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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이 View]-중국 경제 우려

비스마르크와 빌헬름 2세, 덩샤오핑과 시진핑

기사입력 2022-06-22 00:02:40

 
▲ 한원석 경제산업부장
19세기를 대표하는 정치가로 ‘철혈재상’으로 알려진 독일제국 수상 오토 폰 비스마르크가 꼽힌다. 그는 30년에 가까운 재임기간 동안 대(對) 오스트리아 전쟁 승리(1866), 대(對) 프랑스 전쟁 승리(1871) 등을 통해 독일제국 성립에 결정적으로 기여하며 제국을 반석 위에 올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그런 비스마르크도 외교적으로는 힘의 균형을 중시하는 태도를 보였다. 독일의 내실을 다지는 데 집중하면서 비스마르크 수상 재임시 독일의 군사력과 이를 뒷받침하는 경제력과 기술력이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했다.
 
하지만 1890년 선거에서 친(親)비스마르크 정당이 대패하고 비스마르크가 수상에서 해임되고 난 뒤 빌헬름 2세는 본격적인 팽창 정책을 추진하며 영국·프랑스등과 마찰을 빚기 시작한다. 결국 빌헬름 2세는 제1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다가 패배하는 바람에 자신의 황위는 물론 많은 영토를 잃었다. 비록 빌헬름 2세에게 세계대전 발발의 모든 책임을 떠넘길 수는 없지만 그의 책임이 상당 부분 있다는 것이 후세 역사가들의 평가다.
 
20세기 들어 자신의 재임기에 조국을 발전시킨 여러 정치가 가운데 대표적인 인물로 중국의 덩샤오핑이 꼽힌다. 그는 ‘흑묘백묘론’을 내세우며 자본주의적 시장경제 제도를 중국에 도입하고, ‘도광양회(韜光養晦)’라는 외교방침을 통해 내실을 다질 것을 자신의 후임자에게 당부한다.
 
실용주의 노선에 입각한 덩샤오핑의 지도 아래 중국은 과감한 개혁 정책을 펼치면서 급격한 경제 발전을 이뤘다. 그는 문화대혁명 때문에 실각했고 이 와중에 그의 장남은 장애인이 되는 등 개인적으로 큰 고통을 겪었다.
 
이런 교훈을 바탕으로 덩샤오핑은 ‘10년 임기제’를 원칙으로 내세웠다. 모든 주요 직책의 재임 기간을 최대 10년으로 제한하고 65세 이후에는 새로운 당직에 취임하지 못하도록 명문화했다. 마오 시대의 ‘제왕적 1인 독재’를 겪은 경험에서 나온 조치다.
 
이러한 체제는 덩샤오핑 사후 장쩌민과 후진타오 모두 10년씩 집권하면서 정착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가 죽은 뒤 채 20년도 지나지 않아 시진핑 주석이 사실상 종신집권을 하게 됐다. 시 주석은 집권 후 정치 분야뿐만 아니라 경제 분야에서도 덩샤오핑의 유훈과는 다르게 움직였다. 상대 국가에 대한 공격적인 행태를 나타내는 ‘전랑외교(戰狼外交·Wolf Warrior Diplomacy)’가 바로 시진핑의 외교정책을 나타내는 용어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글로벌 자금이 중국에서 이탈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실제로 올해 들어 비상장 중국기업의 주식을 사들이는 글로벌 기관투자 자금이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 정부가 해외 기업공개(IPO)를 규제한 데다 코로나19로 대도시를 전면 봉쇄한 사태의 충격 등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업계에 따르면 중국 투자에 초점을 맞춘 사모펀드(PEF) 운용사 및 벤처캐피털(VC)의 자금 모집은 2020년 500억달러에서 지난해 약 720억달러로 급격히 늘어났다. 하지만 올해 들어 4개월 동안 30억달러를 모으는 데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19로 인한 봉쇄 조치로 중국 기업의 타격 우려가 크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오지만 전문가들은 중국 정부가 대형 IPO에 노골적으로 간섭했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특히 사상 최대였던 370억달러 규모 앤트그룹 IPO 중단은 시장에 큰 충격을 줬다. 일부 보도에 따르면 중국 정부는 당국을 공개 비판한 마윈 알리바바 회장에게 격노해 앤트그룹 IPO 중단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어 지난해 상장한 차량 공유 서비스업체 디디추싱은 중국 당국의 ‘고객정보 유출 가능성’ 경고에도 뉴욕증시 상장을 강행했다가 중국 정부의 고강도 규제에 시달려 결국 이달 10일 자진 상장 폐지했다.
 
비스마르크는 빌헬름 2세가 국제 외교 무대에서 과욕을 부리고 무리수를 남발하는 것을 보면서 여러 차례 충언했지만 황제는 이를 듣지 않았다. 비스마르크는 죽기 전 “프리드리히 대왕이 죽고 20년 후 예나전투(프로이센이 나폴레옹에게 참패함)가 있었다. 이런 식으로 돌아간다면 내가 죽고 20년 후에도 큰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실제로 그가 사망한 1898년에서 20년 뒤 베르사유 조약이 체결됐다. 만일 덩샤오핑이 죽기 전 지금의 중국을 예상했다면 그는 과연 어떤 말을 남겼을까.
 

 [한원석 기자 / wshan@sky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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