 ‘깨는’ 행동을 할 위험이 적기 때문에 마음 놓고 가상 인플루언서에게 몰입할 수 있다.
가상 인플루언서를 구독한 조혜연(26·가명) 씨는 “처음에는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연예인이나 가상 인플루언서나 실제로 보거나 만날 수 없는 건 똑같다고 생각하니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계속 보다 보니 가상 인플루언서가 실제로 서울 어딘가에 존재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고 말했다.
다채로운 세계관 앞세운 버추얼 유튜버…유튜브, 스트리밍 등 종횡무진 활약
버추얼 휴먼이 활약은 유튜브, 스트리밍 등 주로 온라인 분야에서 이뤄진다. 그래픽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방송인의 실제 얼굴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 가상의 캐릭터를 내세운 ‘버추얼 유튜버’가 대표적이다.
버추얼 유튜버는 유튜브로 동영상 전송·게시하는 컴퓨터 그래픽 캐릭터다. 보통 영상 콘텐츠에 더해 실시간 스트리밍도 같이 진행한다. 방송 콘텐츠는 게임방송, 노래, 저스트 채팅(인터넷 방송인이 시청자와 대화를 나누며 소통하는 것) 등이다. 실제 인물과 비슷한 외모를 만들어내는 다른 버추얼 휴먼과 다르게 버추얼 유튜버는 애니메이션 캐릭터와 같은 외모를 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버추얼 유튜버의 시초는 2016년 일본의 한 유튜버가 ‘세계 최초 버추얼 유튜버’라는 컨셉으로 만들어낸 ‘키즈나 아이’다. 키즈나 아이의 유튜브 채널 ‘A.I Channel’은 10월 28일 기준 298만명의 팔로워를 보유하고 있다. 이후 홀로라이브, 니지산지 등 2세대 버추얼 유튜버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존재하는 사람의 느낌을 내기 위해 노력하는 가상 인플루언서와 달리 버추얼 유튜버는 캐릭터에 더 자유로운 설정을 사용할 수 있다. 바다에서 올라온 상어, 시간 여행자 등 비현실적인 세계관을 내세워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버추얼 유튜버를 소비하는 사람들은 버추얼 유튜버를 실존하는 인물이 조종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눈에 보이는 버추얼 유튜버에 집중한다.
예를 들어 시간 여행자 설정을 가진 버추얼 유튜버가 오래된 밈(인터넷 공간에서 계속 쓰이는 유행어나 패러디)을 알고 있다면 시청자는 본체(버추얼 유튜버를 연기하는 사람)가 캐릭터의 외모에 비해 나이가 많다는 걸 알 수 있지만 ‘시간 여행자이기 때문에 과거에 있었던 것들도 알 수 있다’는 설정에 속아주는 식이다.
현재 버추얼 유튜버는 일본을 중심으로 시도되고 있지만 국내에서도 버추얼 유튜버가 하나 둘 등장하고 이TEk. 국내 버추얼 유튜버는 게임 업체 스마일게이트가 2018년 ‘세아 스토리’를 공개한 것이 최초로 알려졌다. 세아 스토리는 딥러닝이 가능한 초 하이테크 신개념 오버 테크놀로지 AI라는 설정이다.
신개념 AI이기 때문에 방송을 진행하는 스태프들의 음식을 뺏어 먹거나 투닥거리는 등 현실과 가상을 넘나드는 모습을 보인다. 실존 인물을 초빙해 합동 방송을 진행하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물을 마실 때 냉각수라고 주장하는 등 기본적인 세계관은 유지한다. 버추얼 유튜버 ‘로나’는 일반적인 버추얼 유튜버와 달리 연기자가 공개돼 있는 것이 특징이다. ‘로나’의 정체는 ‘마이 리틀 텔레비전’ 등에 출연해 유명해진 성우 서유리(36) 씨다.
시청자가 본체의 존재를 알아도 세계관에 몰입하며 같이 즐기는 다른 버추얼 유튜버와 달리 ‘로나’는 방송을 진행하다가 몰입이 깨진 서 씨의 실제 목소리를 끌어내는 것도 주된 재미 요소 중 하나로 지목된다. 시청자들은 자연스럽게 서유리의 과거 영상을 가져오고 ‘로나’는 남의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대화를 이어나간다. 시청자들은 ‘본인 일처럼 정말 잘 안다’ 등의 반응을 보이며 ‘속이는 사람은 있지만 속는 사람은 없는’ 놀이터가 만들어진다.
전문가들은 가상 세계에 익숙한 사람이 많아지면서 가상의 인물과의 접촉도 점차 쉽게 받아들여지고 있기 때문에 당분간 가상인물 열풍은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예전부터 온라인게임 등을 접한 젊은 세대는 가상 세계에 익숙해져 있다”며 “이미 가상 세계에서 활동하는 것에 익숙하기 때문에 가상의 인물도 쉽게 받아들일 수 있다. 당분간 가상인간의 인기는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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