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해지려면 공감능력 확장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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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해지려면 공감능력 확장하라

박혜수 필진페이지 + 입력 2022-09-08 11:00:08

마르니라는 이탈리아 패션브랜드가 있다. 마틴 마르지엘라·드리스 반 노튼·브루넬로 쿠치넬리·스텔라 매카트니 등과 함께 국내시장에 뒤늦게 등장한 명품 브랜드 가운데 하나다.

루이비통·샤넬·구찌·에르메스 같은 기존의 명품 브랜드 못지않게 고가이지만 매장에 들어갈 때 줄을 서지 않아도 되는 게 이들과 다른 점이다. 사실 줄을 서서 매장에 들어간다는 이미지 자체가 사치와는 거리가 멀다. 그러므로 이들 신규 명품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MZ세대를 중심으로 하는 플렉스족들보다는 사치를 좀더 제대로 즐기고 있는 셈이다.

마르니는 콘수엘로 카스틸리오니가 만든 이탈리아의 디자이너 브랜드다. 꼼데가르송 디자이너 가와쿠보 레이와 마찬가지로 콘수엘로 또한 디자인을 전공하지 않은 특이한 이력의 디자이너다. 레드카펫이나 셀레브리티 협찬을 하지 않는 것으로도 유명한 마르니는 1997년 첫 컬렉션을 통해 순식간에 세계 패션 시장의 새로운 강자로 등장했다.

마르니의 초기 디자인은 과장된 아웃라인, 대담한 원색들의 대비를 통한 컬러 블로킹, 독특한 스트라이프와 사방 연속 무늬들로 몬드리안의 그림 이미지를 연상시킨다. 대담하고 아름다운 몬드리안 느낌의 마르니 디자인에 장 미셸 바스키아의 이미지가 더해진 것은 2006년 무렵의 일이다.

마르니는 2006년부터 콜롬비아·티벳·과테말라·케냐 같은 개발도상국의 취약계층 어린이들이 그린 그림을 사들여 다양한 방법으로 디자인에 적용하기 시작했다. 어린이들은 마르니가 그림 값으로 지불한 학비를 지원받았고 마르니의 디자인은 어린이들이 그린 그림의 이미지들을 통해 그 영역이 확장되었다. 요즘 자주 언급되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에 한발 앞서 다가간 셈이다. 바스키아의 작품을 연상시키는 어린이들의 그림이 들어간 마르니의 티셔츠와 브로치 등은 귀엽고도 세련되었다.

▲마르니 설립자이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디자이너 콘수엘로 카스틸리오니.

우리는 기능적인 면이 강조되던 기존의 효용 중심 가치사슬을 벗어나 감성적·심미적 가치와 그 효과를 추구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트렌드가 좀 더 인간적이고 근원적인 행복의 개념에 다가가는 쪽으로 방향을 바꾼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제품 개발이나 회사 경영에만 국한되는 게 아니다. 요즘 많은 사람이 추구하게 된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또한 따지고 보면 개개인의 삶에 적용되는 ESG 전략이라 할 수 있다.

학벌과 부, 그것을 통한 개인과 가문의 등급 업그레이드 같은 게 예전에 대다수 사람이 추구하던 삶의 목표였다. 그러나 한 세대가 열심히 그 목표를 추구해 보고 난 지금 우리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있다. 그 고단한 노력의 결과가 행복과 큰 상관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행복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그런데 여기서 함정이 하나 등장한다. 가족중심주의·인간중심주의가 그것이다.

거의 모든 종교와 수행에서 강조하는 것 가운데 ‘이웃에 대한 사랑·자비의 마음’이 있다. 왜일까? 불행을 피하기 위해, 행복에 다가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내 가족을 사랑하는 것은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과 다를 게 없다. 이기적인 사랑이다. 그 사랑은 내 존재를 두른 울타리를 튼튼히 해 줄진 몰라도 행복을 주진 않는다.

사랑이 공감능력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라면 우리 삶의 ESG 전략을 위해 필요한 것은 공감능력의 확장이다. 공감능력의 확장을 통해 가족이, 인류라는 공동체 의식이 더 큰 범위의 이웃을 포용할 수 있게 해 줄 것이다.

요즘 비가 자주 많이 온다. 일하는 곳 창밖으로는 삐뚤빼뚤 자동차들이 지나다니고 저녁 무렵이 되면 개를 데리고 산책을 나온 사람들이 지나가기도 한다. 그리고 그 사람들과 자동차, 사랑받는 개들 사이로 이따금 길고양이들이 종종걸음을 치며 지나다니는 것도 보인다.

부슬부슬 내리던 비가 차츰 굵은 빗발이 되어 보도의 바닥을 내리치는데 길고양이 하나가 자동차 사이를 지나간다. 주차해 놓은 자동차 밑에라도 들어가 비를 피해 주었으면 싶은데 무슨 잘못을 저지른 것도 아니면서 잔뜩 겁을 먹고 주변을 힐끔거리며 계속해서 걸어간다. 비조차 제대로 피할 줄 모르는 그 고양이는 병이 나면 어떻게 할까…. 아마도 그 고양이는 ‘아, 이상하다, 왜 아플까’ 하면서 어딘가에 처박혀 홀로 앓다가 숨을 거둘 것이다. 우리 이웃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다.

어찌 보면 우리의 삶도 그 길고양이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 누구나 다양한 꿈을 품고 나름대로 노력을 하며 살지만 막상 어느 시점에 이르러 스스로의 모습을 보면 그것이 언젠가 꿈꾸었던 자신의 모습인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뜻대로 풀리지 않은 인생 때문에 마음을 다치고는 어디서 왜 다친 줄도 모르며 ‘아, 이상하다, 왜 이럴까’ 하며 사는 게 대부분 우리의 삶일 것이다.

그런 삶을 이기적으로 살아서 이루고 얻을 수 있는 게 뭘까. 그보다는 공감 능력을 확장시켜 가족과 인간 중심의 편협한 경계를 넘어 주변과 이웃을 돌보고 지켜 주며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추구하는 게 현명한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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