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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희 장편소설]
초대받은 여자 <30회> 마지막 해원의 기억
수빈은 결심했다, 해원과 끝장을 보기로
이경희 필진페이지 + 입력 2022-08-08 09:30:23
등산? 마음은 정했어?”
 
해원은 기다렸다는 듯이 전화를 받았다.
 
“3시 의상봉, 알았어. 우리 깨끗하게 마음 비우기로 해, 수빈아.”
 
수빈은 마음을 비우지도 의상봉으로 가지도 않았다. 북한산성 입구 으슥한 곳에 서 있을 뿐이었다. 제이슨이 나타나는지 그리고 해원이 제시간에 오는지는 알아야 했기 때문에.
 
3시에 의상봉에 도착하려면 적어도 두 시쯤에는 북한산성 입구를 지나야 했다. 해원은 한 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산성 입구로 들어왔다.
 
정작 수빈과 해원 둘 다 오라고 문자를 보낸 제이슨은 3시가 넘도록 나타나지 않았다. 다른 누군가에게 대신 일을 시켰을 것이었다. 의상봉에서 해원을 설득하거나 아니면 협박하라고.
 
조마조마한 시간이 지났다.
 
오후 4시가 조금 넘자 북한산성 입구로 엠뷸런스가 들이닥쳤다. 요란한 사이렌 소리를 뒤로 하고 수빈은 버스에 올랐다.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여학생 하나가 등산하다 실족했다고.
 
그 후로 해원을 본 적이 없었다. 그 여학생이 해원인지 아닌지 수빈은 아직도 모른다.
 
수빈은 바로 이사를 했고 휴학을 했다. 핸드폰을 없앴으며 1년이 넘게 친구들 아무와도 연락하지 않았다. 그 누구보다도 제이슨 아니 이상훈에게서 완벽하게 사라지고 싶었다. 만일 스스로 사라지지 않았다면 북한산성 입구로 달려온 엠뷸런스에 수빈도 실려 갔을 거라고 아직도 믿기 때문이었다.
 
 
 
 
수빈은 혼자서 병원을 찾았다. 상훈과 약속했듯이 과거를 지웠다. 이후 해원이 어떻게 됐는지 궁금했지만 수빈은 애써 해원을 찾지는 않았다. 늘 요란한 사이렌 소리를 들을 때면 그날 그 엠뷸런스에 자신이 실려 가지 않았다는 걸 감사할 뿐이었다.
 
그때로부터 15년이 흐른 지금에야 해원이 나타났다.
 
오늘 너네 집에서 신세 좀 질게. 우리 그 정도는 해주는 사이잖아.”
 
호텔 화장실까지 따라온 해원은, 아니 자기가 해원이라고 말하던 그 여자는 세면대 거울로 수빈을 빤히 보며 손을 씻었다. 그런데 그게 없었다. 펄펄 끓는 가마솥에 화상 당했다던 그 흉터, 수술을 두 번이나 했는데도 흉측하게 남은 손목의 그 흉터가 없었다.
 
호텔에서 해원은 집요하게 수빈을 따라다녔다. 마치 한순간도 틈을 주지 않겠다는 듯이 밀착해 있어 어디로 도망갈 수도 없었다.
 
당당하게 수빈의 집에 신세 좀 지겠다고 말하는 모양새가 어떻게든 수빈의 집까지 따라붙을 것 같았다.
 
하는 수 없었다. 선우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수밖에. 수빈은 선우에게 매달렸다. 친구들 모두 자기 집에 초대하겠다고. 이미 수빈은 결심했다, 해원과 끝장을 보기로. 너는 해원이 아니다. 네가 해원이든 아니든 너는 나를 죽이러 온 거다.
 
운이 좋았다. 순조롭게 선우와 친구들이 수빈의 집으로 오게 됐으니. 좀 더 운이 따랐다면 스스로 24층에서 뛰어내렸다고 끝을 낼 수 있었는데 그게 아쉬울 뿐이었다.
 
[: 이경희 / 그림: 도은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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