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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 Talk]-강남구 구룡마을
구룡마을, 그곳에도 이웃이 살고 있네요
이건혁 기자페이지 + 입력 2022-12-05 00:02:30
▲ 이건혁 정치사회부 기자
뾰족하리만치 높게 솟은 빌딩. 지하주차장과 곧바로 연결된 아파트. 왁자지껄 웃음소리가 가득한 완연한 학생들의 하굣길. 서울 주택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하지만 이곳 도로 반대쪽 풍경은 사뭇 다르다. 강남구 구룡마을 이야기다.
 
온갖 쓰레기가 높게 쌓인 공터. 나무판자에 장판을 덧대 만든 임시 건물. 고요함 끝에 들려오는 라디오 소리. 버스 충전소에서 비보호 좌회전하는 버스들과 양재대로에서 갈길 바쁜 승용차들이 뒤엉킨 대로 하나만 건너면 펼쳐지는 풍경이다.
 
1993년부터 구룡마을에 터를 잡은 A씨는 서글프다고 했다. 연탄을 갈기 위해 잠시 나온 A씨를 따라 들어간 현관에선 바닥의 나무가 공중에 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원래 없으니까 이런저런 일 하다 다 까먹고 집 얻을 형편이 안 되니까 들어온 거죠.” 
 
A씨는 그렇게 말했다집 오른편 낡은 연탄보일러에 연탄을 갈면서 A씨는 다 사람 사는 곳이라고 했다. “텔레비전 나오고 상수도 설치돼서 생각보다 크게 불편하지 않아요.”
 
하지만 이내 자녀 이야기가 나오자 슬픈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딸애들이 결혼해서도 신랑을 이 집에는 못 데려오는 거야. 결혼하기 전에 다른 곳에 간 것처럼 이야기를 해 놓고 여기 없는 것처럼 해. 얼마나 가슴이 아파.”
 
두 딸의 아버지인 A씨는 얼마 전 결혼한 큰딸이 사위를 집에 데려오지 못했다며 씁쓸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대학생인 작은딸도 사춘기 이후로는 위축돼 보인다며 모든 것이 자신의 탓인 것만 같다고 했다.
 
허름한 집에 가재도구 또한 오래된 것들이었지만 씁쓸한 표정 너머 보이는 딸의 방에는 좋은 의자와 책상, 침대가 있었다.
 
냉장고에는 딸들이 어릴 적 가족과 함께 찍은 사진들이 두어 장 붙어 있었다. 움푹 가라앉은 안방 천장에는 아이들이 어렸을 적 보며 잠들었을 별 모양 야광 스티커가 세월을 견디고 있었다.
 
A씨는 화재로 탄 자국만 남은 공터도 보여 줬다. A씨 집 바로 옆이었다. 한때는 사람들이 각자의 삶을 영위했을 곳이었다. A씨는 불이 자기 집까지 옮겨붙지 않은 것을 천운이라고 표현했다.
 
구룡마을에서 철물점을 운영하는 B씨는 동네 주민들을 돕고 있었다. 지난여름에 무저진 연탄창고를 찬바람 불기 전에 고쳐야 한다며 자기 일처럼 나서서 견적을 내고 있었다.
 
시종일관 기자에게서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은 그였지만, 마을에서 일어난 화재에 대해서는 데리고 다니며 자세히 설명해 줬다.
 
동네 중앙에는 텐트가 잔뜩 쳐져 있었다. B씨 말로는 화재로 집을 잃은 사람들이 잠시 살던 곳이라고 했다.
 
한두 명이 누울 수 있을 만한 형형색색의 텐트에는 이름 석 자가 쓰여 있었다. 맞은 편에는 화재로 탄 가재도구들이 정리되지 않은 채 그대로 쌓여 있다.
 
불은 그대로 누군가의 삶을 집어삼키기 일쑤였다. 그런데 화마는 유독 구룡마을을 자주 찾아오는 모양이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었다. 음식을 데우다가 잠시 화장실에 갔다는 이유, 추운 겨울에 보일러를 틀었다는 이유 등등이니.
 
치열한 삶의 흔적이 곳곳에 묻어 있는 구룡마을을 뒤로 하고 다시 양재대로를 건넌다. 학교가 끝나고 귀가하는 학생들의 웃음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바삐 움직이는 자동차들과 사람들로 북적이는 길거리의 고급스러운 카페가 눈에 들어왔다.
 
한 해 동안 소외됐던 주변을 돌아보고 도움이 필요한 곳에 손길을 내미는 12월, 생존이 천운이 되고 재난이 일상이 되는 이웃에 관심을 돌려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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