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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수의 新삼국사 산책
축성의 대가 자비왕… 적의 공격 막기 위한 방어선 구축
고구려 남벌에 대비한 사전 방어책
정재수 필진페이지 + 입력 2022-09-28 09:50:54
 
▲ 정재수 역사 작가.
 
자비왕은 유달리 성을 많이 쌓은 ‘축성(築城)의 대가’다. 서기 470년(자비왕 13년) 삼년산성(충북 보은)을 시작으로 471년(자비14) 모로성(경북 군위)를 쌓았다. 이어 474년(자비17) 일모성(충북 청원), 사시성(충남 홍성), 광석성(충북 영동), 답달성(경북 상주), 구례성(충북 옥천), 좌라성(충북 영동) 등 6개성을 동시에 쌓는다. 대부분 신라의 서북쪽 변방인 소백산맥 일대에 집중되어 있다. 다만 이 중 사시성은 충남 홍성의 장곡산성으로 비정되고 있으나 이에 대해서는 다소 의문이다.
 
고대 산성의 형태
 
고대 산성은 입지 지형에 따라 크게 세 가지 형태로 나눈다. 첫째는 ‘테뫼식(山頂式)’으로 봉우리를 둘러쌓아 성을 축조한 경우이다. 산 정상을 중심으로 대략 7~8분능선을 따라 둘러쌓는다. 주로 초기 형태의 산성에서 많이 나타난다. 둘째는 ‘포곡식(包谷式)’으로 성곽 안에 골짜기를 포함하여 축조한다. 성 내부는 물이 풍부하며 활동 공간이 넓은 것이 특징이다. 테뫼식보다는 규모가 크며 후기 형태에서 많이 나타난다. 셋째는 테뫼식과 포곡식을 합쳐 놓은 형태인 ‘복합식(複合式)’으로 성안에 산 정상과 골짜기를 포함한다. 규모가 큰 산성인 도성의 경우가 많다.
 
 
▲ 고대 산성의 축성 형태. [사진=필자 제공]
    
고구려 남벌에 대비
 
자비왕이 축성에 매달린 사유가 ‘고구려사략’에 나온다. <장수대제기>다. ‘장수42년(474년) 갑인 7월, 상이 주유궁(요녕성 철령)에 갔다가 황산(길림성 집안)으로 돌아와 영락대왕께 제를 올리고 종실과 삼보에게 이르길 “선제(광개토왕)께서는 국강(고국원왕)이 당한 치욕을 씻고자 했으나 하늘이 목숨을 여유 있게 주지 않아 짐은 군사를 키워 오랫동안 기회가 오기를 기다렸다. 이제 때가 무르익었다. 어린 아이들이 한 목소리로 백제해골은 물 건너 도망가고 신라사람은 몸을 사리고 경계를 지킨다는 말들을 하고 있다. 인심은 암암리에 천심을 살피는 것이니 이제 경사(개로왕) 놈이 필히 망하는 가을이 될 것이다”하니 모든 신하가 이구동성으로 찬동했다. 상은 화덕에게 명해 군사 3만을 이끌고 먼저 나아가게 했다. 이때 신라는 일모, 사시, 광석, 답달, 구례, 좌라 등의 성을 쌓아 백제에 대비했다. 백제 백성은 북쪽의 군병이 크게 몰려올 줄을 알고 하루에도 세 번씩이나 놀라 집을 버리고 토굴로 숨었다. 신라는 양쪽을 잘 알고 미리 감을 잡았다(長壽四十二年 甲寅 七月 上如朱留宮而還至黃山 行永樂大祭 謂宗室三輔曰 先帝欲雪國罡之恥 而天不假壽 朕養兵待機已久 今其期已熟 兒童皆唱 伯濟骸骨南渡水 慈悲爲之警界云 人心察天心于黙黙之中 此乃慶奴必亡之秋也 諸臣異口同讚 上命華德引兵三萬先發 時新羅築一牟沙尸廣石沓達仇禮坐羅等城以備濟 濟民日三驚以爲北兵大至抑宸如穴居 知兩而預感矣).’
 
자비왕의 축성은 고구려 남벌을 대비한 방어선 구축이다. 표면적인 이유는 향후 발생할 백제 유민의 유입을 막기 위함이지만 실질적인 이유는 고구려 공격을 막기 위한 사전 준비다.
 
▲ 자비왕이 축성한 지역. [사진=필자 제공]
    
특히 <장수대제기>는 장수왕의 남벌 한 해 전의 상황도 전한다. ‘장수41년(473년) 계축 2월, 자비가 벌지와 덕지를 좌·우장군으로 삼고 명활성을 고쳐 천도하려 하고 또한 일모, 사시, 광석 등등의 성을 쌓으려 했다. 지와 덕지는 일찍이 서도(西都·고구려 도성, 요녕성 부신)에 와서 유학한 자이다. 서도인(西都人)과 한인(漢人)과 교통이 많아 백제가 필경 망할 것이라는 소문을 들어 자신을 지키려 한 것이었다(長壽四十一年 癸丑 二月 慈悲以伐智德智爲左右將軍 而葺明活城欲遷都 又築一牟沙尸廣石等等城 伐智德智曾來西都留學者也 多與西都人及漢人等相通 漏聞伯濟必亡之說 而自備也),’
 
자비왕은 고구려 남벌이 임박한 정보를 사전에 입수하고 이에 대비해 군제를 재편하며 새로이 장수를 임명하고 예상되는 고구려 침공로의 주요 거점에 성을 쌓을 준비를 했다. 특히 자비왕은 장수왕이 경주 도성까지 침공할 것을 예상해 궁궐이 있는 월성(평지성)에서 명활성(산성)으로 왕의 거처를 옮길 계획까지 세우며 고구려 남벌에 철저히 대비했다.
 
자비왕은 축성은 장수왕의 남벌에 대비한 방어선 구축이 목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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